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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지금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

인간의 삶이 이어간 토종 씨앗의 여정 <씨앗, 깊게 심은 미래>

등록 2022.08.30 08:40수정 2022.08.3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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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과의 첫 만남을 지금도 기억한다. 경기도 평택에서 씨앗 수집을 하고 있을 때였다. 웬 어른들이 자그마한 씨앗을 만지고, 먹고, 평가하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쌀알보다 작은 저게 뭐길래 저러는 걸까.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이제는 그 조그마한 씨앗을 가지고 사진을 찍고, SNS에서 콘텐츠를 만들고 토종 씨앗이 어떻게 하면 세상에 더 널리 알려질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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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깊게 심은 미래> 변현단 저, 2022 ⓒ 박기완

 
<씨앗, 깊게 심은 미래>의 저자이자 토종씨드림의 대표 변현단은 씨앗에 다시 집중한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진단하며 씨앗의 여정과 시간을 통해 전통적인 삶으로써 씨앗을 다시 조명한다.

저자는 토종씨앗 조사와 수집, 특성, 연구, 정책,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 전국 토종씨앗 모임 '토종씨드림'에서 활동하고 있다. 책 <씨앗, 깊게 심은 미래>는 저자가 직접 마을을 돌며 수집하고, 심고, 거두며, 나눈 토종 씨앗 이야기다.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와 2부는 토종 씨앗을 직접 수집하고 키우며 느끼고 알게 된 사실을 보여준다. 3부는 야생 작물에서 개량되기까지의 역사를 보여준다. 4부는 하나의 작물을 가지고도 다양한 삶의 일환으로 사용했던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5부는 토종 씨앗이 왜 이 시대에 중요한지, '토종 주의'가 되면 무엇이 문제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씨앗이 살아왔다

저자는 매년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닌다. 2008년부터 벌써 16년째다. 비닐하우스가 많은 곳, 즉 관행농이 즐비한 곳에선 씨앗을 찾기 어렵다. 씨앗이 이미 상업화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개발된 곳 안쪽이나 후미진 곳엔 아직도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이런 마을에선 아직도 씨앗을 주고받는 농촌 공동체가 살아있다.
'대부분의 씨갑시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소박하게 생활하고 가난하지만 자신의 생활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29p)

이런 공동체엔 씨앗을 갖고 계신 씨갑시 어른(씨앗을 모으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칭)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적게는 2,3종에서 많게는 20종을 갖고 계신 분도 있다. 이들이 아직도 매년 씨앗을 심고 거두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조금의 돈이라도 아끼려는 노력이다. 80대, 90대인 어르신들이 아직도 굽은 허리로 농사를 한다. 저자는 이들이 자식들에게 매년 자신의 농산물을 나눠주며 자신의 존재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씨갑시 어른들의 농사 지혜도 책에서 얻을 수 있다. '담양 대나무 축제할 때 참깨 모를 부순다', '배롱나무꽃이 필 때 가장 덥다' 등이다. 이들은 기후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최대한 그 기후에 맞춰 농사를 짓는다. 기후위기라 불리는 시대에 이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이들은 작물 하나 허투루 쓰는 일이 없다. 대박은 옛날엔 바가지 대용으로 사용했다. 대박이 익기 전엔 대박의 잎은 나물과 전으로, 먹었다. 대박이 익기 전엔 잘게 썰고 말려 고지로 해먹는다. 대박이 익으면 안을 긁어내고, 삶아서 바가지로 이용한다. 하나도 버릴 게 없으니 '완전 대박'인 셈이다.


씨앗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귀한 씨앗들이 사라지고 있다. 한 작물로 거대한 밭을 채우고, 씨앗은 대부분 종묘사에서 산다. 이런 씨앗은 터미네이터 종자라 불리며, 한번 심으면 씨앗을 내지 못해 매번 사서 써야 한다. 대부분의 농민들이 수확량이 좋은 개량 종자를 사서 심는다. 토종 씨앗을 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갖고 있는 사람마저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씨앗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때부터다. 일본은 한국을 자국의 식량 기지로 만들 요량으로 일본 종자를 심어 자국민들에게 나눴다. 1980년에 들어서 많은 것들이 특허가 됐는데, 이때부터 채종 종자 대신 매년 종자를 사서 심고, 농진청에선 재래 종자를 대대적으로 심었다. 점차 씨앗의 권리가 농민에게서 기업으로 넘어간 것이다.
 
'종묘 산업에선 일대잡종 품종들은 인공 교배로 생산된다. 때문에 종자 소요량에 비해 종자 생산량이 매우 많아 이익을 극대화를 꾀할 수 있는 토마토, 가지, 오이, 수박 등의 과채류에서 먼저 육종을 시작한다. 수없는 품종 개량을 거치며 경제성만을 극대화 한 종자를 만든 후에 농가에 판매한다.' (327p)
 
경제성을 극대화한다면, 소수 품종밖에 기를 수밖에 없고, 생태적 다양성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이는 피부로 느끼고 있는 기후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1847년 감자 역병으로 인해 100만여 명이 아사한 아일랜드 기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만 키웠고, 감자에 역병이 돌자 먹을 것이 없어져 굶어 죽은 사건이다.

우리는 씨앗과 함께 살아가겠다

저자는 곡물 농경의 역사가 발전하면서 점차 대지와 식물을 가혹하게 길들이는 폭력적 형태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곡물은 오래된 자본 축적으로 잉여생산물은 인간의 관심을 다른 곳에서 돌리면서 사회계층의 분화를 일으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렇게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문자의 발명, 상거래, 독재권력,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통한 물질주의 문명은 인류사를 생명 파괴라는 결과로 몰아가고 있다." (333p)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씨앗의 물질성을 탈피해야한다고 말한다. 국가 산업적 측면에서는 개량육종의 원종으로 토종 씨앗이 중요하다. 농민이나 각 진보단체에서는 식량 주권으로써 토종 씨앗이 중요하다. 여기에 토종 씨앗 보존 운동이 농부의 권리로써 씨앗을 다루고 관리하고 씨앗의 공유권을 농부가 갖는 농부권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토종주의', '순계주의'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생물다양성과 생명의 지속성에 기반을 두고 토착화된 종자가 있다면 이를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토종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러한 물질적인 씨앗에서 벗어나 모계사회 등의 정치 사회의 변화로 '삶으로써 씨앗 운동'으로 전화하는 새로운 문명에 도달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토종 씨앗 운동은 만물의 뿌리가 하나이며 내가 씨앗이라는 것을,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성과 지속성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고 강조한다. '나'라는 씨앗이 만물의 뿌리며, 만물 '너는 나다'이며, 나의 말씨와 글씨와 마음씨가 씨앗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나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은 온통 '온전한 씨앗'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농사에 '농'자도 몰랐던 내가 벌써 농사를 지은 지 3년 차다. 자급용으로 먹을 만큼만 적게 짓는 농사다. 작은 텃밭에 50여 가지가 넘는 작물을 심어 키워오고 있다. 이번 여름에 토종씨앗으로 키운 오이, 사과참외, 수박, 고추, 가지 등을 맛나게 수확해 먹었다. 저자와 함께 토종 씨앗을 수집하며 만났던 어르신들과 저자의 지혜를 지근거리에서 배우면서 이런 삶을 향유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씨앗을 채종하고 심는 농부들에게 새로운 문명과 삶의 전환을 도모하고 각자가 씨앗이 되어 사회 곳곳에 다양성의 꽃이 활짝 피도록 씨앗을 심자고 요청한다. 급격한 기후변화 시기에 식량과 생명을 다시 생각하기 위해 꼭 일독을 권한다.

씨앗, 깊게 심은 미래 - 인간의 삶이 이어간 토종 씨앗의 여정

변현단 (지은이),
드루, 2022


#씨앗깊게심은미래 #변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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