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님 잘 가세요

검토 완료

이정숙(lee104)등록 2023.01.01 11:40
검은 토끼해를 하루 앞두고 뭔가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점심 먹는 것도 잊고 서성거렸다. 오늘을 넘기지 말아야하는 건 없는지 살펴보며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새해 인사를 미리 주고받았다. 일 년 동안 잘 살았을까. 아쉬운 일이야 많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생긴 뿌듯한 일들로 미소지었다.
 
가을이 지나고 있을 때 자전거를 배운 일,
겨울준비로 김장을 담가 큰언니에게 내 정성을 보낸 일,
첫 책을 출간한 일들을 올해 가장 잘한 일 3관왕이라며 자찬했다.
 
이 모든 일이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인연들과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기회도 뜻밖의 인연을 통해서 온다는 걸 깊이 체험했던 한 해다.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기적이 되는구나.' 책 출간은 내게 기적과 같은 거였다. 마음의 준비와 매일의 몸짓들이 쌓여서 이루는 또 다른 열매를 맛보고 나니 한 뼘은 자란 것 같다.
 
딱 1년 전 오늘, 한 줄 쓰기에서 많이 쓰기로 마음을 먹고 쓰기와 그리기를 아침 루틴으로 정했다. 책 출간이라는 먼 목표보다 조금 더 쓰기라는 작은 목표가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홉 달이 지나고 10월부터 11월 30일 첫 책을 출간하기까지 글쓰기와는 다른 책 쓰기 세상에서 새로운 체험을 했다. 쉽지 않았다. 내 일처럼 나서서 책을 만들어 준 지인을 만난 건 행운이었고 죽이든 밥이든 모아진 글과 그림이 있어서 가능했다.
 
책을 쓰고 나니 '작가님'이라는 호칭도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얼굴이나 몇 가지 프로필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글을 통해 속을 드러낸 일이어서 마냥 편하지도 않았다. 어찌 됐든 감당할 무게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몇몇 지인들의 반응이 힘이 되었다.

"감동이예요. 눈물났어요."
"술술 읽혀요. 단숨에 읽었어요."
"오타가 하나 있네요."
"평소 생각했던 이미지와 글이 닳았어요."

감사했다. 읽기 위해 시간을 내놓는 그분들에게 고개가 숙여졌다. 나 또한 응원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배울점이었다. 
 
기존 작가들의 책과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글쓰기의 첫걸음이 이기심의 발로라고 했던가. 나의 에세이집도 그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고 나서 달라진 구석이 있다면 더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것과 겸손이다.
 
나는 건강에도 약점이 많다. 5년 투병기간이 끝나는 시점에서 사람들이 묻는다. "이제 완치되는 건가요?" 장담할 수 없으니 답도 없다. 회복이란 그 이전의 삶의 양식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거라고 했다. 건강 그 자체보다 건강한 태도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건강의 기준은 나이 들수록 낮아진다. 여기저기 사소한 고장은 입에 올릴 필요도 없다. 당연한 몸의 노화를 건강이라는 기준에 올려놓는 일은 스스로 스트레스를 자처하는 일이다. 건강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시간을 놓친다. 시속 60킬로로 달리는 지금이다. 건강한 생활에 집중하다 보면 견딜만한 체력은 따라올 거라 믿는다.
 
나에게 건강한 하루는 글쓰기를 통해 삶을 발효시키는 일이다. 똑같은 하루도 어떻게 무엇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향이 달라진다. 잘 숙성된 글과 삶이 친구가 되길 소망하며 2022년 호랑이에게 손을 흔든다.
 
새해는 검은 토끼해라고 한다. <교토삼굴>. '토끼는 숨을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데 그만큼 지혜롭다는 뜻이다. 내년에는 슬기로운 나날을 위해 토끼의 도움을 청해야겠다. 

굴파는 토끼 ⓒ 이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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