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환경-습관의 포로

'나'라는 환경

검토 완료

전희식(nongju)등록 2021.05.26 11:21
전화

비가 그치니 하늘이 더 높다. 뭉게구름은 파란 하늘을 한가로이 유영한다. 산에는 울긋불긋 갖가지 꽃들이 날마다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춤춘다. 일렁인다. 색색의 꽃들보다도 더 내 가슴을 벅차게 하는 장면은 연두색 그러데이션(gradation.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까지 이어지는 색 농도의 변화)이다.

연두색 하나로 저렇게 많은 농담(濃淡. 색깔이나 명암 따위의 짙음과 옅음. 또는 그런 정도)을 내보일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가로운 내 감상을 깬 것은 전화였다. 화면을 안 보고 전화를 받는 나는 휴대폰 회사 직원이 건 폰 마케팅 전화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상대방은 휴대폰을 새로 갈아보시라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가만히 들었다. 상대방의 조바심이 느껴졌다.

공감하고 연결되는 대화가 아닌, 물건이나 돈이랑 대화하는 사람이 갖는 조바심. 건조함. 일방성 등 텔레마케터 전화의 반 옥타브 높은 음색도 애잔해 보였다.

"네. 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겠네요."라고 대답을 할 기회가 오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러자 전화는 똑 끊어졌다. 적막에 휩싸인 휴대폰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잠시 평안을 비는 합장을 했다. 오늘 하루 그(녀)의 삶이 소통되고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광고 전화에 대해 이렇게 차분히 대응하는 게 습관이 되기까지 몇 번의 계기가 있었고 오랜 연습이 있었다. 새로운 습관은 어떤 계기와 반복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전화를 마무리하면 나는 물론 상대방도 스트레스가 새로 생기진 않으리라 본다.
 
본 책
 
위 글의 제목을 습관대로 '헌책'이라고 썼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다음 떠오른 제목은 '중고 책'이었다. 중고 책이라고 하니 더 송구했다.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된 책을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이놈의 습관. 참 무섭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맞는다고 여기는 모든 것, 습관 된 모든 것은 사실 진실은커녕 제대로 된 표현이 아닌 단어가 많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었는데도 그대로인 습관.

'본 책'도 '읽은 책'이라고 했다가 바꾼 것이다. 읽지 않은 책도 많았기 때문이다. 무슨 얘긴가 하면 서재에 쌓인 엄청난 책들을 작년부터 내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 누군가가 집에 있는 책을 다 불태웠다는 얘길 듣고 나서다.

책을 팔면서 관련된 책도 같이 드렸다. 공짜로. 반응이 다양했다. 고맙다는 반응은 가뭄에 콩이 나는 듯했다. 글쎄 1%나 될까? 덤으로 따라온 책자가 맘에 안 들었을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보낸 녹색평론, 지금여기, 귀농통문, 창작과 비평, 함께 사는 길, 생명평화등불 등은 환경과 영성 공부, 문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하찮은 책들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습관이었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습관! 항의와 불만 표출에는 익숙한 습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에는 인색하고 무덤덤한 습관. 그 습관이 주범인 것으로 보였다.

한 번은 오강남 선생이 쓴 '기도'를 주문 한 사람이었다. 슈타이너가 쓴 손바닥만 한 책 '기도와 명상'도 덤으로 넣어 이미 포장은 해 놨었다. 그분은 바로 안 보내면 취소하겠다고 엄포(!)부터 놨다. 신고하겠다. 고발하겠다. 상사에게 알리겠다. 책임자가 누구냐? 등은 우리에게 습관 된 단어다.

그분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이 기도를 주제로 설교를 하시고는 이 책을 추천했다는 것이다. "기도는 내가 그분(예수님. 신성. 부처)을 만나는 것이고 내가 그분처럼 되고자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내가 하게 되었다. 그분은 바로 누그러졌다.

켄 윌버의 '모든 것의 역사'를 산 어느 분은 책 속에 밑줄이 있다면서 책을 반납했다. 그분은 "내가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넣었다"라는 항의도 섞었다. 내가 넣은 책은 <지금여기>와 <생명평화등불> 두 권이었다. 켄 윌버의 가르침과 같은 맥락의 책이다. '초인생활-히말리야의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을 산 분도 같은 사례에 속한다.

이처럼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와는 사뭇 동떨어진 태도를 보이던 분들이다. 이렇게 습관은 의지를 무력화한다.
 
환경
 
에디슨이 만든 전구는 말 그대로 인간에게 광명이었다. 이제는 빛 공해를 거론한다. 슬레이트 지붕은 새마을운동의 총아였다. 매년 한 달 동안 이엉을 엮던 농부는 그 고역에서 해방되었고 그 많은 짚은 사료나 거름으로 바뀌었다. 오늘의 슬레이트는 초특급 발암물질이라 다 걷어낸다.

3-40년 전에는 자가용 있다면 와~ 했다. 요즘은 차가 없다고 하면 와~ 한다. 내가 어릴 때 우리 동네만 물레방아간에서 만든 전기가 들어와서 다른 동네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요즘은? 전기도 없는 곳에서 산다고 하면 와~ 하고 부러워한다.

이 말들에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걸 안다. 습관 된 나로 사는 사람들은 마음과 생각과 욕망의 방향을 잘 바꾸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습관을 바꾸는 것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 끈기도 있어야 한다.

비닐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플라스틱과 양은 냄비와 석유가 처음 등장할 때도 기억한다. 석유곤로와 석유를 넣은 호롱불은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시골을 떠도는 남사당패의 가설극장, 콩쿠르대회가 열리면 플라스틱 바가지와 플라스틱 들통이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누비 나일론 옷이 무겁고 빨래 힘든 솜 옷을 한순간에 밀어냈다. 시골에서는 뭐든 태웠고 그 재를 활용했다.

지금은? 180도 뒤집혔다. 최고 품목들이 오염의 원흉들이 된 게 많다. 플라스틱, 구식 가전제품, 화석연료 등의 신세가 그렇게 됐다. 아무거나 태웠다가는 엄청난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태양광 전기의 반도체 패널은?  전기 자동차 생명인 배터리는? 스마트 폰은? 넘치는 정보들은? 현재의 첨단 통신 기기들의 운명은?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딱 한 마디는 하고 싶다.

습관에 속박되지 않아야겠다고. 편리하고 익숙하고 신속한 그 습관에.
덧붙이는 글 전북환경운동연합 기관지에 실리기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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