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불안이란 감정이 유발한 새로운 '야성적 충동'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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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훈(simpson123)등록 2021.11.22 08:39
 
 
 
"인간의 의지는 추측컨대, 오직 '야성적 충동'의 결과로 이뤄질 수 있을 뿐이며 수량적인 이익에 수량적인 확률을 곱하는 식의 계산적 이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케인즈를 인용하며 시작하는 조지 애커로프와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은 경제현상의 기저에 깔린 인간의 '비합리적 동기'에 집중한다. 야성적 충동은 '경제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는 요소를 말하며, 사람들이 모호성이나 불확실성과 맺는 독특한 관계'를 가리킨다 20세기 대공황 시기에 비합리적 경제 동기로서의 야성적 충동을 제시하며 정부의 역할을 부각시켰던 케인즈와 연결된 애커로프와 쉴러의 이론은 현대의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며 새로이 발생하는 비상식적인 경제현상을 해석하는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야성적 충동>은 인간에 있어 애덤스미스로 대표되는 고전 경제학의 맹점을 지적하는 데서 시작한다. 고전 경제학은 '호모 이코노미 쿠스' 즉, '이콘'을 전제하는데 이는 '합리적 인간'이라고 번역되며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사고하며 고전 경제학자들이 제안하는 모델에 부합하는 경제적인 인간'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한 고전 경제학에서 경제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들이 자유시장에서 경제적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한다면 상호 간에 도움이 되는 상품 생산과 교환의 모든 기회를 활용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저절로 완전고용이 달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볼때나 현실을 볼 때, 대규모의 실업자들을 마주하고, 상품의 생산과 교환이 적절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목격하며, 세계의 빈곤과 이로 인한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되는 것을 목도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는 고전 경제학을 뛰어넘어 경제 현상 기저에 깔린 인간의 비합리적 동기, 즉 '야성적 충동'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감과 그에 따른 상승효과, 공정성, 부패와 악의에 대한 태도, 화폐 착각, 그리고 이야기 등을 주제로 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야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여러 요인들에 대한 설명에 이어,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건이나 역사 가운데 지속적으로 발생한 경기 침체 등 합리적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경제 현상들의 기저에서 작용했던 야성적 충동들을 분석한다. 이 가운데서 제시하는 금융위기 현상, 비자발적 실업이 만연한 노동 시장, 인플레이션, 부동산 시장의 정기적인 부침, 그리고 대물림되는 소수계의 빈곤에 대한 저자의 의견은 흥미롭다.
 
<야성적 충동>이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 기대'와 '효율적 시장'의 방향에 경도되어 있는 시선을 경제 위기의 기저에서 작동하는 가장 중요한 역동성 '야성적 충동'을 고려하라는 것이다. 야성적 충동을 반영하지 않는 경제모델은 진정한 문제의 근원을 가림으로써 실질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방해가 된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나타나는 여러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데도 유용하다. 필자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팬데믹 상황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경제현상들을 제시하고, 위기 상황에서 발현되는 야성적 충동의 근원에 주목하고자 한다.
 
새로운 야성적 충동을 일으키는 '불안'이라는 요소
 
경제는 코로나-19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영역 중 하나였다. 소비가 위축되고, 국가 부채는 증가하며, 많은 전문가들은 대공황보다 더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현실은 예상과는 달랐다. 실물경제는 붕괴하는 가운데 주가는 상승해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고,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다. 또한 기업 CEO의 언행 등 작은 이슈에도 큰 폭으로 가치가 변동하는 가상 자산에 기록적인 자본이 쏠리는 유래없는 현상이 발생했다.
 
코로나로 인해 경제 관련 지수들은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통계를 나타냈다. 코로나 초기에 국제통화기금(IMF)는 글로벌 경제성장률을 –3.0%로 발표하며 세계경제가 1930년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 판단했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적 손실이 2021년까지 9조달러 (1경 966조원)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한국 또한 2020년 기준 5만 1772명의 역대 최다인 실업급여 수급자 수를 기록하는 등 많은 지표에서 심각성이 드러났다. 그러나 코스피 지수는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갔다. 2021년 1월, 코스피 지수는 3000선을 돌파함으로써 2020년 1457까지 떨어진 이후 두 배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코로나 이전의 저축, 팬데믹 이전의 연금과 적금 방식으로는 재산을 늘릴 수 없고, 자칫하면 코로나 시대에 경제적으로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주식 시장에 뛰어들게 만들었으며 이는 코스피 3000돌파와 국내총생산을 뛰어넘는 가계부채(1682조원)라는 모순을 동시에 기록하게 했다. 이후 현재까지도 코스피 지수는 꾸준히 3000선을 유지하고 있다. 동시에 가계부채 또한 2000조를 목전에 두고 있다.
 
주가가 꾸준히 상승한 것과 더불어 가상자산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가상자산 거래액이 하루 24조를 기록하고, 대한민국에만 가상자산 거래소가 200개가 넘는 등 가상자산 열풍이 불었다. 3년 전 2018년의 가상자산 붐은 젊은 세대를 비롯한 소수에 국한되었었다면 올해 가상화폐에 몰리는 인원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증가했으며, 거래액 또한 급증했다. 가상자산 예치 상품 또한 폭발적으로 성장해 7000억 정도의 예치 금액을 보유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해서 유지됨에 따라 은행에 예금을 두기보다는 가상자산을 통해 큰 수익을 얻으려는 심리가 가상자산 확대 기저에 깔린 심리이다.
 
모든 것이 '불안'에서 기인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불안은 자신이 생각하고 염원하는 자신의 지위와 현재의 지위가 일치하지 않음에서 유발된다고 주장한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은 개인에게 당신이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개인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을 차지하게 했다. 그리고 이러한 걱정들은 상식과 동떨어진 행동들로 이어졌다. 앞서 말한 경제 영역에서 드러나는 비상식적인 행태는 코로나가 만들어낸 개인의 불확실한 미래 지위에 대한 불안에서 기인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야성적 충동>의 저자들은 지금껏 발생했던 비합리적인 경제 현상들에 대한 해법으로 거시경제이론에 야성적 충동을 반영할 것을 제시한다. 합리적 반응과 합리적 경제적 동기만으로 이해했던 경제 작동 방식을 비경제적 동기와 비합리적 반응의 결합까지도 고려하라는 것으로 전환하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최고의 상품을 제공하는 동시에 정부가 규칙을 정하고, 심판으로서 개입하는 경기장을 만들라고 주장한다. 야성적 충동이 공공선을 위해 창의적으로 발휘되도록 통제되는 환경을 조성할 것을 피력한다.
 
이와 같은 야성적 충동의 거시경제 반영과 공공선을 위한 통제는 한국 경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정부와 경제당국은 적절한 규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통해 경제 현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자유시장경제의 모순을 발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국민 대다수에게 심어진 불안을 효율적으로 완화하고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인 자본의 소유량이 경쟁력과 능력이 되어버린 자유시장경제의 모순 속에서 국가는 개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 경쟁력과 경제 안정성을 도모하는데에도 필요한 작업이다.
 
조지 애커로프화 로버트 쉴러의 <야성적 충동>을 통해 국가의 경제 체제를 새로이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발견한다. 필연적인 동시에 필수적이다. 자유시장경제는 취지나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 긍정적인 면이 다소 많다. 그러나 통제되고 정제되지 않는 욕망에서 기인한 야성적 충동으로 인해 그 가치가 훼손됐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그 약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어려웠던 역사의 모습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있다.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변화는 관점을 새로 두는 데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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