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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응급구조사들

조산아에게 CPR을 해야 했던 동료 C를 생각하며

등록 2022.11.07 13:30수정 2022.11.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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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초부터 캐나다 온타리오 주 동부지역의 응급구조현장 매뉴얼에 몇 가지 변화가 있을 예정이다.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주는 약으로 덱사메타손(Dexamethasone)이 추가되었고, 출산 시 산모의 출혈을 줄일 수 있는 옥시토신 (Oxytocin)이 추가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심정지 환자에 대한 심폐소생을 중단할 수 있는 최소 나이가 18세에서 16세로 낮아졌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현재는 17세와 18세의 심정지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계속 이어가면서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지만, 앞으로는 현장에서 몇몇 기준에 따라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17세~18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을 중단하고 이를 주 정부 산하의 거점 병원 (Base Hospital) 당직의사에게 보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새로 변경된 규정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이제까지 마약이나 각종 사고로 인해 심폐기능이 정지된 17세 혹은 18세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이제 그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보내야 하나...'

앞으로는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조차 사라지는 것 같아서 마음 한 켠이 계속 불편했다. 헛된 바람인 줄 알지만 앞으로 내가 이 일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 연령의 심정지 환자를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 일이 나에게 닥치면 어쩔 수 없이 새 규정에 따라야 하겠지만 그렇게 밖에는 할 수 없는 내 자신이 싫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 쓴 입맛만 다시고 있을 때 신고가 한 건 들어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들어온 신고는 생후 10일된 신생아에 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내가 맡았던 환자 중에 가장 어린 환자는 생후 3개월이었는데 이 환자가 최연소 기록을 갱신하고 말았다. 물론 학생 때 실습하면서 출산하는 산모로부터 아기를 받은 적은 있지만 현직에서 근무하는 동안 맡은 환자로서는 이 아기가 제일 어렸다. 

현장에서 만난 아기는 너무 작아서 함부로 만질 수도 없었고, 탯줄을 잘라낸 상처도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아기가 체온이 38.5도까지 올랐고 기침과 함께 하얀 토사물인지 가래인지를 계속 뱉어내고 있었다. 부모들한테 간단한 것만 묻고는 바로 아기부터 안아서 앰뷸런스에 올랐고, 우느라 정신 없는 아기 엄마는 파트너 K가 달래서 함께 태웠다.

청진을 하긴 했는데 폐가 너무 작은 데다 아기 울음소리에 뒤섞여 제대로 들리지가 않았다. 물방울 모양의 석션(Squeeze bulb)으로 코하고 입 안을 막고 있는 콧물 등을 제거하고(콧구멍이 너무 작아서 잘 들어가지 않았다) 산소포화도가 86-89를 왔다 갔다 하길래 산소마스크를 아기 코 앞에 대고 바람을 불어주듯(Blow-by) 산소를 계속 줬더니 산소포화도는 다행히 정상범위로 올라갔다. 이후 아기도 숨쉬기 좀 편해졌는지 병원 도착할 무렵에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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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는 배우고 연습한 대로 핏덩어리 신생아를 양 손으로 감싸 쥔 채?아기의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야 했다. ⓒ elements.envato

 
친구이자 동료였던 C 생각이 다시 났다. 그는 코카인에 취해 있던 엄마가 임신 7개월에 양수가 터져 낳은 조산아를 맡았다. 그 조산아는 태어났을 때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엄마는 약에 취한 상태로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그런 아기의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응급구조사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이전에 무슨 일들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온 것인지,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 일들의 결과물로 발생한 상황만을 다룰 뿐이다. 그 날 그 상황을 다루는 것은 C의 몫이 되었다. 그래서 C는 배우고 연습한 대로 핏덩어리 신생아를 양 손으로 감싸 쥔 채 아기의 가슴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야 했다.

바닥에는 주사바늘이 너무 많아서 아기를 내려놓을 곳조차 마땅치 않았다고, 나중에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듯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그때 그 조산아의 가슴을 누르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는 것을 다른 동료로부터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원인이 아니라 현상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산모는 살았지만 C가 맡은 아기는 병원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C는 그 길로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이 상황에서 벗어났다. 이 일을 하기 전의 자신과 이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의 자신은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라며, 더 이상 자신이 변하기 전에 여기서 멈춰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 일을 그만두었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떠난 그가 원망스러웠다. C는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힘껏 도왔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나 혼자 내팽겨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그를 탓하거나 원망할 수 없다. 나도, 그도 그 조산아가 그렇게 죽어야 했던 이유와 그 산모가 약에 취해야 했던 이유를 굳이 알려고 들거나 탓하지 않는다. 

이태원 압사 참사로 많은 이들이 핼로윈을 탓하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탓한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사실 그런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응급구조사에게 눈 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말고 중요한 것은 없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수 백 명의 젊고 아까운 생명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이 고쳐지지 않는 만성질환과도 같은 현상이 기가 막히다. 그 현상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당장이라도 화면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그저 TV를 통해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는 게 답답할 뿐이다.


또한 자신의 직업도 아니면서 그 현상에 자신을 던져 한 명이라도 구하려 애쓴 사람들이 걱정될 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그냥 그대로 보낼 수밖에 없을 때 자칫 자신 스스로가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 어제 C에게 문자가 왔다. 그가 직접 지은 새 집이 거의 다 완성되었다면서 곧 태어날 아기와 함께 입주할 준비가 마무리 되는 중이라고 했다. 모든 셋팅이 끝나면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우리 부부를 초청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그의 과거와 잘 화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번에 이태원에서 팔을 걷어부치고 쓰러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그것이 무엇이든 상관 없이)해야 했던 이들 역시 이번 일, 그리고 그 일을 겪은 자신과 잘 화해할 수 있을까?

C의 새 집에서 그의 아기가 우렁차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숨을 쉬지 않던 조산아의 심장을 눈물을 흘리며 눌러야 했던 그의 상처도 치유되지 않을까. 그 광경을 마주한다면 반가운 마음에 혼자 조용히 눈물 몇 방울을 떨굴지도 모르겠다.
#캐나다 911 #캐나다 패러메딕 #캐나다 응급구조사 #CPR #심폐소생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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