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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섬마을에 있는, '앵고'들의 학교를 아십니까

용호도에 국내 첫 '고양이 학교' 개소... "길고양이와의 공존 고민할 수 있을 것"

등록 2023.09.20 15:57수정 2023.09.2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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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통영시 한산면 용호도(龍虎島). 육지에서 14킬로미터 떨어진, 하루 세 번 여객선이 오가는 작고 한적한 섬이다. 9월 12일 화요일 오전 7시, 취재를 위해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용호도로 가는 첫 배를 타고 고양이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용호도에는 용초마을과 호두마을, 두 개의 마을에 26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고 두 마을의 딱 중간 지점에 섬마을 학교가 자리해 있다. 여객선은 두 마을에 차례로 정박하고 어느 마을에서든 20분쯤(1.2km) 걸어가면 이 학교에 갈 수 있다.

지난 9월 6일 국내 최초의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가 이곳에 문을 열었다. 1943년 개교해 학생 수 감소로 2012년 폐교된 이후 방치되어 있던 한산초등학교 용호분교가 일명 '고양이 학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방치됐던 폐교, 고양이들의 터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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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한산면 용호도 국내 최초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 고양이학교 전경 ⓒ 최늘샘

 
기존의 동물보호센터와 어떤 점이 다르기에 '국내 최초'라고 말하는 걸까. 2023년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운영하는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등록되어 있는 전국의 동물보호센터는 211개이다. 유기동물보호소, 동물복지센터, 동물병원, 보호협회, 입양센터 등의 형태로 존재하는 공공형 동물보호센터는 다양한 동물들을 대상으로 하지만 대다수는 개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2020년 기준, 동물보호협회는 전국에 길고양이가 100만 마리 이상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같은 길고양이들이 동물보호센터에 가는 경우 대부분 중성화를 거쳐 제자리로 방사하는 TNR(Trap(포획)-Neuter(중성화:불임수술)-Return(방사))이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개소한 고양이 학교는 고양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고양이를 보호하고 분양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공공형 동물보호센터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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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의 고양이 ⓒ 최늘샘

   
통영시에서 고양이 학교에 대한 논의는 2010년대 후반부터, 고양이와 동물을 사랑하는 시민들로부터 시작됐다. 초기에는 일본 세토내해의 아오시마(あおしま: 青島) 사례를 참고해 '고양이 섬'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고양이에 의한 섬 생태계 파괴를 우려해 미국 하와이 제도 라나이섬의 고양이 보호구역(Lanai Cat Sanctuary)을 모델로 한 '고양이 학교'가 현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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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가 위치한 용호도 전경 ⓒ 최늘샘

   
2020년 경상남도 주민참여예산 공모사업에 선정된 후 사업이 본격화 되었으며, 통영시 섬 지역의 여러 폐교들을 후보로 두고 논의된 뒤, 섬 주민들과의 오랜 협의를 거쳐 용호도 용호분교로 위치가 결정됐다. 

경상남도와 통영시 예산 4억여 원을 들여 시설을 리모델링했으며 120마리의 고양이를 보호할 수 있다. 현재는 통영시 한려해상국립공원 지역에서 구조된 고양이 30마리가 고양이 학교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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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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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 내부 모습. 용호분교의 교실이 고양이 보호소로 바뀌었다. ⓒ 최늘샘

  
고양이 학교를 담당하고 있는 통영시 농축산과 동물복지팀 박양진 팀장에게 고양이 학교의 운영과 개소 후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질문했다.  

"이곳에 오는 길고양이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보호·입양시설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고양이 학교에 전국의 애묘인들과 관광객들이 방문해서 낙후된 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통영시청의 2, 3개 관련 부서와 함께 고양이 학교를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려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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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공공형 고양이보호분양센터 운영 담당자, 통영시 농축산과 박양진 동물복지팀장 ⓒ 최늘샘

 
용호도 호두마을에서 13년째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박미자씨에게 고양이 학교에 대한 섬 주민들의 반응을 물었다. 


"우리가 처음에는 반대했지. 왜 하필 앵고(고양이의 방언) 섬이냐?! 생소했으니까. 폐교되고 학교 건물 활용에 대해서는 전부터 여러 얘기가 있었어요. 호텔을 짓겠다,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사람도 있었죠. 주민들은 어쨌든 학교가 놀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죠. 앞으로 잘 운영됐으면 좋겠고, 덕분에 용호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서 마을에 등산로도 생기고, 여객선 운항도 좀 늘어나면 좋겠어요."

"입양 문화 전파하고, 길고양이와 공존 고민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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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호도 호두마을 박미자 부녀회장. 그는 말했다. “우리가 처음에는 반대했지. 왜 하필 앵고(고양이의 방언)섬이냐?! 생소했으니까."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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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에서 바라본 바다와 섬들. 좌측이 한산도, 우측이 추봉도, 멀리 다리 너머 보이는 섬은 거제도이다. ⓒ 최늘샘

 
통영에서 '고양이회관'이라는 이름의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김미진 작가는 고양이 학교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캣맘, 캣대디 이슈가 크고 고양이에 대한 시선이 사랑과 증오로 분열되어 있는데, 고양이 학교를 통해서 반려동물을 펫 숍에서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전파하고, 길고양이와 어떻게 공존할지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거예요."

고양이 학교에 오는 고양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고양이 학교를 통해 용호도 섬마을도 좀 더 활기차지기를, 동물과 인간이 바람직한 공존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후 네시 반, 용호도에서 통영으로 가는 마지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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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초항에서 호두항으로 가는 여객선에서 바라본 고양이학교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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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 전경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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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학교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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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학교의 고양이들 ⓒ 최늘샘


통영시 공공형 고양이 보호·분양센터 '고양이 학교'는 방역이나 시설 보수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중 개방될 예정이다(문의 055-650-6250 또는 통영시동물복지플랫폼 홈페이지).
 
#고양이학교 #고양이섬 #길고양이 #고양이보호분양센터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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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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