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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친구' 납치한 빚쟁이·의대생... 위기의 청춘들

[리뷰] 웨이브 <거래>

23.10.09 12:27최종업데이트23.10.0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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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포스터 ⓒ 웨이브

 
부산국제영화제의 '온 스크린'은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지고 OTT와 극장이 공생을 위해 고민해야 하는 시대를 반영한 섹션이다. 시리즈 일부를 극장에서 상영하며 앞으로 문화계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다. 올해 초청작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지난해 <약한영웅>으로 부국제를 뜨겁게 물들였던 웨이브의 <거래>가 그 주인공이다.
 
<거래>는 <약한영웅>을 통해 웨이브가 선보였던 오리지널 시리즈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최근 OTT 오리지널 시리즈의 방향성 중 하나는 웹툰을 원작으로 한 미디어 믹스다. 탄탄한 팬덤과 검증된 이야기를 통해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타 OTT가 자본력에 바탕을 둔 웹툰 세계관의 실사화를 화제성의 중심으로 삼았다면, 웨이브는 자본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흥미로운 플롯을 지닌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오늘 우린 친구를 거래한다'라는 <거래>의 문구는 단 한 줄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쩌다 친구를 거래하게 되었는지 그 궁금증을 추적하다 보면 양극화로 인한 청춘의 아픈 자화상이 근저에 깔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준성, 재효, 민우는 고등학교 동창 사이다. 이들은 술집에서 같은 잔을 기울이지만 각자의 삶이란 술은 다른 포대에 담겨 있다.

청춘 양극화, 우정의 붕괴 통해 흥미롭게 담아내
 

<거래> 스틸컷 ⓒ 웨이브

 
먼저 준성의 술은 가장 쓰디쓴 소주에 가깝다. 흙수저인 그는 팔랑귀 때문에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진다. 군대에 들어간 사이 불어난 사채이자 때문에 4억 원을 갚아야 하는 그는 제대 후 꿈꾸었던 새로운 삶에 대한 기운과 희망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착한 마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돈이 없으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그에게 세상은 씁쓸하기만 하다.
 
재효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술은 거품이 가득 낀 맥주다. 의대에 진학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던 그는 조직적인 커닝에 참여했다 본인만 퇴학 처분을 받는다.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여겼던 친구들이 재력가 부모를 통해 돈으로 사건을 무마한 걸 본 그는 허상과도 같은 거품이 푹 꺼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신경 쓰지 않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있는 재효는 부잣집 도련님인 동창 민우를 충동적으로 납치한다.
 
민우는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의 현대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의 부모는 세상에는 악인이 많다며 이에 대한 적응을 위해 아들을 일반계 고등학교에 보냈다. 부모가 말한 악인들을 만난 도련님은 소위 말하는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수업을 착실히 받았다고 여겼다.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납치를 당한 민우의 절망은 가장 독한 술, 보드카를 마시는 기분일 것이다.
 
부모의 재력이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현 청춘들이 직면한 양극화를 <거래>는 계층의 반란과 우정의 붕괴를 통해 흥미롭게 담아낸다. 이런 과감함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퍼니 게임>처럼 과격하거나 <기생충>처럼 발칙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이 아마추어라는 점에 기인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획이 아닌 충동적으로 진행된 납치는 어설픔에 더해 삐꺽거리는 순간의 연속으로 오락적인 재미와 함께 독한 소재를 순화시키는 힘도 보여준다.
 

<거래> 스틸컷 ⓒ 웨이브

 
아마추어는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연결된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아가는 순간 우리는 모두 아마추어이기에 이끌어 줄 어른들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현 청춘이 직면한 문제는 이 어른의 부재이다.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자기들끼리 뭉쳐 살아가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납치사건을 인지하고 진상을 파헤치고자 하는 수안 역시 경찰준비생이라는 점에서 아마추어들의 어설픈 계획과 분투가 매력 포인트로 다가온다.
 
무모하고 연약하지만 강한 흡인력을 지닌 <거래>는 <약한영웅>이 보여줬던 탄탄한 캐릭터 서사와 앙상블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청춘의 위기와 분투라는 주제의 강화를 위해 비슷한 메시지를 지닌 <낫아웃>으로 전주국제영화제 3관왕을 기록한 이정곤 감독을 수장으로 삼으며 힘찬 항해를 시작했다. 재효의 집에서 시작한 이 이야기는 민우를 찾기 위한 외부세력의 위협이 더해지며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거래>의 성공여부는 향후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에 대한 기대치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 위기의 X > <청춘 블라썸> 등 그간 웨이브는 투자의 규모보다는 다채로운 장르와 이야기의 힘을 내세운 시리즈를 선보여 왔다. 다만 <약한영웅>을 제외하고는 화제성에 있어 타 OTT에 밀리는 모습의 연속이었다. <거래>가 이 사슬을 끊으며 웨이브의 방향성이 알맞은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입증할 것인지 주목되는 바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거래 웨이브 부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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