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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주워온 식물, 이렇게 감동을 주네요

죽을 줄 알았는데 새 잎이... 식물과 함께 자랍니다

등록 2022.10.02 11:56수정 2022.10.0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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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집사로 사계절을 넘겼다. 한겨울의 추위에 실내에서 함께했고 한여름의 무더위도 함께했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았지만 밖의 나무들이 제 빛을 잃어가는 요즘, 실내의 식물들은 여전히 푸른빛을 뽐내고 있다. 여전한 생기, 알록달록한 아름다움과 향기는 없어도 나는 초록의 식물이 좋다.

한참 버려진 유기 식물에 눈이 가기 시작할 때 집에 들여온 것이 있다. 이제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났는데 잎이 4장 나왔다. 이름을 찾아보려고 식물 사전이나 플랜테리어 책을 여러 권 찾아 읽었는데, 비슷한 것도 찾지 못했다. 잎모양으로 검색하면 여러 식물의 이름이 떳지만, 이 식물은 아닌 것 같았다. 해서 여전히 이름을 모른다.

이름 모르는 식물을 키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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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식물 유기 식물을 처음 들여와 분갈이 했을 때의 모습 ⓒ 장순심

 
처음 들어왔을 때, 만지면 부서질 것처럼 줄기가 말랐었다. 화분의 흙은 다 파여 있었고 한 줌 남은 흙은 물기가 하나도 없어 만지자마자 부서지고 날렸다. 잘 컸다면 정말 예뻤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살릴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중에라도 식물의 정보나 이름만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까 해서 병들고 시든 잎이지만 서너 장 남겨 두고 새 화분에 새 흙을 덮어 주었다. 

두세 달 지나니 줄기가 조금 단단해졌나 싶었고 다시 두세 달 지나니 어린 새 잎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이제는 살았구나 생각했고 새 잎을 만나는 반가움이 무척 컸다. 새 잎이 더 많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존의 시든 잎을 모두 잘랐다. 잎이 모두 없어지니 식물의 정보는 더 찾을 길이 없었지만.

이름을 모르는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에 길을 걷는 것처럼 돌봄이 조심스럽다. 초보 식집사로 식물의 생육에 관한 어떤 정보도 없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다른 식물과 비슷하게 물을 주고 햇볕을 쪼이고 비슷하게 관리했다. 식물끼리 서로 기대어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생각해보면 번듯하지도 않고 살아날 가망성이 보이지도 않고 이름도 모르는 채로 몇 달을 어떻게 지켜볼 수 있었나 싶다. 깨끗하고 단정하지 않은 것은 키우고 싶지 않았고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싫었다. 하지만 일단 데려왔으니 이 식물은 살려야 할 것 같았고 막연히 살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무려 6개월 만에 겨우 식물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두 개의 줄기에서 각각 첫 번째 잎과 두 번째 잎이 차례로 고개를 내밀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름이 없어서, 식물의 정보를 알 수 없어서 살뜰이 살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애틋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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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식물 6개월이 지난 현재의 모습, 4개의 잎이 나왔다. ⓒ 장순심

 
나를 발견하는 재미

식물을 돌보는 것은 기다림의 미학 같다. 몇 개의 유기 식물을 통해 확인했듯 긴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며 내가 이렇게 느긋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새삼 확인한다. 매일을 계획대로 살려고 하고 어긋나면 자책하는 사람이었는데, 식물을 앞에 두고는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가 생긴다. 삶을 덜어내는 느낌에다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한 일상이 균형을 잡는다.

공간적인 면에서도 비슷하다. 식물을 돌보기 시작하며 안 그래도 비좁게 느껴지던 공간이 확연히 좁아졌다. 특히 겨울의 추위를 피해 식물을 모두 거실로 들여놓을 때면 거실의 절반 가까이를 식물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다. 그렇게도 한 철을 보냈고 이번 겨울은 아마도 지난 겨울보다 훨씬 더 넓은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화분의 크기보다 두세 배 넓게 퍼진 잎들이 더 넓은 자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황스런 마음도 잠시, 넓게 층층히 펼쳐진 잎들의 자태는 언뜻 보아도 우아해서 절로 넓은 자리를 기꺼이 양보하게 된다. 건강하게 잘 크는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뿌듯함에 식물의 키가 커진 느낌, 줄기가 굵어진 느낌이 들면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까지 생긴다. 내어 준 자리가 전혀 아쉽지 않다.

인공의 공간에 자연의 날것이 들어온다는 것은 파격이다. 작은 움직임에도 흙먼지가 날리고 가끔은 거미도, 작은 곤충도 식물과 함께 있는 것을 확인한다. 외출했다 집에 발을 들이는 순간 코끝에 스치는 자연의 냄새, 흙냄새도 이제는 익숙하다. 결벽증처럼 잡아내던 잡티와 흙먼지가 더는 괴롭지 않다. 심지어 벌레도 이제는 견딜 만하다.

벼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처럼 집안의 식물들도 그렇다. 식물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만큼 반응하는 것 같다. 식집사의 호흡과 눈길을, 움직임과 손길을 잘 알아챈다는 생각이 든다. 

식물을 키우며 날마다 나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식물 이야기가 이어진다. 한두 개 정도 식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이 없으니 대체로 말이 없는 사람끼리지만 대화가 계속 이어진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 그 타이틀이 주는 상징을 입는다. 차분하고 생기 가득한 사람의 옷도 자연스럽게 걸친다.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식물을 대하는 순간에는 피곤함을 잊는다. 살면서 순간순간 우울이 다가올 때, 마음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식물은 마음을 붙잡아 준다. 내가 식물을 돌보는 것이 아닌, 식물이 나를 돌보는 시점이다. 시간과 마음을 쏟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의 것을 식물을 통해 보상받는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식물과의 관계 형성이 잘 된 것 같다.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며 동네를 돌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건물마다 있는 화원이다. 입구부터 손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식물이 손님을 끄는 집이 있는 반면, 무성하고 산발산 머리처럼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주는 집도 있다.

주인장의 취향 또는 성향의 차이겠으나, 화원을 보며 우리 집의 식물을 떠올린다. 비교하다 보니 식물로 가득 찬 집이 어떻게 보일까, 집안의 식물은 또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 본다. 거창하게 플랜테리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산발한 머리는 내 스타일은 아니다. 식물을 돋보이게 하는 취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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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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