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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협동조합이 경기도 학교를 휩쓴 이유

[시몬스킴의 슬기로운 의정생활] 편법으로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고 있는 경기도교육청

등록 2023.12.04 11:23수정 2023.12.0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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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기간 시민단체 활동가와 변호사로 활약하다 도의원이 됐다. 시민단체 출신 변호사라는 다소 이례적인 삶의 경로와 그에 따른 시각으로 경기도를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의정활동 중 마주하는 사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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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교육청 청사 ⓒ 경기도교육청

 
경기도 파주에 소재한 A 사회적협동조합의 2023년 기준 파주시에서만 185개교의 학교에서 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파주시에 소재한 대상 학교를 전부 수주한 것과 마찬가지로 계약금액만 40억 원이 넘는다. 경기도 수원시에 소재한 B 사회적협동조합 역시 수원시에서만 45개의 학교를 관리하는데, 이는 수원시 소재 대상 학교의 37%에 이르는 수치이며, 계약금액은 9억 5천만 원이 넘는다.

특정 사회적협동조합이 특정 지역에서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모습이 정상적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의심을 넘어 경기도 교육청과 특수한 관계가 아닌 이상 이와 같은 계약은 불가능하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B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자는 경기도 교육청의 고위간부 출신 퇴직 교원이다. 이 퇴직 교원이 법인의 영업활동에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B 사회적협동조합의 영업실적을 고려해보면 경기도 교육청 고위간부 출신인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경기도 교육청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전문적 경험이 장점이 되어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두 사례와 같이 수십, 수백 곳의 학교와 계약을 체결하여 독점하다시피 사업을 진행한다면 이는 분명 문제의 소지가 다분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2023년 경기도 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하였다. 이에 대한 경기도 교육청의 답변은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 계약은 일선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청에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백번 양보해 교육청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듣는다고 해도 A 사회적협동조합과 같이 특정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업체를 교육청에서 모르고 있었다거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무리 특정 업체가 독점한다고 해도 사업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노동자에게 적정한 보상이 이뤄진다면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은 이러한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경기도 관내 학교와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을 체결한 파견사업주는 단 한 곳을 제외하고 모두 사회적협동조합이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기인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 중 하나였지만 시작부터 상당한 반발에 부딪혔다. 인천국제공항과 같은 사례에서는 정규직 전환 시도가 극심한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규직 전환정책은 다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2017년 7월 20일 발표된 정부합동 가이드라인에서는 파견·용역의 경우 정규직 전환방식을 본사나 자회사에서 직고용하는 방식 외에도 사회적기업 등(제3섹터 방식)을 통한 정규직 채용으로까지 넓혔다.


그런데 제3 섹터 방식을 통한 정규직 전환은 파견사업주를 사회적기업 등으로 제한하였을 뿐 파견·용역이라는 형태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파견사업주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도 파견·용역 노동자라는 신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또한 이러한 우려 점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제3 섹터 방식은 '파견·용역 근로자들이 동의한 경우'에 한정해 활용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이에 더해 파견사업주를 바꾸는 방식으로 파견·용역 근로자를 해고하는 편법을 방지하고자 가이드라인에서는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도록 수의계약 또는 장기계약이 가능하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이 사회적협동조합을 활용한 것은 경기도 교육청이 이와 같은 제3 섹터 방식을 활용한 정규직 전환을 선택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경기도 교육청은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일선 학교가 파견사업주와 장기계약을 하도록 유도해야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모든 학교가 파견사업주와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급여는 하나같이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결국,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동자들에게는 파견사업주, 즉 그들의 고용주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고용이 불안정한 파견·용역 노동자라는 신분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파견사업주가 정규직으로 채용한다고 해봤자 학교와 파견사업주 간 용역계약이 해제되면 해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경기도 교육청은 예산 정책상 파견사업주와 장기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핑계를 내놓았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에 대해서도 일선 학교에서 계약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청이 관여할 방법이 없다는 답변의 반복이었다. 그렇다면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무용역은 제3 섹터 방식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사업이다. 사회적기업 등을 이용한 정규직 전환은 이들이 추구하는 인간 존중의 정신을 통해 비록 파견·용역이라는 고용형태는 유지되지만, 노동의 질은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가 전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퇴직 교원과 같은 경기도 교육청의 특수관계인이 속한 업체가 특정 지역의 학교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는 현실에서 경기도 교육청은 노동자가 아닌 파견사업주의 잇속만 챙겨주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경기도 교육청이 이러한 비난을 받아들인다면 이제라도 학교시설 유지보수 노동자를 직고용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광민은 경기도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현직 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비정규직 #임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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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 사람사이 대표 변호사다. 민변 부천지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경기도 의회 의원(부천5, 교육행정위원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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