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문묘에서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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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수(ccourt)등록 2022.11.20 16:37
지난 주에 하노이에 있는 문묘를 다녀왔다. 문묘는 유학의 제례와 학문의 공간이다. 지금으로 보면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유교를 정치이념을 삼은 국가였던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에는 공통적으로 수도에 문묘가 설치되었다. 하노이 문묘는 1070년 건립되었다. 이번 여행은 하노이의 문묘를 중심으로 여정을 계획하여, 숙소는 문묘와 가까이 있는 하노이역 후문에 있는 업소로 정하였다. 하노이의 고지도를 살펴보면, 예전에는 하노이역 후문 방향에 문묘 학생들의 학사가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대학교의 기숙사라고 볼 수 있다.
 

하노이 문묘 정문 사진 ⓒ 여경수

 
문묘의 정문 옆에는 매표소가 있었다. 정문 앞을 중심으로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고,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였다. 정문 위에는 양쪽으로 용이 새겨져있다. 중앙의 원은 태양을 상징하며, 중간에는 종이 있다. 오른쪽 문에는 호랑이가, 왼쪽 문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그림이 새겨져있다. 호랑이는 문묘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가는 학생들이 호랑이처럼 용맹해지라는 뜻이란다.
 

하노이 문묘 규문각 사진 ⓒ 여경수

 
정문으로 들어가면, 양 쪽으로 연못이 있다. 정문에서 마주보이는 건물은 규문각(奎文閣)이다. 규문각은 서적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일종의 도서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규문각을 넘어서면, 돌에 새겨진 82기의 진사제명비(進士題名碑)가 양쪽으로 마주고보고 있다. 문묘 출신의 유명한 유학자들의 명단을 돌에 새기 비석들이다. 특히 이들 석비는 201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요즘의 우리나라 대학교들은 본관이 도서관에서 기부자들의 기부액 수에 따라서 기부자의 사진이나 이름을 전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학교 안에 있는 건물 이름 자체를 기부자 이름이나 기부자의 기업체 이름을 붙이고 있으니, 어찌 생각하면 씁쓸한 기분도 든다.
 

만세사표(萬世師表) ⓒ 여경수

 
규문각에서 정면을 마주보면,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사당인 대성전이 보인다. 만세사표(萬世師表)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공자의 삶과 사상을 본보기를 강조한 유학의 정신을 하나의 단어로 정리한 것 같다. 대성전에는 청동으로 만든 거북이에 올라선 학의 모형이 있다. 거북이의 머리와 학의 가슴을 쓰다듬으면 시험에 합격한다는 속설이 있단다. 대성전 뒤에는 학문의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국자감이 있었지만, 근대에 훼철된 이후 지금까지도 복원을 못하고 있다.
 

하노이 문묘 호수 ⓒ 여경수

 
문묘를 둘러보고, 길 건너에 있는 호수를 찾았다. 지금은 복원 공사 중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런데 관리자가 나에게 잠시 들어와서 산책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예전 지도를 살펴보면, 원래는 문묘와 이 호수사이에는 도로가 없고,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다. 호수 중간에는 섬을 만들고, 다리도 놓여있었다. 호수 안에서 배를 띄우고, 유학자들이 뱃놀이를 하면서 시를 지었다.
이번 여행에서 문묘를 방문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번 째는 베트남 헌법에 적혀있는 '인의'의 뜻을 찾고자 위함이었다.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헌법 전문에는 유학의 최고 가치인 '인의'가 적혀있다. 물론 베트남 사람들은 이제는 더 이상 유학 사상을 정규 학교 과정에서 공부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여전히 인(어짐)과 의(올바름)를 국가의 이념으로 삼았다.
두 번째는 조선의 유학자과 교류한 베트남 유학자들의 사상도 살펴보고 싶었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 유학자들과 베트남 유학자들이 중국의 사교사절로 북경에서 만나면, 서로 필담으로 교류를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평가받는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1563∼1628)이다. 특히 그는 베트남은 문자를 하는 국가라고 설명하였다. 또한 이수광은 베트남 유학자들과 필담으로 나눈 내용을 <안남국사신창화문답록>에 남겼다. 특히 이수광은 베트남의 역사와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물품의 정보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공자의 언행만을 해석하는 학문을 넘어, 자신의 관점에서 익힌 지식을 학문으로 체계화하는 실학자의 모범적인 삶을 보여준다.
하노이의 문묘에 있는 나무들은 여전히 푸르지만, 지금쯤 우리나라의 성균관에 있는 은행나무는 은행잎들이 노란색 물이 들었다가, 떨어지는 계절이다. 귀국해서 우리나라 성균관을 찾는다면, 이수광에게 오늘날의 베트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제국의 식민지도 겪었지만, 불굴의 의지로 스스로 '공화국'을 건설한 공동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이제는 더 이상 중국에서 서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제 집 다니듯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 이웃 국가가 되었다고, 이수광에게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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