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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고 싶지 않아, 누군가는 꼭 져야 하니까"

[그림책일기 32] 경쟁보다 같이 하는 즐거움이 주는 쾌감, '3초 다이빙'

등록 2020.10.18 15:02수정 2020.10.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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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자꾸 느림보라고 놀려."

친구가 놀린다고 동글이가 하소연한다. 애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싶은 마음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럴 땐 하지 말라는 말보다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니 감정을 말해줘."

교과서 같은 말을 해줬다. 아이에게 "속상했겠구나" 하면서도 실은 모든 운동을 잘 하는 그 아이가 1등 하고 운동을 못하는 동글이가 꼴찌인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경쟁이 나쁘다고 말하면서도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놀이터 안 나가. A가 있으면 안 나갈 거야."

결국 사건이 터졌다. 술래잡기를 하다 동글이가 모르고 A를 쳐서 사과했는데 그 아이가 받아주지 않았다. 동글이가 미안하다고 3번이나 말했는데 그때마다 "어? 난 못 들었는데. 그래도 이를 거야"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동글이는 이 일 이후 놀이터에 가지 않는다. 친구들이랑 술래잡기를 해도 번번이 술래가 되고, 자전거를 타도 꼴찌만 하니까 재미가 없단다. 자신이 지는 것도 싫고, 놀림 받는 건 더 싫은 동글이를 보며 안타까웠다. 상황이 이정도 되어서야 의문이 들었다. 꼭 누군가 지는 그런 놀이를 해야만 하는 걸까? 

정진호 작가가 초등학교에 강의를 갔을 때 운동회 연습하는 걸 보았는데, 여전히 빨리 들어온 순서에 따라 손목에 도장을 찍어 주는 걸 보고 놀랐다고 한다. 고기 등급 매기듯이 아이들 팔목에 새겨진 1, 2, 3 숫자. 경쟁을 당연시 하는 학교 문화를 보고 만든 책이 <3초 다이빙>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이기고 싶지 않은 아이
 

3초 다이빙, 정진호(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다른 사람에게 느리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아이가 수영복을 입고 계단을 올라간다. 밥도 천천히 먹고 수학은 자신이 없는 아이. 응원하는 야구팀은 또 졌고, 태권도 사범님이 말하는 누구나 이기는 발차기에 "난 이기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아이. 아이가 이기고 싶지 않은 이유를 올라가던 계단 아래를 내려다 보며 말한다.

"왜냐하면 누군가는 꼭 져야 하니까."

다이빙 대에 도착해 보니 아이 친구 두 명이 있다. 뚱뚱보와 홀쭉이. 하나, 둘, 셋 소리에 세 명은 뛰어 내린다. 자신의 몸무게 만큼 물보라를 일으키며 입수한 아이들은 모두 똑같이 중력의 영향을 받아 같은 속도로 내려온다. 그리고 같이 웃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주인공 아이가 내뱉는 말들은 전부 기운 빠지는 이야기다. 책을 보고 있을 뿐인데도 힘이 빠져서 읽는 이도 더 이상 계단을 못 올라가겠다 싶을 정도다. 뭐 하나 잘 하는 거 없는 아이를 한 명쯤 품고 있는 이라면 더 그럴 수 있겠다.

그런 마음이 들 즈음 계단을 오르며 위로만 향하던 아이의 시선이 계단 아래를 향하면서 독자와 눈이 마주친다. 아이는 독자를 보며 이야기한다. "난 이기고 싶지 않아. 왜냐면 누군가는 꼭 져야 하니까."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누군가 꼭 져야 한다면 그런 경기는 하지 않고 싶다고.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마음을 들킨 듯해서 찔린다.

동글이와 <3초 다이빙>을 읽었다. 자신이 질까봐 평소 경쟁하는 게임을 싫어하는 아이, 그림책 속 주인공처럼 느린 아이라서 그런지 <3초 다이빙>을 좋아했다.

"동글아, 이 아이는 어디를 왜 오르는 걸까?"
"다이빙 하려고 계단 올라가는 거같아."
"힘들면 중간에 내려와도 되는데 끝까지 올라가네?"
"친구들이 기다리잖아."


그렇다. 친구들이 기다려주고 있어서, 느린 나를 기다려 주고 같이 다이빙을 즐기는 친구들이 있어서 주인공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모두 같은 속도로 떨어지는 다이빙, 3초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다이빙, 그저 즐거운 다이빙. 이런 일이 현실에도 있을까?

코로나로 학교는 못 가지만

'꼴찌없는 운동회'라는 기사를 보았다. 2014년 10월 용인 제일초등학교 운동회에서 6학년 2반 학생들이 장애물 경기 중 마지막 통과 라인에서 한 친구를 기다려 5명이 다 같이 손을 잡고 뛰었다.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어서 달리기에서 늘 꼴찌를 하던 친구와 같이 달리기 위해 기다린 4명의 아이들.

결승선에는 5명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나란히 들어왔다. 이 아이들의 달리기에는 1등도 꼴찌도 없었다. 달리기에서 늘 꼴찌만 하던 아이는 앞에서 기다렸다 자신의 손을 잡아준 친구들이 고마워 눈물을 흘렸다. 이 꼴찌없는 운동회 모습을 동글이에게 보여줬다. 

"이 형아들은 왜 기다린 거야?"
"저 뒤에 오는 형아랑 같이 가려고."
"그러면 자기가 1등 못하는데?"
"1등보다 친구랑 같이 뛰는 게 더 재밌잖아."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동글이는 코로나 때문에 학교를 자주 못 간다. 또래 친구들을 사귀면서 자기만의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시기에 학교를 못 가고 친구를 사귈 수 없어 안타깝다. 그러나 믿는다. 동글이도 언젠가는 자신을 기다려 주는 친구를 만날 거고, 동글이도 친구를 위해서 기다려 주리라는 걸.

3초 다이빙

정진호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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