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하면서 선물을 나눠주면 생기는 일

거래(시장)경제의 대안으로 선물경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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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식(nongju)등록 2021.12.07 11:22
이날도 출발 전에 곰곰이 생각했다. 만나는 자리의 성격과 오는 사람들의 성향. 그리고 나잇대와 인원수. 여기에 맞는 내 선물의 종류를 말이다. 뇌물과 선물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내가 준비하는 건 분명히 선물이다!

나는 강의를 할 때마다 버릇처럼 선물을 먼저 생각한다. 내 강의에 와 줘서 고맙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선물의 효과를 알기 때문이다. '녹색평론' 발행인 고 김종철 님의 말씀이 내 멋진(?) 버릇의 시발점이었다. 공기와 햇볕과 물처럼 세상에 귀한 것들은 다 선물이라는 말씀이었다. 세상에 선물 아닌 것이 없다고도 하셨다. 선물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경제시스템이 되면 그게 선물경제 또는 호혜 경제라고 하셨다.

선물(膳物) 경제(gift economy)란 재화를 돈 받고 거래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함으로써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는 경제를 뜻한다. 시장경제, 교환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내 선물에 대한 답례나 보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더 큰 만족을 주기도 하는 묘미가 있다.
 

선물 손수건과 물병을 선물로 준비했다. ⓒ 전희식

 
나는 강의 대상과 주제에 맞는 선물을 골랐다. 손수건과 휴대용물병이었다.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에서 하는 강의니만치 젊은이들이 많이 올 테고 그들이 필요로 하면서도 <기후위기와 생태 영성의 삶>이라는 주제에 맞는 선물이라고 여겨져서다. 손수건은 화장실이나 식당에서 종이 수건이나 물수건, 냅킨 등 일회용품을 안 쓰고 손수건을 쓰자는 것이고 물병은 종이컵을 안 쓰자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과도한 생산과 소비, 이로 인한 자연파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대로 내가 준비한 선물은 효과를 발휘했다. 강의 중에 질문을 던져서 답변을 한 학생에게 손수건을 주니 일제히 눈을 반짝이며 다음 질문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 손수건은 보통 손수건이 아니다. '홀씨'라는 자연생태 교구 전문 업체에서 만든 세밀화가 그려진 순 면 고급 손수건으로 시중에서 1만 원이나 하는 것이다.

물병도 생식업체에서 만든 특수 재질이었다. 물병을 선물 받은 학생은 공개 다짐을 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일회용 종이컵으로는 물을 안 마시겠다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개인 차원의 좋은 본보기다.

이번에는 주방 쪽에서 바리스타 일을 하는 분이 내 질문에 손을 번쩍 들었다. 기품있어 보이는 초로의 여성이었는데 젊었을 때 농업 관련 잡지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셨다면서 농업과 온실가스에 관한 내 질물에 정답을 거뜬히 맞혔다.
 

길담 경복궁 역 옆에 있는 길담서원. ⓒ 전희식

 
강의장이 경복궁역 근처에 있는 '길담서원'이었는데 전 국무총리 한명숙 님의 남편으로 아름다운 가게 공동대표이자 대표적인 조작 간첩단 사건인 통혁당 사건으로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지독한 고문을 받고 13년을 투옥되었던 박성준 교수가 만들고 운영하는 공부방이라 주방 바리스타도 척척 답을 하는구나 싶었다.

학생들의 열성적인 청강과 답변들은 강사인 내게 큰 선물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떤 수강생은 내 책을 가져왔다면서 서명을 해 달라고 했다. 이 역시 작가인 내겐 큰 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선물은 상호 간의 선물을 촉진한다.

내가 가져간 선물이 바닥이 났는데도 이미 달아오른 분위기는 강의장을 계속 달구었다. 학생이 질문 하면 답변을 내가 하지 않고 다른 학생에게 답변을 부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교사가 되는 방식이었다. 학생들이 하는 답변은 모두 훌륭했다. 우리가 뭘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집단화되지 못해서 지속하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답변에서 부족한 부분만 내가 보충했다.

이렇게 하니 다들 재밌어했다.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자기가 말을 하는 것을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모르는 수강생들은 다들 자세를 곧추세우고 강의에 집중했다. 강의가 끝나고 사진을 찍자면서 학생들이 셀카봉을 들고 다가왔다. 이 역시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현직 경찰관의 선물 ⓒ 전희식

 
강의장에 왔던 어느 현직 경찰관은 자신의 명상수련 원력을 위급한 사건 현장에 생생하게 적용한 <어느 경찰관의 사람 공부>라는 책을 내게 선물했다. 끊임없이 소비를 유혹하며 후리치고 부풀리고 뻥튀기는 경제 아니라 선물로 살아가는 경제체제를 꿈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주에 <함양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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