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공정'은 어떻게 보수의 이데올로기가 됐나

대선 때까지 민주당은 청년을 기만하고 배제했다, 이제는...

등록 2022.03.18 13:41수정 2022.03.1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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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이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0.73%p 득표율 차이, 간발의 차이로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패배의 후과는 실로 엄중하다. 대한민국은 관료-기득권 세력 연합에 정권을 넘겨준 셈이다.

갈수록 확대되는 불평등과 청년 세대의 절망과 분노, 기득권 세력의 탐욕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가 판치는 사회·정치적 분위기 속에서 사법·관료 독재의 칼끝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미·중, 미·소 패권 국가들의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과연 경제적 번영과 평화를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인가? 특히 기술과 시장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은, 한편에서 원자재와 핵심부품 조달에 애로를 겪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수출에서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내적으로는 인플레가 심화되는 가운데 금리인상과 긴축정책이 불가피할 것이다. 새 정부의 재정·금융정책은 어떤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것인가?

경제난이 가중되면 사회적 약자의 생존권적 요구가 강하게 분출될 수밖에 없고, 희생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제도권 정치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보수·기득권 세력의 구호가 된 '공정' 이데올로기는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은 자의 우월감과 보상심리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정당화한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안정적 지위를 확보한 정규직·전문직과 자산시장에서 부동산·주식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무임승차자처럼 혐오하고 조롱한다. 이러한 현상은 근본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은 자본과 언론의 분열 책동에 따른 것이지만,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은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적 연대를 추동해야 할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인 사회적 약자들은 정치세력화를 가로막는 선거제도와 정당 제도의 폐쇄성 때문에 스스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기회를 봉쇄당하고 있다(노동계급은 더 이상 동질의 집단이 아니며, 천태만상의 고용형태로 갈갈이 찢겨 있다. 농민과 소상공인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때문에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선출할 수 없으며,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은 사회적 약자 내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없다.

더욱이 정당은 당원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기보다는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운영된다. 예컨대 공직 후보자 공천에서 지도부의 외부영입과 전략공천 등으로 당원들이 배제되기 일쑤며, 정치자금은 정치인들이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또는 편법적으로 조달된다. 그리고 정책개발, 조직, 교육·선전 등 공식적인 정당활동 비용은 당비나 후원금이 아니라 국가보조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우리나라 정당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정치결사라기보다 관변단체화돼 있다고 본다.


민주당은 청년을 기만하고 배제하였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180석이라는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했다. 그런데 국민들은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민주정부가 국회와의 협치를 통해 기득권 세력의 적폐를 일소해 줄 것을 바라면서 그러한 압도적 다수 의석을 몰아 줬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협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과 민주당은 19대 대선에서 공약했던 개혁의 비전을 실현할 '협치 시스템' 내지 '개혁의 사령탑'을 만들지 않았다. 정부 고위직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도 측근 중심의 독단적 인사라는 과거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했다.

오히려 정부와 의회 권력을 안정적으로 장악했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사법개혁에서도, 검찰 등 관료·권력기관 개혁에서도, 교육개혁, 노동개혁에서도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결기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적폐 청산과 개혁은 동력을 상실하고 흐지부지됐다. 더욱이 대출규제 등으로 주택가격 폭등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든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곤경에 빠진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과감한 지원을 하지 못하고 민생 문제에 안일하게 대응했다.

결국 대통령을 잘 뽑고 다수 의석까지 만들어주면, 정부·여당이 기득권세력의 적폐를 일소하고 민주복지국가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환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특히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가 아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기관 신규채용 확대' 등 포퓰리즘적 미봉책에 실망한 데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공정 이데올로기에 속절없이 당하고 마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청년들은 더욱 절망하고 분노했다.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필수적인 조직이다. 그러나 청년 세대는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결집해 정부 정책에 반영할 통로가 막혀 있다. 정당이 비민주적이고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스펙 좋은 금수저 출신 청년들을 다수 영입해 청년들에게 보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역할을 맡겼고, 이준석은 보수적인 기성세대의 지지로 당 대표가 됐다.

반면, 민주당은 청년들에게 스스로 자신들의 이해와 요구를 결집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예컨대 청년임대주택을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민주당 정부의 청년임대주택은 공공임대주택 사업이 아니라, 은행들의 전세자금 대출, 주택임대 사업자를 지원하는 사업으로서 결국 임대료 폭등을 조장한 기만적인 사업이었다), 비정규직 차별을 동일노동·동일임금의 원칙에 따라 어떻게 법적·제도적으로 해소할 것인가, 청년들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고 정책 의제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저 청년을 일부 영입했다고 해서 청년 세대를 대표하는 정당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방선거부터 총선까지 각종 공직 선거에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당을 개방하고 당 조직이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정당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국비보조금만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당비와 후원금으로 정당이 운영되도록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야 한다. 선거제도는 지역만을 대표하는 소선거구·지역대표제가 아니라 소수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대표로 선출될 수 있도록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바꿔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코앞에 닥친 지방선거부터 당장 시행할 수 있는 것을 시행해야 한다. 다음 총선에서 재선에 도움을 줄 단체장, 지방의원들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공정 이데올로기 #청년 세대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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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교육청소년위원회) 변호사 2010. 9. ~ 2013. 1. 서울시교육청 감사관 2013. 2. 2015. 2. 서울시 감사관 현 (사)시민자치감사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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