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를 통해 사람을 탐구하다

[TV 리뷰] < EBS 다큐 프라임 - 의자 >

검토 완료

윤소정(ddhani)등록 2020.12.24 16:35
'의자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저 '사람이 앉을 때 사용하는 기구' 정도가 아닐까?

12월 21, 22일 두 번에 걸쳐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의자>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누구나 사용하는 가구인 의자에 담긴 의미와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 의자가 궁금하다>는 평소 사람들이 의자에 대해 생각하는 값어치가 얼마인지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페에서 의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디자인, 색상, 기능, 편안함 등이 있다. 사람들은 의자의 가격을 대략 5~50만원 정도로 추측했지만,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의자들은 400~500만원을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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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에서는 한 가지 재미있는 관찰을 했다.
회의실에서 기업의 대표가 중역의자가 아닌 일반 사무용 의자에 먼저 앉았을 때, 직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았다. 오직 중역의자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사무실의 막내 직원이 그곳에 앉아야만 할 때 그들은 당황하고 불편한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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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의자도 직급에 따라 나눠지고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지위 제품'이라는 것이다. 어떤 의자에 누가 앉느냐는 곧 자리의 문제이다. 좋은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높은 자리를 향한 동경을 담고 있다고 다큐는 말한다.

비행기의 이코노미석과 비즈니스석, 일등석이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얼마 전 국내 상공을 비행하는 이벤트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나온 일등석은 20분 만에 매진되었다. 이때 일등석의 의자는 단순히 의자가 아니라 높은 자리이며, 서비스까지 포함한다. 대우받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것으로 일반석의 10배인 가격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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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의 시작은 처음부터 이렇게 높은 자리란 의미를 담고 있었다.
4천6백 년 전에 제작된 헤테프헤레스 의자는 현존하는 의자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이집트의 의자다. 이는 헤테프헤레스 1세 왕비가 앉았던 권좌이다.
기원전 14세기의 투탕카멘 옥좌 역시 화려한 금박과 장식으로 권위와 지위를 과시한 전형적인 의자다. 이처럼 초기 의자는 실용성보다는 앉는 사람의 지위와 권능을 얼마나 잘 표현해주느냐에 그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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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좌라는 뜻의 영단어 throne 역시 의자, 권력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throne의 어원이 된 '스로노스'는 그리스의 옥좌를 뜻한다.
건축사회학자인 갤런 크렌츠는 1998년 출판한 그녀의 저서 <의자>에서 등받이가 권력을 이야기한다고 말한다. "의자를 만든 초기부터 신분의 차이와 환경에 따라 등받이 프레임을 다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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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어좌도 마찬가지다. 등널(의자의 등받이에 대는 널빤지)과 곡병(머리맡에 치는 병풍), 일월오봉도(해와 달, 다섯 개의 산봉우리, 소나무 등을 그린 그림)가 함께 있어야 어좌의 권위가 완성된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석을 놓고 바닥에 앉았지만, 왕은 이렇게 등받이가 화려한 의자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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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권력을 상징하던 의자는 산업혁명 이후 시민의 의자, 모두의 의자가 되었다. 일상이 된 것이다. 앉아서 하는 노동이 주가 되면서 의자는 앉는 행위를 도와주는 순수한 도구로 바뀌었다. 이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일어난 일이다.

또한 의자는 시대를 상징한다. 당시의 기술과 사고, 미학적인 특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고 즐길 수 있는 가구로 변화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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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의자를 만드는 국가무형문화재 소목장의 모습이 인상 깊다.
그는 죽은 나무라도 위 아래, 안팎이 있고 그에 따라 의자를 제작한다고 한다. 의자는 사람이 앉은 옆모습과 비슷하며, 그렇게 때문에 인체와 닮은 형태로 안정감 있게 만들어 사람이 앉았을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기본에 충실한다고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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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의자와 나>에서는 의자가 개인에게 가진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10대의 한 학생에게 의자란 '원하는 꿈을 이루려고 앉아있는 곳'이며, 또 다른 학생에게는 '앉아있는 것이 싫어 버리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노인들의 보행사고가 잦아지면서 관내 경찰관이 고안한 장수의자는 만나면 반갑고 고마운 존재이다. 무릎이, 허리가 아픈 노인들이 신호대기를 기다리는 동안 쉬어갈 수 있는 간이의자는 그 어떤 화려한 의자 못지않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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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넘게 서서 일하는 제빵사에게 의자는 잠시나마 꿀맛 같은 휴식을 주며, 반대로 하루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일러스트 작가에게는 가장이라는 무게를 지탱해준다.
 
빈 의자를 보면 쓸쓸함이 느껴진다.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사람이 없고, 비어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부재를 나타냄과 동시에 고독한 현대인을 상징한다.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고 해서 이런 기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처럼 의자는 훨씬 더 강한 인간의 기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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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의자이지만, 그 안에 이렇게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앉은 이의 추억과 이야기가 녹아있는 의자. 오늘 나는 어떤 의자에 앉아있었으며, 그 시간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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