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민은 없다 난민만 있을 뿐

[주장]난민에 대한 용어 사용의 정치적 함의와 중요성

검토 완료

공익법센터 어필(apil)등록 2022.04.04 16:52
최근 언론 보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피난한 난민들을 대상으로 '피란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작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피난 과정에서 갑자기 언론보도에서 이런 표현이 몇번 보이더니, 이제는 '전쟁'에서 피난한 난민들을 호칭할때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모양이다. 시리아 난민에 대해서, 예멘 난민에 대해서는 과거에 쓰이지 않은 용어다.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해 '피란민' 용어를 언급하는 기사들 ⓒ 공익법센터 어필

 
이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시민들도 처음 듣는 용어인 '피란'. 누구도 쓰지 않는 표현이고, 소수자를 다수자가 '호명'하는 방식, '개념정의'하는 것은 사실 정치적인 일이다.

영어권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피난할 경우 이들은 그냥 "Refugee"로 불린다. '전란을 피해온 사람들, 또는 전쟁난민'이라고 굳이 따로 쓰는 용어가 없기 때문이다. 피난작전의 대상이 된다는 뜻에서 예외적으로 'Evacuee'라고 쓰이기도 하지만 이건 수송작전의 맥락에서만 그렇다. 다른 한자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도 '피난'과 '피란'을 구분하는 용법은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나 외교부에서 보도자료에서 '피란민'이란 용어를 갑자기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였으나, 양 부처에서 모두 그런 보도자료나 관료가 피란 또는 피란민이라는 용어를 쓴 예는 발견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과거부터 '피난민(避難民)'은 재난을 피하여 가는 백성을 말하고, '피란민(避亂民) 전쟁이나 병란(兵亂)을 피하여 가는 백성을 말한다고 설명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한자의 뜻이 조금 다르지만, 과거의 문학의 용례를 보면 '피난민'은 재난과 병란을 다 의미하기도 하고, '피란민'은 주로 병란을 언급하기 때문에 보다 상위 개념인 '난민'으로 통용할 수 있다고도 설명하고 있다.
 

국립국어원 '온라인 가나다' 답변 ⓒ 공익법센터 어필

 

아마도, 어떤 매체에서인지, '해외에 있는 난민'들을 어떻게 언급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이와 같은 국립국어원의 설명을 보고 더 정확한 표현이라 생각하여 '피란'이라는 용어를 써서 '구별'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는 잘못이다. 난민협약을 비준하기 전의 한국의 사회, 문학에서 피난과 피란의 용례가 일부 구분되어 사용되었을지 모르나, 한국 사회에서 1994. 이래로 난민협약을 비준하여 '난민'이라는 단어는 과거의 맥락에만 의존할 수는 없고 서구문화권에서 역사상 축적되어온 Refugees(영어), Réfugié/e(불어) 와 같은 뜻을 의미하게 되었다.

 

유엔난민기구 1951 난민협약 소개 설명 페이지 캡처 ⓒ 공익법센터 어필

 

한편 개별 국가의 문화권, 언어권을 초월하는 '당사자'인 난민들은 스스로를 Refugees로 인식하고 호칭한다. 'Refugees'라는 용어, 그리고 그 번역어인 '난민'이 존중되어야 할 이유다. 

더욱이 '난민'은 한국어의 개념상으로도 국립국어원의 다른 설명에서 말하듯, '재난'과 '병란' 모두를 포괄하는 보다 상위개념일 뿐 아니라, 난민협약에서 말하는 난민이 원래 이 모두를 포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난민이란 개념하에 다 포섭이 된다면 굳이 '전쟁터에서 나온 난민'을 '피란민'이라고 구별해야한다는 실익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히려,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왜 구별해서 불러야 한다고 느끼는가? 왜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는가?'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규정은 원래 정치적이지만, '외부'에서 온 가장 바깥의 소수자인 난민에 대한 호칭은 지극히 정치적이다.

원래 난민의 '호칭'에 관한 정치적 의미의 전통적인 전선은 '난민'이냐 '이주자'냐에 있다. 똑같은 사람을 다수자들의 태도에 따라 '난민(Refugees)'라고 불렀다가, 어떨때는 '불법 이주민(Illegal Migrants)'라고 부른다.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적극 포용하는 일부 국가들이 동시에 중동권에서 피난한 난민들을 'Migrant'라고 부르며 추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받아들이고 싶으면 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이주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선이 약간 이와 다르다. 한국에서는 '난민'이라는 단어를 자꾸 언급하지 않으려는 의식/무의식적 습관이 있다. 그리고 주로 '전쟁난민'과 '일반난민'이 존재하는데 전쟁난민은 난민이아니야!라고 하는데에 이러한 해석학적 전선이 있다. 왜냐하면 '난민'이라고 부르는 순간 난민협약과 국제규범상의 권리/의무관계가 창설되는 존재가 되고, '달리' 부르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배경에는 한국정부의 역할이 있다. 시리아 난민, 예멘 난민등 전쟁에서 피난해온 경우에 대해서 법무부는 아예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며 '전쟁'은 난민협약상 5대사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난민'이 아니라고 잘라 말해왔다. 난민이 아니지만 '인도적 체류자'라는 지위로 보호한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이런 이야기를 너무 오랫동안 반복 해와서 기정사실 처럼 알려져 있다. 

 

2015. 10. 16. 법무부 난민관련 설명자료 ⓒ 공익법센터 어필

 

그러다 이와 같은 한국정부의 설명은 완벽히 틀린 말이다. 정치적 의견, 인종, 종교, 국적/민족, 특정사회집단구성원 지위라는 소위 5대사유에 당연히 '전쟁'은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전쟁'이라는 배경 속에서 이런 5가지 사유의 박해가 '가장'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자꾸 '전쟁터에서 왔으니 난민이 아니'라고 하는데, 선진적 국가로 가면 곧장 '난민'으로 지위를 얻는다. 한국정부의 이런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고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이다. 

작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한국 정부에서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난민이라고 부르지 않고 '특별기여자'라고 하여 한국정부가 책임지는 자리에서 상을 주는 위치로 자신을 추켜세우고 이들을 '을'로 격하시킨 일이 있다. 한국정부는 계속 그래왔다. 난민은 난민신청자, 난민인정자 다 포함하는 '일반적 개념'이며 난민협약상 난민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꾸 한국정부는 구별하려 한다. 틀렸다.

물론 한국만은 아니고 난민에 대한 보호가 확립되지 않은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용어를 이용한 책임회피는 반복된다. 예를 들어 한국의 특별기여자 이슈와 기시감이 드는일이 최근 일본에서도 생겼다. 복잡한 외교적, 내부사정이 있지만, 일본사회의 우크라이나 난민 보호 찬성 비율이 90%가 넘는다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조선일보 4월 4일 기사 캡처 ⓒ 공익법센터 어필

 

이에 기시다 내각은 '적극적으로 난민을 데려오겠다'라고 하여 군용기와 외무상, 법무차관을 급파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난민은 아니고 '피난시킨 대상'(Evacuee)라고 불러야 한다고 했다. 난민인지는 나중에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강제송환금지의무' 및 '난민보호의무'의 수범자인 국가가, 그 범위를 자의적으로 자꾸 정하려고 할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마음대로 부르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상 맥락에서 '파란'과 '피난'을 구별하니 그걸 살리면 되지 않을까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나, 1994년 난민협약이 한국에서 운용되기 시작하여 '난민'이 국제법적인 함의가 축적된 Refugees의 대응어로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부터는 부당하거나 의도가 오해될 생각이다.   

세상에 '그냥 난민'과 '전쟁 난민'은 없다. '피란한 란민'과 '피난한 난민'은 없다. 국제사회에서 피란민협약이란 것은 없고, 난민들은 스스로를 모두 난민이라 호칭한다. 지극히 정치적인 용어에서 '난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난민보호의 틀에서 책임질 국가와 사회를 주변화 시킨다. '그냥 불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고 '그런 일이 있으니 안타까운 뉴스네'라고 하여 우리들의 책임을 탈각시킨다.

장애인들을 시설로 밀어내고, 성소수자는 거리로 나오지 말라 하며 여성을 가정과 가사로 밀어넣는 지긋지긋한 다수의 규정, 난민들 역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려났는데, 이제는 '난민'이라는 이름조차 없어질까 두렵다.

2015 시리아, 2018 예멘, 2021 아프가니스탄, 2022 우크라이나, 그리고 미얀마와 홍콩까지. 인권침해에서 탈출한 사람들 모두 국어어법으로나 국제법해석으로나 이를 고려한 한국사회의 맥락에서나 그냥 '난민'이다.

한국이 난민에 대한 그 책임과 국제사회의 자장에서 점차 비껴가기 어려워지면서, 난민이 더욱 많이 언급되지만, 더 많이 말해지는 만큼 '잘못 언급'되고, '함부로 취급'될까 털끝이 곤두선다. 그냥 난민은 난민이라고 부르자. 굳이 '달리' 부르려는 과잉친절은 친절이 아니라 위험할 뿐이고, '맘대로'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언론에서도 자신있게 그냥 '난민'을 난민이라고 부를 수 있기를 고대한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