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나이키가 '육상 도핑 논란'에 언급된 이유는?

[리뷰] <나이키 스캔들>

21.07.14 16:10최종업데이트21.07.14 16:10
원고료로 응원

<나이키 스캔들> 포스터 ⓒ (주)왓챠


2019년, 카타르 도하 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발생했다. 미국 육상팀의 알베르토 살라자르 코치가 도핑규정 위반으로 퇴출당한 것이다. 헌데 이 사건에는 기묘한 점이 있다. 코치는 도핑규정 위반으로 퇴출당했으나, 정작 도핑규정을 위반한 선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인 걸까.  

최정점에 오른 알베르토 살라자르와 그와 함께 '나이키 오레곤 프로젝트'를 진행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충격 스캔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나이키 스캔들>은 도핑규정을 어기고 처벌을 받은 코치는 존재하나, 도핑규정을 어긴 선수는 없는 이 사건을 다루기 위해 미국에서 시작된 육상붐에 먼저 주목한다.

1970~1980년대는 미국 육상이 전성기를 달리던 때이다. 이전까지 육상은 다른 스포츠에 비해 냉대를 받았다. 육상선수를 조깅러라 부르며 그들을 향해 야유를 하고 물건을 집어 던졌다고 한다. 허나 꾸준히 스타 선수가 배출되고 매스컴이 그들을 주목하면서 육상의 위상은 달라진다. 이 육상에 투자하며 인지도를 높인 스포츠 브랜드가 바로 나이키다. 와플 기계로 찍은 신발 밑창으로 처음 시작한 나이키는 육상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며 회사를 키워나간다.  

살라자르는 나이키가 주목한 스타 육상선수였다. 육상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마라톤 종목 선수였던 그는 연달아 신기록을 세우며 미국 육상을 이어가는 스타가 되었다. 살라자르가 주목받은 이유는 그의 정신력에 있다. 지금처럼 훈련이 체계화되지 않았을 당시 선수들은 전력의 80~90%만 사용해 대회에 임했다고 한다. 체계화된 회복과 치료가 없던 시기였기에 전력을 다하면 이후 선수생활을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토 살라자르의 '나이키 오레곤 프로젝트'
 

<나이키 스캔들> 스틸컷 ⓒ 김준모


헌데 살라자르는 무조건 100% 이상으로 전력을 다해 대회에 임했다. 그가 대회 도중 실신한 사건이나, 아프리카에서 열린 대회에서 경기 중 체중증가를 염려해 물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완주해 우승을 차지했다는 에피소드는 살라자르란 사람이 얼마나 승리에 목말라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살라자르의 정신력은 'JUST DO IT'이란 나이키의 슬로건과 잘 맞아 떨어졌다. 때문에 그는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키의 후원을 받았다.  

이런 미국의 육상열풍은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위기를 겪는다. 올림픽을 지배하던 미국 선수들은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미국 내에서도 아프리카 케냐 선수들이 대거 등장하며 '육상=미국'이란 공식이 파괴된다. 육상은 고대 올림픽 때 정해진 상징적인 종목이자 미국이 자랑하는 스포츠였다. 이에 2001년, 나이키는 육상 전설 살라자르를 코치로 미국 육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나이키 오레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참여해 높은 성적을 기록하며 성과를 거둔다. 그 중심에는 코치 살라자르가 있었다. 이 지점까지 보자면 작품은 침체기에 빠진 미국 육상이 전설에 의해 다시 부활하는 감동 드라마에 가깝다.

'나이키 스캔들'은 표면적으로는 살라자르의 문제를 보여준다. 허나 그 이면에는 '도핑'이란 것에 대한 심도 높은 질문을 던진다. 살라자르는 도핑규정을 어겼으나 또 어기지 않았다. 도핑은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을 위해 도핑테스트를 통해 약물 사용을 근절시키고자 한다. 허나 도핑기준을 교묘하게 벗어나는 약물의 주입이나 테스트 결과를 속이는 방식 등을 통해 승리를 쟁취하는 경우가 있다.

작품은 살라자르라는 인간의 성향을 이해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16살의 육상 유망주가 프로젝트에 합류했을 때의 일이다. 온갖 기록을 갈아치우며 차세대 육상 스타로 주목받던 이 선수는 성적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더니 프로젝트에서 나왔고, 이후 살라자르가 자신을 육체와 정신적으로 학대했음을 주장했다. 선수는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으나 살라자르는 무시했다고 한다. 만약 정상적인 코치라면 선수의 정신문제까지 관리했을 것이다. 허나 오직 승리만이 머리에 있는 살라자르에게 고민을 말한 선수의 행동은 투정에 불과했다.  

또 다른 논란 '기술 도핑'
 

<나이키 스캔들> 스틸컷 ⓒ 김준모


살라자르는 선수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을 훈련에 동원했다. 훈련량을 늘리기 위해 수중 런닝머신을 고안해냈고, 빠른 컨디션 회복을 위해 냉동캡슐 마사지까지 동원했다. 승리를 향한 열정을 지닌 살라자르의 모토는 분명했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규정을 어기지 않는 행위는 뭐든 가능하다'. 그는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을 얼마나 몸에 발라야 규정에 걸리지 않는지를 그의 아들을 통해 실험했다. 여기에 L-카르니틴이란 약물을 어떻게 하면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선수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실험하기도 했다. 나이키는 이 프로젝트를 함께했고, 살라자르는 선수들을 통해 규정을 어기지 않으면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했다. 이것이 코치는 도핑규정을 어겼으나 선수들은 어기지 않은 사건의 전말이다.

문제는 살라자르에 쏠린 대중의 관심에 나이키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나이키는 살라자르가 유죄가 나왔음에도 소위 말하는 '손절'을 하지 않으며 그를 지지한다. 이는 나이키 역시 살라자르와 같은 모토를 지니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나이키가 지닌 '기술 도핑'에 대해 언급한다. 나이키는 베이퍼플라이라는 육상 운동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 제품을 공개하기 2~3년 전, 프로젝트 참가 선수들에게 이 신발을 신고 올림픽 선발전에 나갈 것을 주문했다. 이 운동화는 기록을 혁신적으로 단축시키는 기술의 집약체였다. 허나 이 사실을 모르는 다른 선수들은 베이퍼플라이를 신은 선수들에게 일종의 '기술 도핑'을 당한 것이다. 이는 앞으로 선수들이 나이키 제품만을 찾게 될 것이란 걸 의미하고, 나이키가 자사에 협력하는 선수들에게 이런 기술 도핑을 시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살라자르가 규정의 아슬아슬한 선을 타려고 했다면, 나이키는 규정 밖에서 '도핑'을 저지른 것이다. 세계육상연맹은 이 기술 도핑에 대한 규제를 위해 규정을 신설했으나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다. 사람들은 더 빠른 기록과 더 치열한 경쟁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스포츠에 과학을 접목시킨 게, 정해진 규정을 어기지 않은 게 왜 문제가 되느냐는 논란이 일 수도 있다. 작품은 하나의 스캔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스포츠 그리고 과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나이키 스캔들 왓챠 왓챠 익스클루시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