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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어, 내가 간첩이네?

[피해자 구술, 수상한 섬 수상한 이야기 5] 조작

등록 2020.11.22 11:37수정 2020.11.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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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정권 시절에는 누구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제주에는 공권력의 고문과 폭력에 간첩으로 조작된 사람들이 많다. 제주에 사는 조작간첩 피해자의 피해 사실과 그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현대사의 비극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파괴된 공동체와 인권의 회복을 돕고자 한다. [편집자말]
간첩으로 '조작'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조작의 사전적 의미는 '일을 거짓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첩으로 조작한다는 것은 '간첩이 아닌 사람을 간첩으로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여기서 말하는 간첩은 '단체나 국가의 기밀을 몰래 탐지 수집하여 적국에 제공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한민국 형법 98조에도 이러한 간첩 행위를 한 자를 '무기징역 또는 사형'으로 처벌하게 되어 있을 만큼 간첩 행위는 엄중하다.

단체나 국가의 기밀을 탐지하는 간첩의 행위란 어떤 것인가? 언뜻 간첩(스파이)이라고 하면 영화에서 보듯 중요한 군사기밀,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빼내는 것이 연상된다. 그러나 우리가 다루는 조작 간첩은 그런 영화 속 007과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스포츠 신문 기사까지   
 

사라봉 등대를 걷는 강희철. 강희철을 조사했던 수사관들은 일상에서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간첩행위로 만들었다고 한다. ⓒ 한톨

 
강희철의 구술 = "나는 옛날에 대공 수사관들하고 차 타고 저기 사라봉까지 간 적 있어. 왜냐면 내가 일하면서 갔던 구멍가게가 있는데 거길 간첩질 한 곳이라고 하려고 간 거지. (나중에) 조사받으면서 수사관들이랑 현장 검증한다고 갔는데 지금은 죽어버린 고재우(경찰)가 낭떠러지가 겁나 가지고 벌벌 기다시피 하면서 가더라고. 예전에 내가 일하면서 거기 구멍가게에 (배달) 다녔는데, 저기서 보면 제주항 등대와 경비초소가 보이거든. 내가 그거 탐지하러 갔다고 한 거지."

김평강의 구술 = "이 과정(진술서 허위 작성)을 약 33일 정도 반복했는데 어느 날 수사관들이 진술서를 작성해서 가져왔더라고. 읽어보라길래 읽어보니 내가 '조총련에 가입했다', '무슨 학습에 참여했다'는 내용이라. 너무 터무니없어서 사실이 아닌 걸 왜 이렇게 쓰느냐고 반박하니 나 담당했던 김기현 수사관이 동료 수사관한테 큰 그릇에 물을 가득 가져오라 해서 나를 목침대에 눕힌 다음 양쪽 팔을 벌려 손은 수갑을 채우고 발을 묶고 고정시키더니 얼굴에 수건을 덮고 주전자로 물을 붓는 거야. 수건이 얼굴에 붙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몸부림치니 수사관들이 수건을 잠시 떼면서 하는 말이 '여기가 어딘 줄 아냐, 시키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죽어서 나갈 줄 알아라' 하면서 다시 물고문을 하는 거라. 그래서 견디다 못해 수사관들이 시키는 대로 지장을 찍었지."

허간회의 구술 = "일본에서 10년 동안 살다 와서 시내에서 후배를 만나 양지다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집으로 오려니까 후배가 집에 가서 뭐하느냐면서 우리 집에 가서 놀자고 하더라고. 갔더니 그 후배 옆방에 사는 여자분 둘이 있었어. 그래서 화투를 치면서 놀았는데 그 여자 중 한 명이 내가 일본에 다녀왔다고 하니 자기와 함께 일본으로 들어가 돈을 벌자고 했었지. 나중에 내가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 그 여자들을 일본으로 데려가 조총련에 넘기려 했다는 걸로 조작하더라고."


간첩조작, 그것은 '생활의 조작'이었다. '함량 미달', '요건이 부족'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다 보니 그들이 '적국에 제공하려고 탐지'했다는 내용 자체가 '함량 미달'인 경우가 많다.

출·퇴근을 하며 지나쳤던 도로에 있던 검문소, 오름에 설치된 안테나, 사람들이 오면 마중 나가던 공항, 공공기관 시설물, 표지판, 가족과 놀러갔던 해수욕장, 중문 관광개발지, 휴양지, 심지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기 위해 읽었던 스포츠 신문의 내용까지도 모두 간첩 행위를 위한 것이 되어버린다.

강희철의 구술 = "나도 이북에 들어가 2주간 있었던 걸로 공소장에 나와요. 그걸 경찰에서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면 내가 일본에 있을 때 여름마다 해수욕장에 놀러가요. 우리가 놀러가는 해수욕장에 섬이 하나 있었는데 나는 이름도 모르고 그냥 섬이 있다는 것만 알지. 나중에 경찰에 잡혀서 조사받을 때 수사관들이 지도를 펼쳐서 보여주는데 그 지도를 보니까 오키섬이라고 써 있어. 해수욕장이 있던 마을 이름이 하마무라라는 곳인데 그 해변에서 멀리 바다 쪽을 보면 무인도가 하나 보이는데 그게 '오키'섬이야.

처음에 죽은 고재우라는 수사관이 이렇게 이렇게 북한을 가지 않았느냐고 진술서를 만들었는데 안기부에서 나온 수사관이 수사기록을 보더니 여기서 어떻게 북한을 들어가느냐며 다시 조사를 하는 거지. 그래서 내가 갔던 해수욕장 섬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만든 거지.

그쪽에서 공작선 타 가지고 이북 어디 해안가로 해가지고 갔다고 했는데... 참 상상도 못 하는 스토리가 되어 버리는데, 참나. 간첩이 그렇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봤지. 참 기가 막히더라고."


강희철의 경우처럼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기억, 알고 있는 지명을 토대로 조작하는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수사관들이 원하는 내용을 기억에 의존해서 '거짓 살(내용)'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신이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을 간첩 행위로 바꿔 진술서에 쓰거나 인정하면 구타가 멈춘다.

물고문이나 전기고문을 받는 중에도 그나마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면 일단 고문은 중단된다. 달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에게 달을 어떻게 다녀왔느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수사관이 자신에게 전혀 경험하거나 알지 못하는 것을 자백하라고 할 때는 답답함을 넘어 절망감을 느낀다.

조작 간첩이 암기해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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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서 고문으로 엉망이 된 임시완은 '사상이 뭐냐'고 묻는 수사관에게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실존...주의?"라고 대답한다. ⓒ (주)NEW

   
영화 <변호인>에서 취조하던 수사관 곽도원이 조사받던 학생 임시완에게 묻는다.

"너 사상이 뭐야?"

고문에 엉망이 된 임시완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잠시 고민하더니 답한다.

"...실존...주의?"

곽도원이 원하는 대답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였을 것이다.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임시완은 다시 엄청난 고문에 시달렸다.

이런 일은 영화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강희철의 예를 들어보자. 강희철은 북한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공소장에 북한에 다녀온 것으로 조작되어 있다. 문제는 강희철이 제주와 일본 외에는 그 어디도 다녀본 적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제주와 일본밖에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생전 가보지도 못한 북한을 왕래했다고 조작하는 경우 어떤 것을 알아야 할까.

- 먼저 어디를 가야 북한으로 가는 배를 타고 갈 수 있는지
- 북한 배는 어떻게 접선하는지
- 또 북한 가는 배 안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 북한에 도착하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지
- 북한에 도착한다면 어디에 도착할지
- 북한에 도착하면 어떤 절차를 거쳐서 누구를 만나는지
- 북한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지
- 교육 시간은 몇 시간이며 누구로부터 어떤 강의를 듣는지
- 북한의 우월성 선전을 위해 어느 곳을 견학했는지
- 노동당 입당 절차는 어떤 것인지
- 맹세문은 어떤 내용인지
- 간첩을 위해 어떤 지령과 암호, 약정을 했는지
- 임무가 무엇인지
- 돌아오는 방법과 과정은 어땠는지

위와 같은 내용이 간첩 사건에서 최소한 필요한 내용이다. 인터넷, 전화가 없던 시절, 북한에 대한 정보는 특수한 사람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금단과 성역의 지식이었다. 강희철과 같은 평범한 시민이 그 시절에 가보지 않은 북한, 해보지 않는 간첩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조작의 고통은 이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간첩'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더욱 더 치밀하고 탄탄한 간첩 행위를 '암기'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더 많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수상한 시절, 누구나 간첩이 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절 수상한 섬에서는 모두가 빨갱이가 되고, 간첩이 될 수 있었다. 각목과 전기선으로 이용해 간첩을 만들던 그들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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