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사이에서 행복해지기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 리뷰

검토 완료

우진아(charm10)등록 2021.09.09 11:03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본문 112쪽  
   
 책 표지 뒤에 적힌 이 책의 대표적인 문장. 나는 이게 꽤 주옥같은 문장인가 보다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은 굉장히 섬뜩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바로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유나에게 인간은 딱 세 종류였다. 승자, 패자, 모르는 자. 상대에 따라 대응 방식도 달랐다. 승자에겐 입안의 혀처럼 굴고, 패자에겐 송곳니로 군림했다. 모르는 자는 입 냄새쯤으로 취급했다. 유나에게 그녀는 패자 부류였다. 패자에겐 설명하지 않는 게 '유나의 법칙'이었다. 본문 291쪽
    
 이 소설의 주인공 유나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런 부류를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직장생활을 거쳐 지금까지 열 손가락 안에 다 꼽을 정도로 많이 만나왔다. 그로 인해 이유가 뭘까 늘 자책하며 나를 탓해왔다. 그런데 이제 나를 자책하지 않으려 한다. 이 책에서 은호가 꿈결에서 자조적으로 내뱉는 소설의 맨 마지막 문장.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가 바로 지금의 내 심경이다. 나는 어쩌다 그런 못된 사람을 그리도 많이 만났을까. 찬란한 황금빛으로 가득해야 했던 20대를 잿빛으로 만들어버린 그 사람들에게서 지금은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서 매우 만족한다.     

 이건 내 주관적인 의견일 수 있지만, 그런 부류들은 도시로 나갈수록, 또는 성공과 승진을 향한 집착이 강한 사람이 많은 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새파란 새내기 직장인에서도 종종 발견되고는 한다. 나는 2년 차 때, 나이는 같지만 1년 후배를 도와주기 위에 전근 간 옆반 선생님이 넘기고 간 인수인계 물건을 팔에 가득 안고 새로 발령받은 그녀의 교실로 가서 인사를 건넸다. 지금은 거의 10여 년 가까이 된 일이라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내게 고성을 지르고 짜증을 냈던 일은 선명히 기억한다. 그리고 같이 근무한 그 해 1년 내내 내게 곁을 주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나에 대해 귓속말을 하고 배척하며 은근한 따돌림을 조장했다. 그 외에도 대학생 시절, 내가 지역 방송국 PD랑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고 몸을 바르르 떨며 노려보던 동기 언니, 반갑다고 인사하려 다가가는 나를 짜증을 내며 노려보고 밀친 다른 과 동기 언니, 책꽂이에 꽂혀 있던 내 피아노 책을 보며 "누가 보면 피아노 잘 치는 줄 알겠다?"라며 비아냥대던 동기 언니 등 너무 많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힘들었다.
"도둑년." 그녀는 대꾸도,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저 후들거리는 다리가 꺾이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을 뿐. 그땐 몰랐다. 왜 자신이 동생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벌벌 떨고 있는지. 이제 와서 추측건대,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자신을 향한 유나의 감정이 증오라는 것을. 그것도 자신을 통째 삼켜버릴 만큼 깊고 어둡고 뜨겁다는 것을. 본문 159쪽     

 왜 나는 돌이켜 생각해보며 그녀들에게서 유나가 자신의 언니에게 내비친 증오라는 감정이 겹쳐지는 걸 깨달았을까? 그녀들은 나를 증오했나 보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을 만큼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 감정을 표면화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는 회의를 느꼈다. 누군가를 믿고자 하면 본인의 주장 하나로 충분한 게 인간이었다. 누군가를 믿고 싶지 않다면, 요구가 많아진다. 증거와 증인과 알리바이……. 요구를 다 충족시켜도, 최초의 의심스러운 인상은 쉬이 거둬지지 않는다. 자기 판단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결과 별개로 낙인은 남는 셈이었다. 경찰은 그를 믿고 싶어 하지 않았다. 
본문 244쪽     

 나는 그 당시 순수하고 여렸던 20대 시절에 지독하게 당한 따돌림과 괴롭힘이 너무 수치스러웠다. 부끄러웠고 괴롭고 힘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까, 뭘 그렇게 잘못했을 까라고 자책하며 더더욱 나를 코너로 몰았다. 그럴수록 나의 자존감은 바닥나고 자신감도 한없이 추락했다. 늘 자기 검열을 하고 눈치를 보고 피해의식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내가 정신을 가다듬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고 느낀 그때, 최후의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진실을 밝혔을 때 일제히 나에게 증거를 요구하며 나를 정신병자, 거짓말쟁이, 소설가로 몰아갔다. 나는 너무나 무력했었고 나를 지킬 힘이 없었을 뿐인데 그것이 화살이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와 박혔다. 무수한 제2의, 3의 화살들이 무차별적으로 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거의 수천만 원을 들여 심리치료를 받아왔으며 고통과 아픔, 슬픔을 문학과 예술로서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다. 여전히 간간히 되살아나는 PTSD로 고통받고 있지만, 은호의 말대로 나는 운이 없었을 뿐, 더 이상 자책하지 않고 좀 더 강하고 현명한 내가 되기 위해 부단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소설 자체는 정유정의 전작인 <종의 기원>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아마도 종의 기원은 프레데터를 소재로 한 한층 더한 사이코패스를 다뤘기 때문에 박진감 넘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정유정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을 겪어봤기에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가 묘사하고 싶은 주인공을 여러 사건과 대사, 감정이나 행동 묘사들로 꽤 구체적으로 잘 그려낸 것 같다. 작가의 마지막 말처럼 결국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다시금 생각해볼 점은, 이 책의 주인공 유나처럼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하는 사이코패스로 사는 것이 아닌(또는 그보다 덜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닌), 우리의 행복만큼이나 타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책임을 함께 나눌 필요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 https://brunch.co.kr/@lizzie0220/231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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