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자 1명 발생하자, 학사생 모두 쫓아낸 향토학사

남명학사, 학사생에 문자로 임시 휴관 통보... 갈 곳 잃은 경남 청년 400명

등록 2021.07.26 10:23수정 2021.07.2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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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7월 21일. 1층 로비에 수북이 쌓인 택배 상자들. 남명학사는 휴관 조치 이후 재사생들에게 택배비를 지원했다.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사진에서 택배 상자 부분만 모자이크 처리했다. ⓒ 윤형

 
서울에 있는 한 향토학사가 건물 내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한 달간 임시 휴관 조치를 내리고 이 사실을 학사생(재사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학생들은 통보 이후 6일 만에 학사에서 나가야 했으며 폭염과 코로나19의 위협 속에서 1개월간 거주 불안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황당한 얘기지만 최근 기자가 직접 겪은 일이다. 지난 15일 학사생 중 1명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학사는 학사생의 외출외박을 이틀간(16~17일) 통제했고, 전 학사생은 코로나 검사 결과를 제출했다. 17일 오후 1시쯤 학사는 전 학사생 및 직원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 검사 결과 '전원 음성'이 확인됐다는 내용의 문자를 학사생들에게 보냈다. 외출외박 제한조치도 해제됐다.

이후 학사 측은 임시 휴관을 알리는 안내문을 학생들에게 문자로 보냈다. 오는 23일부터 학사를 휴관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7월 23일 20시까지는 귀향 출발!!"이라고 쓴 문구가 기자 눈에 들어왔다. 원래 8월 23일까지 거주하기로 돼 있었으니 학사생들은 꼬박 한 달 일찍 나가게 된 것이다.
     
학생들의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설립된 남명학사
 

지난 17일, 남명학사측이 재사생에게 문자로 보낸 임시 휴관 안내문. ⓒ 윤형

 
향토학사는 타지역에서 공부하는 지역 내 대학생들을 위해 지자체별로 예산을 들여 운영하는 기숙사를 말한다. 남명학사 서울관은 경상남도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경남개발공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학사 홈페이지 소개문에 따르면 "학생들의 높은 주거비용과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이용료가 저렴하면서도 양질의 주거서비스를 제공하여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에 애로를 겪는 경상남도 대학생을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곳이다. 최대 400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로 2018년 1월 준공돼 4년째 운영중이다. 한 달 기숙사비는 15만 원으로, 하루 3끼 식사까지 지원한다.

저렴한 주거 비용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지역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던 만큼 학사의 갑작스러운 휴관 조치는 학생들에게 큰 고통을 줬다. 학생들의 개인 사정에 따른 예외나 다른 주거 대안은 없었다. 더군다나 남명학사 서울관의 일방적 휴관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도 방역을 이유로 학사는 문을 닫았다. 그 때도 학생들은 불가피하게 방을 비워야 했다.

학사가 휴관 조치를 결정할 때 학생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경남일보>는 지난 2월 남명학사가 학생들과의 '소통 부족' 문제를 지적 받아왔다고 보도했다. 이번 휴관 조치에 대한 설명도 안내문 한 통이 전부였다. 

청년주거권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은 지난 23일 "경상남도 남명학사 서울관 휴관 조치, 청년 주거권 침해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냈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남명학사의 선택지 없는 휴관 조치는 사생들의 주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조치"라며 "사생들의 주거 안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단순 시혜적인 관점이 아닌 권리 보장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2021년 7월 23일. 학사에서 나와 서울 중랑구에 있는 친구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중에 찍은 사진. ⓒ 윤형


주거가 불안하면 미래를 꿈꿀 수 없다. 나는 언론인의 꿈을 품고 서울에 와 공부했고 오는 8월 졸업을 앞두고 있다. 4년간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3년 동안 대학교 기숙사에 살았고 한 학기는 원룸 그리고 마지막 학기를 경남학사에서 보냈다. 늘 좁은 방 한 칸이었지만 적어도 계획한 날에 맞춰 향후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내게 있었다.


이번처럼 예정된 기간을 채우지 않은 채로 일방적으로 쫓겨난 건 처음이다. 문제를 겪는 당사자가 되어보니 당당히 문제를 제기할 생각보다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앞섰다. 당장 살 공간을 구하러 다니는 데 시간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인턴과 아르바이트, 연구, 취업 준비 등의 이유로 서울에서 거주할 필요가 있던 학생들은 급히 고시텔을 알아보거나 친구의 집을 전전하게 됐다.
#남명학사 #청년주거 #주거권 #청년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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