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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색과 레이스 때문에... 대역 죄인이 되었습니다

남자 아기 옷을 보고 '훈수' 두는 사람들... 예쁘면 그만이지, 고정관념이 중요한가요?

등록 2021.07.29 13:32수정 2021.07.2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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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육아를 누군가는 기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언젠가 막이 내릴 시대이지만 안 그래도 힘든 육아에 이 시국이 무언가로 고통을 주는지 알리고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 보고 싶었습니다. 항상 말미에 적는 글이지만 아기를 양육하고 계시는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들께 위로와 응원 너머의 존경을 보내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기자말]
'고객님의 소중한 택배를 배송 중입니다.'

후배가 며칠 전, 아기 옷을 정리해서 보내준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더니 도착하려나 보다. 아기 옷을 보지 않고 받는 것은 좀 설레는 일이다.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도통 알 수 없다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택배 잘 받았어. 아기 잘 입힐게."
"네 선배. 새 거 위주로 보냈어요. 잘 쓰세요. 육팅하세요."
('육팅'은 육아 파이팅이라는 단어란다. 독자님께 배워 알고 있었다.)

개봉한 택배에는 아기의 여름 옷들이 몇 벌 들어 있었다. 순간 '요새 아기 옷은 색과 디자인이 화려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기 옷들이 예뻤다.

웬만하면 아기의 용품들을 물려받지 않지만 여름 아기 옷은 달랐다. 정말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땀에 젖어서, 과일 묻어서, 과자 흘러서, 이유식 묻어서, 물에 젖어서 등 이유를 다 열거하면 이 글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으니 그만해두자.

아무 생각 없이 아기에게 옷을 입히고 육아를 했다. 그러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준비하려고 옷을 입혔는데 이번 옷은 좀 특이(?) 했다. 레이스가 달려있었고 색깔도 하늘색이었다.

후배가 분명 남자 아기 옷을 보낸다고 한 터라 따로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기에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후배에게 감사의 표시로 무얼 보낼까?'라는 고민만 했다.

"와 가시나 옷을 입혀 놨노!"
 

아기 옷 할머니들의 정치적 대립의 주범이다. ⓒ 최원석

 
아기가 입었던 외출복이다. 아기에게 이 옷을 입히고 산책을 나갔다. 유모차에 아기를 태워서 나갔는데, 아기 엄마가 여름이라 아기가 더워하지는 않는지 표정을 살피고 필자가 운전을 도맡았다.

'아, 나 운전 많이 늘었네...'

순간 초보운전 딱지를 비로소 떼는 건가 으쓱해지던 때, 저 멀리 할머니들께서 더위를 피해 동네 입구에 계시는 모습들이 보였다. '이번에는 빨리 인사하고 지나가야지...' 하며 속도를 높였다.

산책이 잦아지면서 늘어난 고민이다. 아기를 데리고 가는 동선마다 할머님들이 모여계시는 곳곳이 있다. 감사하게도 할머니들께서 아기를 예뻐해 주시지만, 가끔 거침없이 하시는 말씀들에 부부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구 아가가 더워서 나왔나? 귀엽데이. 사내 아기라 했제?"

유모차와 운전자는 그렇게 전진 기능을 잠시 상실했다. 할머니들께서는 아기에게 '까꿍'이라고 인사를 하셨다. 아기가 일명 '코로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 귀엽고 신기하다고 하시며 자세히 아기를 들여다보셨다. 그러던 중, 한 할머니가 갑자기 말문을 여셨다.

"아를 와 가시나 옷을 입혀 놨노!"

이때부터였다. 부부는 멀뚱히 서 있고 아기는 할머님들을 멍하니 쳐다보기 시작한 것이. 할머니들 싸우시라고 아기에게 옷을 입혀 산책 나온 것이 아닌데 결국은 그렇게 되었다.

할머니들은 '두 파'로 나눠졌다. 5:2 이니 5분인 '여당'은 '아기에게 여자 같은 옷을 입히는 것은 절대 안 되는 일이며 귀신도 격노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2분인 '야당'은 '엄마 아빠가 상관없다고 하고 예쁘면 장땡'이라는 당론이었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괘씸하게 싸움거리를 제안(?) 한 자들에게 석방은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이쯤 되니 싸움의 끝이 궁금하기도 했던 것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여당은 당당하다. 압도적인 한목소리로 '아기는 남자 옷을 입어야 하고 색깔도 단색이어야 한다'라는 보수적 논리를 가져왔다. 야당인 할머님들께서는 '요새 옷이 얼마나 예쁜데... 손주들 옷 한 번도 못 본 무식한 할머니들이다'라는 진보적인 논리로 맞섰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우리 시대의 육아는 그랬었지...'라는 첨예한 주제가 제시되고, 모두 함께 추억에 빠지며 정치적 합의를 이루는 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우리 부부도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후배에게 넌지시 자초지종을 물었다. 후배의 변명(?)을 전한다.

"선배 미안. 직장 선배에게 여자 아기 옷을 선물하려고 뒀는데 거기 딸려서 갔나 봐. 어쩐지 없더라. 주위에 선물할 데 있으면 줘요. 난 다른 거 샀으니까..."

'동네 시끄럽게 만든 죄인의 죄'가 더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남자 옷이라고는 한 적 없지만 여자 옷이라고도 인정한 적이 없는 양심 없는 피고인'이 비로소 탄생하고 만 것이다.

이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다. 부부가 '소수정당의 비애'라고 명명한 추억이다. 아기가 기기 시작하고 여름 옷을 입히면서 아기 배에 채워주는 일명 '배앓이 방지 밴드'를 구입했을 때다. 필자는 인터넷으로 밴드를 구입하며, 색깔을 지정하지 않는 처참한 실수를 저질렀다.
 

배 앓이 밴드 소수 정당의 노선과 메시지를 정해 준 고마운 쇼핑몰 사장님의 선물. ⓒ 최원석

 
인터넷 쇼핑몰 대표님께 감사 인사를 전한다. 기본 색상 설정을 분홍으로 해두신 센스를 잊지 않겠다. 색깔이 너무 찬란하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분홍색이다. 이거 덕분에도 많이 혼나고 박살 났다. 감사하고 고마우신 분, 건강하시라... 이 상처가 아물 때까지 재구매는 없을 테다. 이 글로 송별 인사를 드린다.

이 밴드를 아기가 하고 기어 다니는 동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공유했는데 이 동영상을 보신 지인들과 친지들은 창의적인(?)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셨다. 다들 분홍색이 뭐냐고, 남자 아기에게 저 색깔을 어떻게 입히냐고들 하셨다.

할머니들의 정치적 대립은 그나마 첨예했다면 이번에의 대립은 수십 명을 위시하는 거대 여당과 우리 부부가 전부인 소수 정당의 싸움이었다. 2명이 야당의 트렌드인가 보다. 할머니들도 두 분이셨지 않은가.

둘 중 그나마 맷집 좋은 필자가 대변인으로 나섰다. 얼마 안 가서 대변인은 용맹한 자태로 나선 것이 무색하게 집중 난사를 당하기 시작했다. 소수정당의 당론과 대변인의 메시지는 '분홍색도 예쁘지 않나요...'였다. 애초부터 잘못 선택된 노선이었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겨진 소수 정당은 처참하게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OO다움'은 없다 


아기의 옷 아기의 옷이 아직 생생한 소수 정당의 꿈을 대변해 주고 있다. ⓒ 최원석

 
언제나 그렇듯 소수정당은 존재해야 한다. 인터넷 쇼핑몰을 돌다 우연히 발견한 옷이다. 예뻐서 샀다. 하지만 SNS의 폐해를 몸으로 겪어본 바. 저 옷을 입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소수 정당의 밝은 미래와 번영 그리고 정신적인 건강 등을 고려해 올리지 않는 노선을 취하기로 했다.

이번에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며 아기에게 다가올 문제들을 직시하게 되었다. 남자 아기는 '남자 아기다움'을, 여자 아기는 '여자 아기다움'을 강요당하는 듯하다. 부모가 이에 맞춰 선택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기에게 더 어울리고 예쁜 옷을 골라낼 것이다, 고정관념과 상관없이. 그리고 다시 정책으로 제안할 것이다.

"BTS도 보라색을 좋아해서 자신들의 색깔로 씁니다. 아기들에게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을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코로나 시기, 요즘 아기들에게 외출복이 얼마나 될까. 있더라도 몇 번이나 입혔을지 생각하면 좀 서글프다. 이 상황에서도 예쁜 옷을 한 번이라도 더 입히려 노력하고, '홈 스튜디오'에서 촬영으로 기록하는 또래 아이들의 사연을 보며 이 글을 쓴다. 

이 시간에도 아기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계실 부모님들이 계시다. 이 시대의 부모님들께 BTS의 예쁜 보라색과 음색을 닮은 응원과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을 보낸다.

"육팅합시다. 여러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추후 작가의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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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영업자님들을 컨설팅하며 요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콘텐츠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TV에 출연할 정도로 특별한 아기 필립이를 '밀레니얼 라테 파파'를 지향하며 '감성적인 얼리어답터 엄마'와 하필 이 미칠 코로나 시대에 키우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와 관련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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