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국민연금에 화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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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진(ianhan)등록 2023.03.08 10:34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중 하나가 국민연금이다. 분명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제도인데, 어느덧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특히 청년층의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이다. 대국민 폰지사기라는 비난은 물론 국민연금 폐지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어쩔 수 없어서 그냥 내는 사람들도 나중에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는 별 기대가 없다고 한다. 

도대체 청년층은 왜 이렇게 국민연금에 대해 화가 난 것일까?
 

국민연금공단 CI ⓒ 국민연금공단

 
첫째는 세대 간에 불공평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초기 가입자들은 3%만 내고 70%를 받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9%를 내고도 40%밖에 받지 못한다. 더구나 앞으로 보험료를 더 올려야 한단다. 화가 나는 게 당연하다.

보험료를 올리면 앞으로 계속 내야할 청년층은 힘들어지지만, 이미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상관이 없다. 기득권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대해 온갖 논리를 만들어가면서 문제가 없음을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중장년층은 부모도 부양하면서 국민연금 보험료도 냈다는 이중부담론, 노년층의 수익비가 높기는 했지만 수익의 총량은 크지 않다는 총량비교론, 쌓아둔 기금 때문에 청년층에게 도움이 되었다 또는 기금을 처음부터 많이 만들면 오히려 청년층에게 해가 된다는 기금역할론 등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들은 학술대회에서 발표할 내용일지는 몰라도, 당장 없는 형편에 과도한 보험료를 내야할 국민연금 '고객'인 청년들에게 할 말은 아니다. 전문가들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청년층에게는 변명이나 견강부회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제도 순응성이라며 처음에는 유리하게 설계했다가 나중에 불리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한 개인에게 일생이 달려있는 국민연금을 마치 저잣거리 가게의 판촉활동 취급하는 셈이다. 가게를 처음 열면 할인을 해주다가 사람이 몰려들면 할인을 끝낸단다. 다른 제도는 몰라도 적어도 국민연금은 이렇게 가볍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국민연금과 같이 인생을 건 초장기 제도는 처음부터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하여 설계했어야 했다. 남들보다 일찍 죽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적어도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불공평한 일은 없어야 한다. 내가 사는 시기에 출산율이 떨어지든 평균수명이 늘어나든 손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국민연금은 늦게 태어났으므로 불공평을 감수하라고 말하고 있다. 청년층이 화내는 게 당연하다.

적어도 국민연금만큼은 세대 간에 완벽히 공평해야 한다. 여기에 전문가들 주장대로 세대 간 보정이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별도의 제도를 추가로 운영하면 된다. 이미 노년층을 위한 기초연금도 있고, 청년층을 위한 장학금 지원도 있다. 이런 것들을 유연하게 운영하면 된다. 대신 국민연금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만들고 바꾸지 말아야 한다. 이걸 섞어서 국민연금을 불공평한 제도로 만든 것은 국가의 커다란 실책이며 개혁을 어렵게 만든 원인이다. 국가가 이 실책을 인정하는 것이 청년들의 화를 풀어줄 수 있는 첫 걸음이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4차)에 따른 기금 변화 ⓒ 보건복지부

 
 청년들이 국민연금에 화내는 두 번째 이유는 나중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지급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냥 믿으라고만 할 뿐 구체적인 근거도 없고 하는 행동도 미덥지 못하다. 

애초에 후세대가 앞선 세대에게 돈을 전달하는 국민연금의 기본 구조상, 현재의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서 후세대의 부담이 계속 커질 것이 분명한데 이 부담을 어떻게 낮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그냥 무작정 보험료를 올려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손해를 볼 미래가 너무나 뻔하게 보이는 상황이니 믿음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GDP비용률이라는 생소한 소리를 하면서 걱정할게 없다고 말하고 있다. 미래에 가서 GDP에서 연금지출을 하면 되고 그 비율도 높지 않다는 논리다. 하지만 GDP에서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지출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역시 알 수가 없다. 청년층이 알고 싶은 것은 이름조차 낯선 GDP가 아니라, 가입자가 실제로 얼마나 납부를 해야 하느냐다. 전문가들은 항상 이렇게 큰 그림만 볼 줄 알뿐, 청년층이 뭘 궁금해 하는지는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 

게다가 국민연금은 공무원연금처럼 부족분을 세금으로 보전하겠다고 시원하게 약속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제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건 이것대로 문제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제화를 하면 국민연금 개혁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며 반대를 하고 있다. 지금 공무원연금은 지급보장이 되어 있는데도 개혁을 하고 있다. 청년층에게는 핑계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게다가 국회의원들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법제화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가 반대를 해서 안 된단다. 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 부처가 아닌 것인가? 같은 국가에서도 이렇게 손발이 안 맞는데 어떻게 국민연금을 믿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법제화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나 말 것이지.
 

국민연금공단 사옥 ⓒ 국민연금공단

 
마지막으로 청년세대가 국민연금에 화내는 이유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사과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이제 청년들은 국민연금 소리만 들으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솟아오르는 파블로프의 개 신세가 된 느낌이다. 

애초에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국민연금을 설계한 사람, 갈수록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제도를 바꿔온 사람, 앞으로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제도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다들 어디엔가 숨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은 궤변 같은 논리들을 동원하면서 젊은 세대가 불리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상대의 사정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맞다고 말하는 사람들.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 청년들은 이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청년층이 보기에 지금 국민연금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모두 꼰대다. 

국민연금 제도를 바꿔서 앞으로 계속 보험료를 내야 할 청년층이 불리해질 상황이면, 책임자가 진솔하고 진지하게 청년층에게 사과를 하는 게 우선이다. 그게 대통령이든 보건복지부 장관이든 연금공단 이사장이든 관계없다. 불리한 제도를 강요하면서 아무런 사과도 없는데, 청년들이 불만이 없을 수 있겠는가?
 

국민연금 수령액은 계속 늘어나는 구조다 ⓒ 국민연금공단

 
지금 청년들은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넘어 자포자기 상태로 넘어가고 있다. 애초에 연금수급자들이나 기성세대가 양보를 해줄 것 같지도 않고, 인구수도 청년층이 적으니 표싸움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은 계속 청년층에게만 불리하게 바뀔 것이고 청년들은 갈수록 희망을 잃어갈 것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만든 국민연금 제도가 청년층에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게 하는 제도가 되고 있다. 국민연금 정책에 관여하는 모든 관계자들은 청년들이 왜 국민연금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는지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전문가들도 이론과 논리만 앞세워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청년들의 감정을 읽어주시길 제발 부탁드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청년들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면 국민연금 개혁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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