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발 금융위기, 위기의식 없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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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윤경(misosesang)등록 2023.06.16 14:07
전 금융권의 연체율이 급증하고 있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은 2.5%에 육박하고, 카드사와 저축은행은 각각 1.5%와 5%를 넘어섰다. 은행들의 연체율은 0.33%로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서는 연체율에 대한 우려가 과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금융권의 연체율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정부가 발표하는 연체율은 분기말마다 부실채권을 상각처리 해 최대한 낮은 수준으로 조정된 결과이다.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의 여신, 일명 부실채권을 손실처리함으로써 장부에서 지워버린다. 장부에서 사라진 채권은 연체율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정부에서 발표하는 가계부채 총량에서도 지워진다. 한마디로 부실채권을 정리한 뒤 발표하는 연체율 이면에는 더 큰 부실이 숨겨져 있다는 의미이다.

1조 3천억 원 부실채권 지우고도 계속되는 연체율 상승

최근 은행들의 부실채권의 처리 규모가 크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신한·KB·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올해 1분기 매각 혹은 상각한 대출채권 규모는 7102억 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는 3904억 원 규모였는데 1년 사이 두 배 가량 늘어난 셈이다. 2022년 4분기에 처리한 부실채권 규모 또한 5814억 원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6개월 동안 4대 은행들이 팔아치우거나 손실처리한 채권 규모가 1조 3000억가량이나 된다. 분기말마다 부실채권을 처리하고 나면 은행권의 연체율은 이전보다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6개월 동안 부실채권 1조 3000억 원을 장부에서 지웠음에도 연체율 상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실제 부실이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감독원은 25일 '가계대출 동향 및 건전성 점검 회의'를 통해 최근 금융권 연체율 상승세에 대해 선제적 대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이 내놓은 관리의 요지는 부실채권 상각기준을 완화해 주는 방안과 저축은행 부실채권 처리를 민간에 열어주는 규제완화 방안이다.

쉽게 말하면 첫째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쉽게 지워주겠다는 것이다. 장기연체된 1000만 원 이하의 채권은 자체 상각이 가능하지만 1000만 원을 초과한 채권은 금감원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지난 4월 13일 금융감독원은 주요 저축은행 가계여신 담당 임원들과 '가계대출 연체율 관리를 위한 상각 등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간담회를 통해 향후 1000만 원을 초과하는 부실채권의 상각과정에서 금감원이 신속한 심사와 승인을 추진할 것을 협의했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부의 연체율 관리

이처럼 부실채권을 신속하게 장부에서 삭제하도록 돕게 되면 연체율이 낮아진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가계대출 부문 추정손실 잔액은 4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이를 모두 상각한다고 가정할 경우 부실채권 비율은 4.1%에서 3%대 중반, 가계 대출 연체율은 4.7%에서 4%대 초반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연체율을 낮게 유지하기 위해 연체를 할 수밖에 없는 채무자의 채권을 상환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저축은행 장부에서 연체 채권을 지워버림으로써 연체율 수치를 조정하는 것이다. 부실채권을 건전한 채권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 회계장부 상에서 삭제되어 연체율이 낮아지는 마법일 뿐이다. 문제는 이렇게 회계장부에서 사라진 채권이 채무자에게도 상환의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상각된 채권은 특별회계로 옮겨져 채무자에게는 추심이 지속된다. 공식적인 회계장부에서는 지워진 채권으로 연체율에도 반영되지 않고, 금융당국이 집계해 발표한 가계부채 총량에서도 빠졌지만, 특별회계장부에 살아남아 채무자들을 향한 비정한 빚 독촉이 계속된다.
채무자 추심 고통 배가시키는 정부의 연체율 관리 마법

금융권의 연체율 완화를 위한 두 번째 조치는 채권 땡처리 시장을 활성화 하겠다는 의미이다. 2020년 이전까지 부실채권 시장은 최소한의 규제나 관리 지침도 없는 상태에서 야만적인 시장으로 성장해 왔다. 채권을 매입할 수 있는 자격기준도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대부업 등록만 할 수 있으면 매입채권 추심업자로 채권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이에 은행을 비롯해 거의 모든 금융권들이 신용대출 채권은 대부업체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대부업체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추심함으로써 돈을 벌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채무자에 대한 무분별한 추심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매입채권 대부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자본금 규제를 강화하고, 감독 또한 지자체에서 담당했던 것을 금감원으로 이관시켰다. 더 나아가 2020년 6월부터는 모든 금융권이 코로나 사태 이후 발생한 개인 무담보대출을 캠코에만 매각하도록 했다. 코로나로 어려워진 개인들이 대부업체로부터 과잉 및 불법 추심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캠코에만 채권을 매각할 수 있게 되자 연체 채권을 매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회사가 늘어나 연체율이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 금융당국과 업계의 주장이다. 따라서 금융권의 무담보 부실채권을 대부업체등에 무분별하게 매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규제가 완화되어 또 다시 대부업체들이 금융권의 부실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하면 경쟁이 심화된다. 이는 부실채권의 가격을 상승시켜 채권을 내다 파는 금융권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금융당국 관리 방안은 채무자의 각자도생 뿐인가

이 과정에서 채무자가 겪게 될 고통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금융권으로부터 경쟁적으로 높은 가격에 매입한 부실채권을 회수하기 위해, 대부업체들이 과잉 불법 추심을 할 것이란 우려는 온데간데없다. 그저 금융권의 연체율을 신속하게 줄이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에만 금융감독의 '관리 방안'이 집중되고 있다.

결국 정부가 가계대출 부실에 대해 '관리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신감은 채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더 큰 고통으로 내모는 방안이다. 연체율 수치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금융권의 이익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줄 수 있는 관리 방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들의 보호를 뒷전으로 한 채 금융권의 건전성이 담보될 수는 없다. 상처부위가 곪아서 염증이 온 몸으로 퍼지고 있는데, 빨간약만 바르면 된다는 식의 처방을 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부실채권 처리보다 더 빠른 속도로 채무자들의 고통이 채무 상환 불능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눈을 가리고, 금융권만을 위하는 정부의 '관리'는 가능할지는 모르나, 가계발 금융위기를 차단하고 국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관리'는 찾아볼 수 없는 지금. 이 또한 각자도생이 유일한 길이다.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함께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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