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사과를 구제하는 두 가지 방법

쉽지만은 않은 자연농법, 나누는 마음이 따뜻하다

등록 2021.09.28 16:01수정 2021.09.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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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우리는 지인의 농장에서 사과를 따 온다. 농장 주인 프란체스코는 부업 농부이다. 어느덧 단골이 되어버린 우리는 그곳에서 유기농 마늘과 파란 감자를 산다. 가끔 다른 야채가 있으면 기웃거리다가 구입하곤 하는데, 완전 자연 농법으로 키워진 것들이어서 정말 맛이 좋다.

인심 좋은 프란체스코는 매년 이맘때면 우리에게 연락해서 사과를 따 가라고 한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과가 속에서부터 벌레가 먹어서 판매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 해만 그러나 했지만 한 번 그렇게 시작된 이후로는 계속 그런 상태이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유기농으로 농약 하나도 안 치고 키우는 그는 전업 농부도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그렇게 깊게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판매할 수 없는 사과를 잘라보면 안쪽이 이렇게 골고루 멍이 들어있다 ⓒ 김정아

 
누군가 따서 활용하지 않으면 버려지게 될 사과들. 그것은 농부에게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리라. 나무에 가득 열렸는데, 하나같이 안 좋은 흔적이 있다. 일명 못난이들이다. 베어 먹기에도 불안하긴 하다. 안에 벌레 알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프란체스코는 식초를 만들고 있는데, 너무 많아서 식초에 치일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래서 우리도 식초 만들려면 가져가라고 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남편은 마시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다. 식사 중에 와인은 필수이고, 애플 사이다(사과주)나 맥주 같은 것들을 간식과 함께 즐기다 보니, 사 먹으려면 돈이 정말 많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술들을 직접 집에서 담가 먹는다.

사과가 한창 나오는 이 계절에는 애플 사이다를 만들어야 한다. 농장에서 대량으로 사과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워낙 많은 양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용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게 만들고 아껴 먹는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프란체스코의 제안은 우리에게 딱 맞았다.

더구나 그 당시에, 프랑스 노르망디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였고, 그곳의 애플 사이다가 너무 맛있어서 벼르던 차였기에, 그해부터 우리는 프란체스코의 농장에서 사과를 따다가 매년 넉넉하게 애플 사이다를 만든다.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이용해서 나는 그 옆에서 식초를 만드니 풍요로운 계절을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가을이 되면 그에게 감자와 마늘을 사고, 적당히 익은 사과를 직접 따온다. 올해에는 경쟁자가 생겼으니 더 미루지 말고 빨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사슴들이 사과 맛을 봐서 이미 먹고 있다는 것이다. 
 

사슴들이 사과 따는 우리를 쳐다보며 당황하고 있다 ⓒ 김정아

 
집에서 50분 정도 걸리는 그곳에 도착하면 언제나 그렇듯 프란체스코가 나와서 반겨준다. 남편은 감사의 뜻으로 작년에 만든 애플 사이다를 전했다. 그리고 와인을 꺼내니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친다. 직접 만든 와인이라고 했더니 웃으며, 그렇다면 먹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의 추석이라고 설명하면서 녹두전도 함께 내밀었더니, 뭘 이렇게 많이 주냐고 해맑게 웃는다. 비용을 지불하려고 시도도 해봤지만 웃으며 거절했다. 사슴도 공짜로 먹으니 우리도 공짜로 가져가는 게 맞다고 말이다.

대략 여덟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는데, 그중 세 그루만 빼고 모두 비슷한 상태이다. 약을 치지 않는 이유는, 그러면 사과를 얻기 위해 다른 작물들까지 농약의 피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란다. 땅에 약이 스며들면 더 이상 자연농법의 작물이 아니게 되니 자기는 그냥 자연의 상태로 기다리겠다고 했다.

예전에 읽었던 <기적의 사과>라는 책이 생각났다. 10년 만에 벌레와 피해로부터 벗어난 일본의 한 농부가 쓴 책이었는데, 큰 감동을 받은 기억이 난다. 자연 농법은 쉽지 않다. 만일 본업으로 사과를 판매하는 농부라면 이렇게 기다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올해에도 자연농법의 감자와 마늘을 구할 수 있었다.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 김정아

달팽이도 나눠먹는 사과 ⓒ 김정아

    
그의 이 사과들은 울퉁불퉁 예쁘지 않지만 무척이나 향기롭다. 달팽이들이 높은 곳에 있는 사과까지 먹겠다고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면 놀랍다. 우리가 사과를 따니 사슴들이 나타나 눈치를 본다.

사과도 좋지만 이렇게 깨끗한 자연의 일부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밑에 떨어져 있는 것들 중에서도 성한 것들을 골라 담는다. 다섯 그루의 사과나무를 깨끗하게 땄더니 대략 100킬로 정도 되었다. 이 정도의 양이면 발효통 두 개를 채울 수 있다. 
 

차안에 사과향이 가득 퍼지고, 기분은 들썩들썩 ⓒ 김정아

   

창고에 저장된 사과들. 창고 안이 사과향으로 가득하다 ⓒ 김정아

 
차에 싣고 오는 길이 즐겁다. 남편은 애플 사이다를 만들 즐거움으로 흥겹다. 차 안은 사과 향기로 가득 찬다. 집에 가져오면 일단 서늘한 창고에 보관하고, 주말이 되면 애플 사이다를 만들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이다라고 하면 달달한 탄산음료를 떠올리는데, 우리가 만드는 것은 노르망디 스타일을 재현한 사과주이다. 일반적으로 판매되는 애플 사이다나 사과식초에는 이스트라든지 설탕이라든지 기타 첨가물이 흔히 들어가는데, 우리는 정말 다른 것 아무것도 안 넣고 사과만 가지고 만들어서 진짜 맛이 깔끔하다. 

나무로 만든 구식 도구를 이용하여 만들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느리게 살기가 익숙해지니 이 과정도 즐길만하다.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간 기분을 느끼며 말이다.
 

애플사이다 만들기 ⓒ 김정아

 
*사과주와 식초 만드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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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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