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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문경 성지서 '길 위의 순교자'를 되새기다

순교자 성월에 떠난 경북 문경 진안리성지와 마원성지

등록 2023.09.23 15:53수정 2023.09.25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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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 마원성지. 부활하신 예수상을 중심으로 순교복자 박상근 마티아와 경북의 사도 칼레 신부의 동상이 서 있다. ⓒ 김연옥

 
한국 천주교에서는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정해두고 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이 땅의 순교자들이 남긴 발자취 따라 성지를 순례하는 것보다 순교자 성월을 의미 있게 지내는 방법은 없을 듯하다.

마침 운 좋게도 지난 10일에 진안리성지와 마원성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오전 8시 10분에 창원서 출발해 진안리 양업명상센터(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1시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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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리 양업명상센터에서. ⓒ 김연옥

 
천주교 안동교구 정도영 신부님이 맡고 있는 양업명상센터는 진안리성지, 마원성지, 여우목성지, 한실성지 등 문경 일대 성지를 관리하고, 순례자들에게 미사, 숙소 및 성지 안내를 돕고 있다.


정도영 신부님과 마산교구 진선진 신부님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한 후 인근 진안리성지를 찾아갔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 이어 1849년 4월에 두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은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선종했다고 추정되는 장소다.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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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안동교구 진안리성지. ⓒ 김연옥

 
도로변에 있는 진안리성지는 옛 주막터였던 곳을 2002년 9월에 안동교구에서 매입해 성지로 축성, 지정했다. 최양업 신부는 1861년 6월에 베르뇌 주교에게 성무집행 결과를 보고하러 상경하는 길에 들른 진안리 오리터 주막집에서 크게 병을 얻어 40세의 나이로 선종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모방 신부에 의해 최방제, 김대건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돼 마카오 유학길에 올라 신학 공부를 했다. 1846년 9월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피의 순교자이라면, 최양업 신부는 땀의 순교자라 할 수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산골 깊숙이 숨어들어 믿음을 지켜야 했던 험난한 시대에 과로와 장티푸스로 인해 쓰러져 목숨이 다할 때까지 전국에 흩어져 있던 교우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목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제 서품 받은 그해 12월에 귀국해 11년 6개월 동안 박해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목 활동에 힘썼다. 해마다 7000리가 넘는 거리를 다녔다 하니 한 해에 2749km 넘게 걸은 셈이다. 더욱이 목숨이 위태로운 박해 시대에, 그것도 험한 산길을 걷고 또 걸었을테니 가히 '길 위의 목자', '땀의 증거자'로 불릴 만하다.


그런데, 그의 선종 장소로 충북 진천 배티 교우촌이라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천주교 박해 탓에 드러내 놓고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 보면 있을 수 있는 논쟁으로 여겨진다.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복자 박상근 마티아를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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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안동교구 정도영 신부님의 마원성지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는 순례객들. ⓒ 김연옥

 
문경성당으로 이동해 집밥 같은 맛있는 점심을 하고서 마원성지(문경시 문경읍 오서길)를 향했다. 마원1리 마을회관을 지나면 성지 주차장이 나온다. 마원1리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 당시 순교했던 박상근 마티아 등 40여 명의 신자들이 살던 신앙의 터였다.

마원성지에는 문경현 아전으로 30세의 나이에 순교한 복자 박상근 마티아의 묘가 있다. 조금 떨어진 원래 묘터에서 1985년 9월에 현재 위치로 이장해 모시게 됐다. 묘 위쪽으로 부활하신 예수상을 중심으로 굳건한 신심에 뿌리박은 깊은 신뢰의 관계를 상징하는 듯한 순교복자 박상근 마티아와 경북의 사도 칼레 신부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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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마원성지에서. ⓒ 김연옥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였던 칼레 신부는 1861년 4월에 한국에 입국해 1866년까지 5년 동안 사목 활동을 했다. 파리 외방전교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칼레 신부를 지키고자 했던 박상근 마티아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그는 백화산과 뇌정산 사이 8부 능선상에 있던 한실 교우촌에 은신한 칼레 신부를 더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문경 읍내 자신의 집에 모셨다. 하지만 이내 마을 사람에게 발각돼 사흘 만에 한실로 다시 가야 했다. 함께 험한 산길을 오르다 어쩔 수 없이 서로 통곡하며 작별을 해야 했던 사연이 담겨 있다. 

길 위의 순례자였던 예수를 닮은 착한 목자들, 그리고 믿음으로 목숨을 바쳐 증거하는 삶을 살았던 순교자들의 완전한 사랑을 느낀 하루였다. 아울러 그들의 거룩한 죽음이 주는 의미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여정이기도 했다.
#진안리성지 #마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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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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