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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실종 소식, 완전히 다른 두 모습의 아빠

[넘버링 무비 319]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어나더타운> 외 1편

23.11.04 08:41최종업데이트23.11.0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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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나더타운>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1.
<어나더타운>
한국 / 2022 / 28분
감독: 윤동기

가족들과 떨어져 살고 있는 공인중개사 태수(임호준 분)는 부동산을 찾아온 경찰들로부터 아들의 실종 소식을 전해 듣는다. 길거리를 방황하다가도 사나흘 정도가 지나면 가출 아동 가운데 90% 정도는 집으로 돌아간다며 내일 정도가 되어야 상황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경찰. 별거 상태라고는 하지만 아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그는 신고를 했다는 아내의 현재 상태마저 경찰에게 묻는다. 마치 자신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아들과 가족의 일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듯한 태도다.

윤동기 감독의 영화 <어나더타운>은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들은 아버지의 심리 묘사가 잘 표현되고 있는 작품이다. 극의 중심에 놓여 있는 실종 사건 위에서 주인공 태수는 완전히 다른 두 면(面)의 심리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드러낸다. 전환의 계기는 이름 모를 세 아이가 그의 부동산 문 안으로 콩알탄을 집어던지는 순간이 된다.

해당 신 이전까지는 아들의 실종마저 자신이 딛고 있는 현실과는 무관한 듯한 태도로 일관하던 태수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만다. 영화는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따르며, 거대한 그림자(사건) 앞에선 한 인간이 그 어둠을 마주하고 현실임을 인정하는 과정을 그리고자 한다.

"집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길거리보다 낫다 싶으면 다 들어가게 되어 있어."

경찰로부터 처음 아들의 사건을 전해 듣는 태수의 태도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실종이 있기 전에 불을 가지고 장난치다 걸린 적도 있고, 창문이 열린 집에 폭죽을 던져서 터뜨린 적도 있었다고 자신이 모르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별 반응이 없다. 영화는 그의 그런 모습 이후 두 번에 걸쳐 집을 중개하기 위해 움직이는 장면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끼워 넣는다.

자동차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이에 집중하는 도로 위의 아이들과 주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콩알탄을 던지며 노는 주차장의 아이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장면이 모두 태수가 바라보는 쪽을 기준으로 창문 너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그의 모습이 바뀌게 되는 계기인 세 아이가 부동산 안으로 콩알탄을 던지는 순간에서 열려있던 문과 완전히 대조되는데, 단절되어 있던 '어나더타운(아들의 실종을 포함한 동네 아이들의 문제)'이 그의 현실로 옮겨오는 순간이 된다.

어떤 문제가 제 삶의 현실임을 자각하는 순간 가장 빠르게 변하는 것은 행동이다. 도움이 필요한 이는 타인의 도움을 구하고, 특정한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그 행동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 사람이다. 필름 속의 태수 역시 마찬가지. 깊은 밤이 되어서야 동네를 헤매는 것은 아들의 실종이라는 문제가 이제 더 이상 '어나더타운'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의 이런 변화는 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가족과의 별거를 포함한 여러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놓인 가느다란 손전등 빛 하나가 실낱 같은 희망으로 남아 흔들린다.
 

영화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2.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
한국 / 2021 / 11분
감독: 김선빈

아르바이트로 현장 보조 일을 하러 온 소이(김다정 분)는 슬레이터 일을 하게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영화를 찍곤 했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감독 일을 하지는 않고 지금처럼 이렇게 아르바이트만 하며 촬영 현장을 떠돌고 있다. 준비를 하던 중 경민(김미은 분)이 이 작품의 배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소이. 그녀는 자신이 연출했던 단편 영화의 배우이자 연인이었던 인물이다. 약속했던 일을 촬영을 코 앞에 두고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 최대한 경민을 피해보려고 애쓰지만 배우와 카메라 사이에 존재하는 슬레이트 판을 들고 그녀를 피하기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그녀 바로 앞에서 카메라 세팅과 동선 확인을 위한 가이드까지 해야 하는 소이다.

이 작품은 가장 먼저 타이틀이 눈에 띈다. 컴퓨터의 폴더 주소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모양의 <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 >이다. 풀어쓰면, 이동식 디스크인 'E 드라이브' 안의 '말똥가리'라는 폴더 속의 '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안고 싶을 때가 있잖아'라는 파일이라는 뜻. 뒤에 말 줄임표가 붙은 것은 주소의 길이에 비해 창의 공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영화 속에서 이 주소는 연출은 했지만 아직 한 번도 상영된 적이 없어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이의 영화를 의미한다. 실제로 영화는 이 상영본을 찾아가는 컴퓨터의 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슬레이트를 들고 현장에 놓인 소이에게는 지금 한 가지 당장의 문제와 또 한 가지 지연된 문제가 존재한다. 과거의 연인이었던 경민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는 일과 계속해서 영화 일을, 정확히는 감독의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두 가지 문제는 모두 그녀의 부끄러움으로부터 발현된다.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아직 단 한 번의 상영조차 하지 못한 내 작품에 대한 창피와 여전히 자신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는 경민의 앞에서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무안함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前) 연인이었던 그녀에 대한 복잡한 감정 또한 함께 존재한다.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경민에게 소이는 아무도 몰라주는 걸 한다고 사서 고생하는 게 자신의 팔자인 것 같다고 말한다. 앞서 이야기했던 여러 종류의 부끄러움이 모두 내포된 말이다. 하지만 경민의 기억 속에는 누구보다 현장에서 열정적인 감독이었고, 또 자신을 사랑해 주던 모습으로 소이가 남아 있다. 그저 오늘의 현장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 다소 의외의 일이고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서 슬레이터 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생소했을 뿐, 조금도 다른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우리는 왜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무언가가 소정의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그 기억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마는 걸까.

이 영화 <E:/말똥가리/사용불가 좌석이라도 앉고 싶…>은 아직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한 이들과 무엇이 되지 못한 과거의 끝자락을 부끄러움으로만 안고 있는 사람들의 등허리를 가만히 어루만지는 작품이다.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이동식 디스크인 E 드라이브에만 평생 보관해야 할 처지의 일이라도 그 시간 속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행복했다면 결코 수치스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경민의 대사가 이를 대신한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별들은 다 과거의 별들인거래. 그러니까 우리는 별들이 과거에 빛나던 순간을 지금에서야 보고 있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별들은 어쩌면 지금은 너무 늙어서 사라져 버리거나 없어져 버렸을지도 모르잖아. 별이 어떤 모습인지 확인하려면 우린 수 억년을 더 기다려야 해."

하나의 별로 완성되는 밤하늘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사라져 버린 별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2022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리플레이' 상영작입니다. 그동안의 기획전을 통해 소개된 작품 외에 별도로 선정된 72편의 작품이 2023년 11월과 12월 두 달에 걸쳐 순차적으로 공개됩니다. 해당 영화는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 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영화 독립영화 인디그라운드 어나더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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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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