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중학생은 왜 '행복'을 모를까

[서평] 책 ‘풍요중독사회’를 읽고

등록 2021.01.08 16:51수정 2021.01.0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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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전 행복을 모르겠어요"

'난민'이라는 주제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독서-글쓰기 수업을 한차례 진행한 적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말쯤의 일이었다.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난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국어사전에서는 난민(難民)을 전쟁이나 재난 따위를 당하여 곤경에 빠진 백성이라고 뜻 풀이 돼 있다. 막연히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이 땅을 밟거나 타국을 헤매는 사람만 일컫는 것이 아닌, 좀 더 큰 고민이 필요한 용어라는 의미였다.

아이들과 관련된 글을 읽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키워드는 '난민'이었지만, 그 용어의 범위를 확장해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아졌다. 그 첫 번째로, 우리는 앞으로의 삶이라는 주제로까지 논의의 방향을 넓힐 수 있었다.

이때, 한 중학교 졸업반 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 있었다. "선생님, 전 행복을 모르겠어요"가 그것이다. 행복이라는 용어의 뜻을 모르겠다는 것인지, 본인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인지, 그 뜻이 불분명했다.

흔히, 행복 뒤에 붙을 수 있는 서술어는 '-하다'이다. 복된 좋은 운수가 행복이고 이것은 명사로 분류되지만 '-하다'가 붙었을 경우에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다고 해서 형용사가 된다. 따라서 '행복하다'와 '행복하지 않다' 정도로 말하는 것이 우리말 문법에는 맞다.

그런데 이 학생의 경우, 문장성분에서 목적어에 해당하는 '행복'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모르다'와 대비되는 것이 '알다'이다. 둘 다 동사이며, '이해'의 유무에 맞춰 그 뜻을 구분한다.

지식으로서 사유하는 행복, 오감으로 느끼는 행복에 대해,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학생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탄산 빠진 사이다 캔을 따는 것 같았다. 무엇인가 기록하고, 생각할 수있는 글쓰는 삶이야 말로 행복이다는 지론을 펼치고 다녔던 나였다.

그 학생의 말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왜 그 학생은 행복을 모를까. 비단 그 학생만의 질문이었을까? 질문의 방향을 선회하여,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을 아는가?
 

<풍요중독사회> 책 표지, 김태형 지음(한겨레출판/2020) ⓒ (주)한겨레출판

 
나는 '풍요- 불화 사회' 속 불안 난민

허덕이며 삶을 운용했다. 신발 밑창에 밟히는 것이 빗물인지, 구정물인지도 모르게 바쁘게 20대를 보냈다. 그리고 30대 후반 나는 여전히 무언가 돼야 했고,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러던 중에 코로나19 시대를 맞았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심리학자 김태형은 <풍요중독사회>에서 불안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일갈했다.

'이 사회는 공정합니까? 이 사회는 정의롭습니까?' 배곯지 않으니 살만한 사회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정말 살만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면, 왜 나혼자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많아질까?

관계의 자극에서 오는 피로감은 이미 도를 넘었는지도 모른다.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가 있는 자기 계발서가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타인의 평가와 자기반성은 더 이상 삶을 앞으로 나가기 위한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나브로 삶을 침몰 시킨다.
 
"사회 불안이 극도로 심해지면 사람들은 일체의 대인관계를 끊고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기도 한다. 인간관계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느니 차라리 관계가 없는 삶, 어떤 공동체에도 참여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평가 불안이나 사회 불안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도망치는 수단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올바른 해결책은 아니다." (88p)
 
누군가는 이 사회가 적자 생존 속 정글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공동체적 풍요를 말하지만, 그들의 내밀한 삶은 소반에 제 입에 댈 수저 놓기에도 바쁘다. 저자가 술어한 '가난-화목'의 시대에 대한 단상이 떠오른다. 소담하게 차려진 반찬이 있는 밥상의 온기와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소리가 방안을 채웠던 그 시절의 모습이었다. 이제는 이런 장면은 애달픈 향수로만 남은 것일까.

오늘날 공동체 운동은 과거의 화목을 본 따 진행되기도 한다. 실상은 개개인의 욕구와 불안에 휘둘리면서, 법고의 무늬만 쫓는 공동체 운동이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옛날 이웃과 부대끼며 나눌 줄 아는 정(情)의 정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저자는 그 근본에 한국인에게 내재한 세 가지 불안을 이야기 했다. 평가, 존중, 추방 불안이 그것이다.

대안은 기본 소득제

아동학대 사건이 2021년 정초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숨진 정인이가 살다간 16개월의 시간이 가슴 저미게 아픈 이유는, 내 첫째 아들이 그만한 또래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뒤집기고 배밀이를 하다가 이윽고 아장아장 걷기까지의 과정을 눈으로 봤다. 그러면서 삶을 함께 걸어가는 파트너로서 부모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생의 전반이 울음으로 가득찼을 정인이었다. 볼과 목으로 번진 멍은 그 어떤 말로도 위로 할 수 없었다. 비단 학대의 문제뿐이겠는가. 가정의 붕괴 때문에 맨발로 깨진 유리병을 밟고 사는 아이들은 내 주변에서 수없이 많았다. 아픔이 아픔인지 모른 채 세상은 본래 그런 거라고, 목소리는 톤을 높여야만 누군가 들어줄 것이라 믿고, 그래서 늘 싸우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었다.

사회로 발을 딛기 전,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며 세상은 그 아이들의 삶이 잘못됐다고 평했다. 정작 그 아이들의 삶에 디딤돌 역할을 하는 데는 머뭇거리면서 말이다. 자살과 빈곤의 문제는 코로나19로 분열된 사회 속에서 은폐됐다. 파산 직전의 영세 자영업자, 과로사 위기에 놓인 택배 노동자를 비롯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삶에서 우리 사회의 우울한 민낯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명문이 서술돼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개인의 생존은 개인이 책임진다는 풍요-불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생존이 뒤틀려 버린 시대에서 존엄은 그저 교과서에 실린 용어에 불과했다.

눈을 감으면 존엄은 지킬 수 없어도, 아득바득 삶을 꾸릴 수는 있다. 상사가 던진 성희롱적 발언이나 계약 연장을 위해 모욕적인 욕설 등을 참는 일이 그렇다. 떠난 자는 패자요 버티는 자가 승자라는 항간의 유행어가 송곳으로 가슴뼈를 찌르는 듯했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인 7장에 대안을 제시했다.
 
"기본소득제는 한국인들의 연대의식과 공동체의식을 함양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기본 소득제는 개인의 생존을 공동체가 책임지고, 개인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집단주의 원리에 기초하는 제도이다. 가정은 노동력이 없는 가족 구성원, 즉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아이나 노인을 굶어 죽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264p)
 
생존을 보장한 사회에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갈 수 있다. 타인의 평가에 내 삶이 일체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너랑은 일 안 해'가 아니라, '내가 너랑 일 안 해도 굶어 죽지 않아'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사회이지 않겠는가. 불합리한 것들에 대해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거나, 이해되지 않는 위계질서 속 억압을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고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지 않을까.

젖과 꿀이 흐르는 사회
 

저자는 성경에 언급된 젖과 꿀이 흐르는 사회는 이미 도래했다고 말한다.
 
"이상사회란 풍요-화목사회이다. 기독교는 천국을 젖과 꿀이 흐르고, 사자와 어린양이 사이좋게 뛰노는 세상으로 묘사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상사회를 생산력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인 동시에 계급이 폐지되어 사람들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라고 설명한다. 기독교이든 마르크스주의든 인류가 꿈꿔왔던 이상사회의 본질은 풍요롭고 화목한 사회이다."(256p)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이미 우리 사회는 풍요 화목 사회를 나아가는 데 충분한 재화를 획득했다. 오늘날 이 사회의 큰 담론으로 삼을만한 것이 있다면, '그 재화를 소수들의 탐욕을 차치하고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예수가 한 소년에게서 받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의 군중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떠 올랐다. 이미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는데, 왜 5000명의 가난을 가엾게 여기지 않는가. 이 사회의 정의와 공정은 측은해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책을 덮었다. '초매(草昧)'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주역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과 땅이 아직 갈리지 않는 카오스의 상태를 일컫는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 수록된 코끼리 이야기(象記)에서 '초매라는 것은 그 빛이 검고 그 모습은 흙비가 쏟아지는 듯하여, 비유하자면 장차 새벽이 오려고는 하나 아직 새벽은 되지 않은 때에 사람과 사물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밖으로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 몸이 으슬으슬 떨 정도로 찬 기운이 엄습했다. 모든 것을 꽝꽝 얼려버리기라도 한다는 듯 눈이 내렸다. 마당에 족히 아이들 눈싸움 할 만한 양의 눈이 쌓여 있었다. 새해, 새 눈을 보는 것도 좋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나를 우울하게 했다. 

이웃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 있다는 지극한 배움을 얻은 지난해였다. 배움은 지긋지긋하게 올해로 이어지고 있다. 그만 배우고 싶다. 코로나19의 열차에서 내리고 싶다. 학대를 피해 미친 듯이 위계의 사다리를 밟아야 하는 삶이 아닌, 저자의 말처럼 좀 더 건강한 풍요-화목한 사회의 시민이 되고 싶다. 대한민국 사회에 살면서 느꼈던 좌절과 무력감과는 이제 헤어지고 싶다.

풍요중독사회 - 불안하지 않기 위해 풍요에 중독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회심리학적 진단과 처방

김태형 (지은이),
한겨레출판,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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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전공 석사수료. 전남지역에서 융합예술교육 강의 및 인문협업 활동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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