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의 제정에 가장 큰 공헌자인 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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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수(ccourt)등록 2023.12.26 18:05
 지난 여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조소앙 기념관과 생가를 다녀왔다. 조소앙은 우리나라 헌법이 민주공화국을 지향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이다.
 

경기도 양평의 조소앙 기념관 앞에 있는 조소앙 동상 ⓒ 여경수

 
 조소앙 기념관에서 소개한 그의 삶을 참고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소앙은 1887년 경기도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조용은이며, 필명으로 사용하던 소앙이 후에 이름으로 굳어졌다. 그는 조부에게서 유교사상을 배운 후 성균관을 수료하고, 황실유학생으로 일본 중학교에 입학한다. 1908년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부에 입학한다. 중국으로 망명을 간 조소앙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의 틀을 잡고 내용을 작성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헌법의 원형이 되는 문건들을 지난 몇 십 년간 공들여 작성하고, 다져나간 이는 조소앙이다. 특히 조소앙은 그가 체계화한 삼균주의를 헌법 이념으로 구체화한다. 예를 들면 조소앙이 제시한 삼균주의를 구체화하는 방안인 보통선거제, 독과점 방지, 교육을 받을 권리와 같은 내용들은 지난 1948년 헌법에 수용된 이후, 오늘날의 헌법까지 우리나라 헌법의 기본이 되고 있다.
 

조소앙 기념관의 정원에 있는 대한민국 100주년 기념탑 ⓒ 여경수

 
 조소앙의 생가를 둘러보며, 그가 꿈꾼 대한민국을 생각했다. 그는 정치에서 고루 힘을 나누어 가져 민주국가를 이룩하고, 교육에서 고루 가르치고 배워 문화국가를 이룩하며, 경제에서 고루 나누어 가져 복지국가를 이룩하는 것을 염원했을 것이며, 실제로 그러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많은 저작물을 남겼다.
 해방이후 조소앙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하고, 남북 협상을 지지해 제1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참한다. 지난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서울의 성북구에 출마해 전국 최다투표수로 당선된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6.25전쟁 당시 납북되고, 현재 그의 묘는 북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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