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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OO 판사가 누구냐" 그게 궁금할 때가 아니다

[주장]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유죄 판결, 사법 개혁의 필요성 각인시키다

등록 2021.01.14 07:34수정 2021.01.1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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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연방 의회의사당에 난입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상원 본회의장 밖 복도에서 의회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상·하원은 이날 합동회의를 개최해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인증할 예정이었으나 시위대가 의사당에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로 회의가 6시간 중단됐다가 재개됐다. ⓒ AP=연합뉴스

  
지난 8일 오전, 난장판이 된 미국 의회 관련 뉴스가 단연 화제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은 부정선거였다며 의사당을 불법 점거한 장면이 신문과 방송의 1면을 장식했다. 무력 충돌 과정에서 4명이나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을 자처한 미국이 어쩌다 저 지경이 됐느냐며 모두가 혀를 끌끌 찼다. 맹목적 트럼프 지지자가 20%를 넘는다는 건 미국의 민주주의가 파탄이 났음을 의미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 법이다. 그때 한 동료 교사가 말을 끊었다.

"트럼프 개인에게만 탓을 돌릴 순 없어요. 근본적인 원인은 SNS에 일상을 장악당한 미국 국민에게 있다고 봐요. 비단 미국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니죠. 지난해 검찰 개혁 국면에서도, 어제 나온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의 판결에 대한 여론의 반응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우리의 문제이기도 해요."

미국만 둘로 쪼개진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라, 미국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사회를 성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무력을 써서라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는 경향은 감염병처럼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SNS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SNS의 폐해를 바로잡지 못하면 세상을 파국으로 몰아갈 거라고 예언했다. '사회적 그물망'이라는 의미의 SNS는, 언제부턴가 뜻 맞는 이들끼리 모여 울타리를 둘러치고 타인들의 접근을 막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판결 분석보다 판사 분석 

과연 그랬다. SNS에는 내 편과 네 편만 존재한다. 흑과 백, 피와 아, 좌와 우, 진보와 보수만 있을 뿐, 중도는 없다. 중도를 자처했다간 양쪽 모두에게 비판을 받는 회색분자로 낙인찍힐 따름이다. SNS는 양자택일만 가능할 뿐, 벤 다이어그램 상 교집합은 애초 존재할 수 없는 세계다. 자연스럽게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의 판결로 화제가 전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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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가 세월호참사 1주기를 하루앞둔 2015년 4월 15일 오전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주민센터앞에서 '진실을 밝힐 때까지 끝까지 행동하겠다'는 교사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 권우성

 
"구OO 판사라는 사람, 박근혜 지지자 아니야?"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됐다는 소식에 황당해하며,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지인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모든 사회적 갈등을 사법부의 판결로 해결하려는 분위기 속에 판사에 대한 '신상털이'는 필수 절차가 됐다. SNS는 뒷조사를 위한 가장 유용한 도구다.

일약 SNS의 스타가 된 그는 대전지방법원의 현직 부장판사로, 지난 7일 대전과 충남 지역 전교조 소속 교사 6명에게 벌금형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사실 이번 판결이 판사의 이름과 행적을 콕 집어 조리돌릴 만큼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 선례가 있어서다.

해당 교사들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진상 규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교육부가 2019년 뒤늦게 고발을 취하했지만, 재판은 이어졌고 지난 2020년 11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 이어진 개별 하급심의 판결이다. 무려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고, 검찰이 기소한 지도 4년 넘게 흐른 뒤다.

말하자면, 그는 두 달 전 상고심에서 대법원의 기각 판결 취지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건, 그저 하급심 판사로서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그는 대한민국 사법부의 충직한 판사 중 한 사람일 뿐이다.

물론, 그의 '충직함'이 안타깝긴 하다. 판사는 각자 독립적으로 법률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데,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대법원의 결정을 그대로 따른 점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일개 지방법원 판사인 그에게 대법관에 맞서는 '투사'가 되라고 요구할 순 없다.

'구 판사가 누구냐'는 반응이 두려웠던 건, 그가 누구 편이냐며 따져 묻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그의 고향과 출신 학교를 따지고, 지금껏 그가 내린 판결 내용을 뒤져 성향을 분석하려는 습성은 개인별 확증편향을 강화하는 고약한 태도다. 사회적 갈등이 커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의 판결을 두고 SNS에선 찬반이 극명하게 갈린다. 교실을 정치화하는 전교조에 일침을 가한 용기 있는 결정이라며 환호하는 이들과, 정의를 가르쳐야 할 교사에게 불의에 침묵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라며 발끈하는 이들이 끝없이 충돌한다. 와중에 찬반의 입장만 남고 판결의 의미는 가뭇없이 사라져 버렸다.

구 판사는 진보적인 정부에 주눅이 들지 않은 '영웅'이면서, 동시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다를 바 없는 청산해야 할 '적폐'다. SNS가 규정한 그의 정체성이다. 이렇듯 여론이 극단적으로 쪼개진 상황에서는, 그도 그가 내린 판결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구OO 라는 이름에 주목할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법부의 퇴행적인 판결 내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윤석열이 공격당할수록 검찰이 혼연일체가 되듯, 구OO가 공격당할수록 사법부는 똘똘 뭉치게 된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조직이라면 개혁은 백년하청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그의 이름에 천착할수록 배가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윤석열에게 매몰되어 검찰 개혁의 대의명분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된다. 그에 대한 호불호에 부화뇌동하는 건 정작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연연하는 꼴이다. SNS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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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항공촬영한 서초동 검찰개혁 촛불문화제 2019년 10월 12일 서울 서초역 부근에서 검찰개혁사법개혁적폐청산 범국민연대 주최로 '제9차 사법적폐청산을 위한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연이은 유죄 판결은 정권 교체는 물론, 시대의 변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사법부의 '독립'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이 헌법적 권리라는 주장이 여전히 대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집단행동을 처벌하려면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판례도 무용지물이 됐다.

그들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석에도 연연하지 않는다는 태도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는 교사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를 결성하거나 가입하지 못하도록 한 국가공무원법에 대해 '그 밖의 정치단체' 항목이 지나친 규제라며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럴진대, 그들 앞에서 국제적 기준 운운하는 건 쇠귀에 경 읽기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희망은 있다. 이번 유죄 판결로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가공무원법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고, 초록 동색인 사법부의 개혁이 절실함을 각인시킨 계기가 되고 있다. 법원이 검사동일체의 무소불위 검찰과 다를 게 뭐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터다.

교사들 사이에선 판사의 개인적인 양심에 정치기본권을 의탁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질문도 잇따르고 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그들에게 '구걸'하는 것 외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자괴감의 표현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보다 법률 해석의 독점권을 행사하는 그들이 '갑 중의 갑'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번 판결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건, 결국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SNS가 덧씌운 맹목적인 찬반의 굴레에서 벗어나,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에 담긴 국가주의와 기득권의 논리를 간파하고 공유해야 한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자주 토론해야 한다.

정치기본권은 모든 시민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자 의무다. 교사도 시민이다.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교사에게 정치적 중립 의무 조항을 들이대는 건, 국가의 정책을 무조건 따르고 기득권 세력에 맞서지 못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일 뿐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 파는 법, 시민으로서 교사의 노력과 연대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실 정치적 중립은 이현령비현령의 개념이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이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그들이 하품할 소리다. 정치적 논쟁을 장려하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며 아이들을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첩경이라는 건, 국내외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정치적 중립은 교사에게 부과되는 의무라기보다, 정치 권력이 교육에 개입하지 말라는 선언에 가깝다. 관제 행사에 교사와 아이들을 동원하는 등 학교를 정치 권력의 선전장으로 활용해온 굴절된 현대사를 성찰해야 한다. 그런데도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사법부가 인권의 보루는커녕 불의한 권력의 일원임을 고백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족 하나. 한 지인은 구 판사의 처지가 이해된다며 너무 몰아세우지 말라고 했다. 그가 대법원의 결정을 그대로 따른 건 '튀지 않기' 위해서라고 해석했다. 평소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린다고 알려진 그가 대법원의 판단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는 거다.

그저 조직 내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단언했다. '보신'을 위한 그의 판결이 사법부 내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며,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사법 개혁만큼은 외부적 강제가 아닌 내부적 성찰로 시작될 수 있을까. 다른 일선 판사들의 대응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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