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들어둔 지옥 속에서 나는 아직 살고 있습니다

나의 큰아빠는 개새끼였다. 자기 조카를 지옥에 떨어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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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odanobunaga)등록 2023.07.30 11:59
"네가 이상한 거 처먹고 병원에 실려가서 돈이나 들어가고 말이야, 이 돈덩어리야."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랬어. 그럼 너를 키우느라 돈이 더 들지도, 아니, 너에게 먹일 쌀값이 더 들지도 않았을 텐데. 그 말 다음에 올 말이 무엇인지 알았기에 침묵으로 당신의 말에 항의하며 당신과 대화하기를 포기한 그날, 내 안의 나는 진정한 의미로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열일곱. 흔히 말해 말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아니지,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난다는 그 나이에 나는 모든 웃음을 내 안에서 마지막으로 지웠고, 그 자리에 가면을 써버렸다. 당신 앞에서는 절대 웃지 않으리라. 울지도 않으리라. 가장 즐거워야 할 나이 열일곱에, 사춘기라 상처나기 쉬운 마음을 누군가는 감싸줘야 할 열일곱에 나를 진지한 의미로 죽인 당신은 그래, 나의 큰아빠였다.
 
 
 
나의 큰아빠는 모든 것의 가치 판단 기준이 돈인 사람이었고, 지금도 모든 것의 가치 판단 기준이 돈인 그런 사람이다. 모든 일을 돈이 되느냐, 돈이 되지 않느냐로 판단하며, 돈이 든다면 얼마나 드느냐 그것이 유일한 관심사인 그런 사람. 그런 사람에게 있어 약물자살을 기도하고 병원에 실려갔다 살아남은 열일곱 살 어린 조카가 어찌 보였을지는 불을 보듯 빤한 일이지 않은가. 죽지도 않고 살아나서 병원비만 축낸 년. 차라리 그대로 뒈져버리지 괜히 살아나서 앞으로 돈 들 일만 남게 한 년. 먹는 쌀값도, 입히는 옷값도, 심지어 한 달에 한 번 사줘야 하는 생리대값도 아까운 년. 딱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리라. 그러니 자살을 기도했다 살아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조카 앞에서 그 따위 망발을 내뱉을 수 있었을 텐데 스물아홉이 된 지금끼지도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사실을 알면 내가 너무 초라해지니까. 아니, 너무 아프니까.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 모든 사실을 여태 외면하고 살아온 것은.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다들 나의 큰아빠가 조카의 목숨까지도 돈으로 환산하는 지독한 돈벌레요, 동화 속에 나오는 스크루지 할아버지나 자린고비 영감님이 "아이고, 형님!" 하고 세 번 절을 올릴 위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것만이었다면 내가 큰아빠가 만든 지옥 속에서 아직까지 살고 있을까. 열일곱 그날에 내가 자살하려 한 것의 90% 이상도, 그리고 지금까지 도저히 치료되지 않는 내 우울증의 80% 이상도 모두 큰아빠가 원인일 만큼 큰아빠는 내가 처음 무언가를 기억하게 된 네다섯 살 무렵부터 내 인생을, 그리고 내 인격을, 더 나아가 나의 모든 정서와 정신과 마음과 영혼을 갉아먹었다. 나는 그저 자기의 인형이요, 자기의 실패한 인생을 보상해줄 도구이며, 자기 자신의 인생이 실패하지 않았음을 투사하기 위해 마음껏 굴려댈 수 있는 장난감에 노리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산 지가 태어나 일 년도 채 되기 전부터 내가 자살시도를 하던 그날까지였으니, 또 내가 자살시도를 한 이후에도 나를 꾸준히 자기 마음대로 다루려 했으니 내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런 큰아빠랑 계속 같이 살고도 미쳐버리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일 테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나는 이제 스물아홉이 되었고, 그동안 꾸준히 내 나름대로 큰아빠를 이해하려 노력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야 내가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큰아빠로 인해 나는 누군가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한 마디에조차 극심한 반감을 가지게 될 정도로 의사소통과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 큰 어려움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내가 아직까지 취업을 하지 못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로도 모자라 타인이 내게 하는 말이 그저 잔소리인지, 충고인지, 걱정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 잘났다고 하는 소리인지 구분조차 하지 못랄 정도이니 이 어찌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 큰아빠로 인해 지옥에서 살게 되었으,며, 내가 사는 지옥은 곧 큰아빠가 만든 지옥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큰아빠가 왜 자기 자식도 아닌 조카인 저를 그렇게까지 학대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이해하고 용서하려다 제가 완전히 미쳐버릴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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