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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구입 말린 서울 아파트, 제 선택이 옳았습니다

[세입자 15년 경력의 이사 스토리 1] 팔고 떠날 집보다 애정을 가지고 오래 살 집을 구하다

등록 2021.01.16 19:51수정 2021.01.1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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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마무리할 시간도, 새해를 맞이하며 다부지게 연간 계획을 작성할 여유도 전혀 없었다. 12월에 우리 부부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생애 최초의 내 집 마련도 이번에 이뤄졌다. 저층 빌라 1층에서의 6년을 마무리하고 14층으로 올라왔으니 장족의 발전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서 타야만 바깥에 나갈 수 있다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2006년 처음 서울에 정착하러 왔던 나는 스물 세 살이었다. 고향 동네에서 대학 졸업 후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나름 유학을 온 거지만, 그때 이후 나는 내가 사는 집의 창문 밖으로 어떤 풍경을 즐겨본 적이 없다. 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1~4층 정도에 만족해야만 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에 살아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거다. 그런데 층수보다도, 바깥 풍경이 보이는 큰 창이나 옥상을 가져본 적이 없는 게 문제였다. 

그저 자는 곳이었던 집 
 

ⓒ Pixabay

 
지금 집은 창 밖으로 중학교도 보이고, 멀리 산도 보이고, 살짝 부지런을 떨어 옥상에 올라가면 롯데월드타워랑 남산도 보인다! 남편과 같이 핫초코를 만들어 마시며 창 밖을 내다보다, 학창 시절 고향 집 15층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풍경을 봤던 경험이 떠올랐다.

소양강 다리를 건너가는 차들의 반짝이는 불빛을 보며 아빠는 야경이 멋지다고 감탄하셨고, 눈이 왔을 때에는 저 설경을 보라며 무덤덤하게 앉아 있는 나를 부추기기도 하셨다. 뭐 이렇게 당연한 풍경을 갖고 저렇게 좋아하시지 하며 귀찮아했지만, 사실 나쁘진 않았다.

집 안에서 큰 창으로 바깥을 조망하며 나 또한 그 아름다운 풍경의 일부가 되어 쉴 수 있다는 부분은 확실히 맘에 들었다. 열심히 일해서 가족과 함께 살 아파트를 구한 아버지의 위치에서는 더욱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을 거다.  

서울의 나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그렇게 15년을 살아서 그런지, 이 전망이란 걸 내가 그리워한 적이 있었는지도 헷갈린다. 빨래를 말릴 수 있는 베란다가 생겼다는 게 좋을 뿐. 반면 남편은 바깥 유리창을 닦을 방법이 있긴 한 건지 계속 내게 물어보다, 자석으로 만들어진 창문닦이를 주문해 줬더니 창문 내외부 모두를 깨끗이 닦아놓고 얼마나 흥겨워했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이사 횟수만 7번, 거의 계약이 끝나면 바로바로 청산하고 이사하거나 한 번 정도 연장한 것 같다. 이사는 꼭 내가 맘에 드는 곳을 향해 가는 게 아니었다. 대부분 '이제는 여기를 벗어나야지' 식의 도피형 이사였다. 감사하게도 항상 부모님의 '지원 사격'이 있었고 나도 열심히 돈을 모아오긴 했지만 원하는 집에 대해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출퇴근 시간 및 지하철역과의 거리만이 항상 우선시되었다.

채광이나 전망이나 주방 공간 같은 부분은 깡그리 무시됐는데, 그런 걸 생각하는 자체가 사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업이 끝난 뒤에도 몇 년은 학교 앞에 살았다, 가장 큰 이유가 가격이었다. 내게 집은 쉬는 공간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자는 공간, 대부분 언젠가 좀 더 벌어서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을 뿐이다. 집에 대해 애정을 쏟은 기억은 없음에도,15년간 거쳐갔던 집들의 월세나 전세, 관리비 금액과 임대인에 대한 기억은 모두 또렷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 참 요상하다. 이 참에 한 번 읊어나 볼까?

내가 15년간 거쳐갔던 집들

처음 서울 와서 살았던 곳은 ① 1000만 원-50만 원(보증금-월세) 오피스텔. 고시원 '스펙'임에도 너무 비싸서 ② 1000만 원-35만 원(보증금-월세) 원룸으로 이사, 곰팡이와 보일러 고장 및 온갖 스트레스로 ③ 무보증금 27만 원 하숙집으로 이사, 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④ 전세 3,500만 원 옥탑방 투룸으로 이사, 아버지도 함께 살게 되면서 ⑤ 7,000만 원-15만 원(보증금-월세)의 준공 40년 된 아파트로 이사, 벽지와 장판 아래 곰팡이 및 심각한 누수 때문에 ⑥ 전세 9,300만 원 분리형 원룸으로 이사, 좁은 공간과 결로로 인한 곰팡이 및 비싼 관리비 등 여러 이유로 전세자금 대출을 처음으로 결심하고 ⑦ 전세 1억5000만 원 투룸으로 이사. 이 집에서는 신혼 생활도 했고, 계약 종료 후 그 전셋값의 4배를 훌쩍 넘는 금액을 주고 ⑧ 지금의 집에 정착하며 세입자 신분에서 벗어났다! 

이렇게 훑어보니 제대로 된 집에서 일상을 영위해본 적이 거의 없다는 게 마냥 놀랍다. 그나마 별 탈 없었던 집은 3번 하숙집과 4번 옥탑방이었지만 하숙방은 1평이 되지 않았고, 옥탑방은 그 이름과 달리 옥상이 없고 창문도 손바닥만 해서 화재시 뛰어내릴 방법이 없었으니 오랜 주거의 목적이 될 수 없었다.

7번에 살면서 이제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빚쟁이가 되어서야 내가 만족하는 집에 살 수 있게 되었다. 7번에서 8번으로 넘어가는 사이에는 남편이 생겨 양가 부모님의 지원이 있었고, 우리도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한 것이기에 모아둔 돈이 있긴 했지만 이전 전세값과는 차원이 다른 매매가에 속이 엄청 쓰렸다.

신혼 생활은 일단 내가 살던 7번 집에서 했고 계약 기간이 끝나는 대로 이사는 꼭 가려고 했는데, 전세 매물을 보니 당시 살던 집의 전세가에서 1억 원을 더한다 해도 더 좋은 점이 없었다. 정부가 막 임대차 3법을 통과시킨 터에 전세 매물 '씨가 마르던' 시점이었으니 운이 안 좋기도 했다. 그냥 집을 매입하기로 결단 내렸다. 일단 내 집 마련하기로 한 거, 출퇴근 위치는 물론 동네도 보고 뷰도 보고 채광도 보고 주방도 봤다. 마음에 딱 드는 곳을 발견했다. 

투자가치보다 오래 살 집을 구했다
 

요즘엔 커튼과 단열벽지, 포인트로 붙일 타일 등을 고민한다. ⓒ Pixabay

 
집값이 얼마나 오를지 당연히 검색해봤다! 하지만 결국 이는 우리의 집 장만 여정에 망설임만 가중시켰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애정을 갖고 오래 거주할 수 있는 곳이겠는가?'였는데, 잘못했다가는 그 확실한 집값도 아닌, 집값 전망이란 게 우리의 관점을 완전히 뒤흔들 터였다. 이 곳은 모두가 매입을 말리는, 단지 한 채뿐인 나홀로 아파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출의 힘을 빌려 무조건 대단지 아파트로 가는 게 돈 버는 길이라고 한다. 혹자는 또 어디든 값이 오를 만한 곳을 구매하고,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며 지속적으로 이사를 가는 게 투자요 발전이라고 한다. 돈의 측면만 보면 그 분들의 말이 맞을 거다. 하지만 뒤늦게 내 보금자리가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진 마당에, 또 다른 이사를 목적으로 한 이사는 이제 끝내고 싶었다. 나 못지 않게 다채로운 이사 경력을 자랑하는 남편 또한 비슷한 마음이었다.

결국 새 집에서의 한 달 생활을 돌이켜봤을 때,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 새로운 집에서 도배도 직접 해봤고, 방 문 손잡이도 모두 바꾸고, 조명도 바꾸고, 전동 드릴을 구매해서 벽에 나사도 박고... 제대로 집주인이 된 기쁨을 느끼며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또 하나, 이전에는 무언가를 구매해봐야 자리만 차지한다는 이유로 사고 싶은 것도 안 사고 버텼는데, 더 솔직히 말하자면 무겁고 큰 물건을 사면 다음 번 이사갈 때 짐도 더 많아지고 이사도 복잡해지고 비용도 늘어난다는 게 싫었다.

내 집에서조차 나그네처럼 사는 데 적응이 되었던 나는, 이제서야 제대로 된 주방기구도 사고 무게 나가는 운동기구도 구입했다. 그로 인해 좁아지는 공간은 어떻게 해야 더 넓게 활용할 수 있을지 남편과 함께 의논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낯설면서도 싫지 않다. 
 
코로나19로 우리의 가계 또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지만, 그나마 이사라는 이벤트와 함께 새로운 에너지를 받았다. 지출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이사는 전문 이사업체 대신 용달차와 사다리차 각 한 대로 해결했고, 등기도 법무사 고용 없이 셀프로 처리했다. 입주 청소도 없었다, 우리 둘이 지난 주까지 주말마다 청소에 열을 올려왔다.

돈을 아끼자는 게 주요 목적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추억이 생겼다. 요즘엔 커튼과 단열벽지, 포인트로 붙일 타일 등을 고민한다. 큰 돈이 드는 일은 아니지만 소소한 재미를 주기에, 요즘 같은 시기에 집안을 다시 정리하고 꾸미는 일은 많은 사람에게 일상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좋은 '액티비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재미난 집 관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차에 이어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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