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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고 미루던 건강검진에서... 남편은 암을 발견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암 진단이 우리 가족에게 미친 영향

등록 2021.07.29 17:38수정 2021.07.2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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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 pixabay

 
아이들이 머리가 크니 부모의 몸 상태를 살폈다. 조금만 아파도 아프다 말하던 아이들은 어느샌가 스스로 병원을 다니고 치유의 방법을 찾고 약을 먹고 있었다. 아이들의 눈에도 부모의 나이 듦도 보였고 부모의 건강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이 들어가며 몸의 이상 징후는 순서를 가리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오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허리가, 어느 날은 다리가, 눈이, 이가, 몸살이, 두통이... 그렇게 산발적으로 하나씩 또는 한꺼번에 자극이 왔다 가는 것을 반복했다. 그래도 그저 나이 듦의 표시로 읽었다. 대부분은 참았고 가끔 표정으로 드러났던 것 같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건강검진의 필요성에 대해 노래를 불렀다. 

40대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내오는 건강검진 안내문을 받는 시점에서 며칠 잔소리하고, 들으며 지나갔다. 그렇게 10년을 보냈고, 50대에는 조금 더 자주 집요하게 아이들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알아서 한다고 했다가, 내년에, 또 내년에 그렇게 미루던 것이 결국엔 견딜 수 없게 되어서야 검진을 받았고 큰 수술에까지 이르게 되어버렸다.

내심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지독히 운 없어야 걸리는 병인 것처럼, 지독한 불운이 우리에게 찾아올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워낙 건강 체질이라서 걱정할 거 없다는 말은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었다. 병증은 평소 힘을 잘 쓰고 안 쓰고와는 무관했다. 스스로 불운의 씨앗을 감지하지 직전에도, 병원에 들어가면 수술이 아니면 답이 없을 테니 아예 안 가겠다는 장난스러운 말로 아이들의 입을 막았다.

'설마, 심각한 병이겠어' 생각했는데 

건강검진을 신청하고 병원에 가니 첫 말이 심한 타박이었다고 했다. 아니 여태껏?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등등의 놀라움과 걱정, 역정이 담긴 심한 잔소리를 의사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그 와중에도 하마터면 다 관두라고 하고 되돌아 나올 뻔했다고 남편은 말했다.

남편은 생년이 홀수(2년에 1회 주기로 검사, 홀수년에는 홀수년생, 짝수년에는 짝수년생)여서 건강검진의 해당 항목들을 모두 신청했다. 자세한 검사를 위해 들어가는 추가 검사까지 신청했다고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검진을 받는 이유에 대해 가족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달 정도 몸이 계속 처지니 검진을 받아 보려나 생각했다. 속으로 부글부글 온갖 의심과 걱정이 끌어 오르는 것을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일반검진 항목 외에 암에 대한 검사도 40세 이후부터는 거의 모두 건강보험 검진에 해당이 되니, 남편은 암을 조기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이미 많이 놓친 셈이었다. 2년에 한 번 검진할 수 있는 것을 지금까지 외면하고 병을 키워왔으니, 병원에서 놀라움을 표현했어도, 그 말이 듣기 싫을 정도의 강도였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할 말은 없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신청하고 검진하는 당일까지만 해도 가족은 평화로웠다. 건강검진을 신청했다는 것 자체로 이미 건강이 보장된 느낌, 안심해도 되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설마 심각한 병이겠어' 생각하며 애써 걱정을 미뤘던 것 같다.

내시경을 실시하고 당일 바로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담당 의사는 자신은 돌려 말하지 못한다면서 내밀한 몸의 상태를 솔직하게 알려주었다. 암을 단정하지 않을 수 없는 영상이라고 했다. 사이즈도 제법 크다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의뢰했지만, 요식행위일 뿐 결과는 자신의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매일 어지럽고 기운이 빠진다던 남편은 빈혈 수치도 높았다. 정상인의 절반 정도의 수치였으니 상태가 심각한 것이고, 일상생활이 어려웠을 거라고 의사는 말했다.

돌이켜 보니 남편은 한 달이 넘게 온도가 미열을 달고 살았다. 날은 뜨거워지는데 손발은 더 뜨거웠다. 매일 찬 것을 찾았다. 냉동실 가득 아이스크림을 대놓고 먹었고 사탕도 즐겨 먹었다. 입맛이 없으니 후루룩 넘어가는 것을 찾았고, 식사의 양이 급격히 줄었던 것 같다. 식사량이 주니 살이 빠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지럼증도 호소했고 전반적으로 기운이 없다고 했다.

큰 병원에 예약하라고 해서 조직검사 결과일 이후로 예약을 잡았다. 검사 결과는 마치 사망 선고 같았다. 자세한 결과를 알기까지의 그 일주일은 가족들에겐 악몽의 시간이었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수술하면 간단히 제거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단계를 지나친 것인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의문이 쏟아졌지만, 안심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집안은 내내 암울한 분위기였다.

수술을 앞둔 남편이 건넨 서류들 

수술 시간이 잡히고서야 가까운 남편의 형제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우리가 처음에 결과를 알고 느꼈던 캄캄하고 막막한 심정이 이제 그들의 차례였다. 지금까지 알게 된 것들을 세세히 알려주었고 다시 울고 한숨 쉬고 기도하자고 했다. 그들의 흔들림을 따라 우리는 다시 또 출렁거렸다. 

수술을 위해 병원에 들어가기 전날, 남편은 자신이 하는 일의 모든 것들을 정리해서 내게 알려주었다. 온갖 증서와 채권 서류, 구두로 약속된 것들을 급하게 문서화한 것들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였다. 내가 느끼는 비애와 남편이 사정은 같은 듯 달랐겠지만, 남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을 수 없었다. 일부러는 아니었고 모든 이야기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술을 앞두고 불안한 와중에도 가족들은 보험을 들어 둔 것이 있는지 물었다. 사실 남편도 수술을 앞두고 제일 먼저 그것부터 확인했다. 건강하게 천년만년 살 줄 알았다고 했더니 당황하면서 씁쓸하게 웃었고, 곧바로 적은 보장이지만 있다는 말에 한시름 더는 듯 안도하기도 했다. 힘든 시절에도 해지하지 않고 버텼던 크지 않은 보험이 큰 지출을 앞두고 그나마 위로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 가족은 남편의 항암치료를 앞두고 잠시 평정심을 회복했다. 남편의 진단 이후 온 가족에게 암 대비령이 내렸다. 호주에 있는 가족은 종합검진을 바로 신청했지만, 1년 정도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온다고 했다. 다른 가족들은 종합 검진과 내시경을 접수했다고 했고, 암 보장이 되는 것과 실손 보험을 확인하는 등 모두가 분주했던 것 같다. 

남편의 발병으로 각자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게 되었으니 큰 충격만큼 주변 가족들 모두에게 단단히 경각심은 심어준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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