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나 목사가 되려던 소녀는 정의의 파수꾼이 되었다

<윤미향과 나비의 꿈>을 읽고

검토 완료

전희식(nongju)등록 2024.01.11 11:42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수십 명의 기자와 유튜버들이 진을 치고 앉아 수시로 터뜨려 대던 카메라 셔터 소리는 아무리 인권과 사생활 보호를 절규해 보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 나 혼자만의 항변이었다" (34쪽).
 

이런 상황이 자그마치 2년 반 동안 계속되었다. 본인의 의원회관 530호 사무실 앞에는 늘 기자들이 진을 쳤고 기자들 카메라에 무방비로 노출된 자신의 모습은 인터넷에 도배가 되었다. 어떤 기자는 가방을 낚아채서 쓰러뜨리려 하기까지 했다. 원하는 그림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다.

53~54쪽에서도 저자는 말한다. "(반복되는) 그런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눈을 뜬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차라리 침대에 붙은 채 영원히 눈을 감아버리면.... 자유를 얻게 되지 않을까?"라고.
  

책 표지 <윤미향과 나비의 꿈> 표지 ⓒ 내일을 여는 책

 
절규를 하지만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항변. 차라리 잠든 채 영원히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는 절망과 절대고독. 그 트라우마와 후유증, 망가진 일상. 책장을 넘길 때마다 아물었던 상처가 도지듯 내 기억의 파편들도 되살아나는 순간들이었다. 4년여의 수배 생활과 안기부의 고문. 보안대에 끌려갔던 그날의 지옥.
 
책갈피마다 아득함과 탄식이 스며있다. 남편과 시누이가 안기부 프락치 공작에 의해 남매 간첩단으로 몰린 대목이 그렇다. 검사의 심문 내용은 다음 날 보수 신문에 바로 인용 보도가 되고 재판에서 무죄로 판명이 난 꾸며진 죄목도 어느 신문 하나 정정보도를 않는 현실이 그렇다.
 
이뿐이라. 일본군 위안부 행사로 일본에 가면 일본 우익들이 맞불집회를 한다. 대륙침략의 상징인 일본 욱일기를 든 일본의 우익들. 그들의 집회 방해 장면이 떠오른다. 그 살벌한 현장을 버텨내야 하는 저자 윤미향. 작은 체구의 여성 활동가 윤미향.
 
일본의 극우단체만이 아니다. 일본 공항에 내려서는 두 시간 세 시간을 감금 상태로 특별 조사를 받는다. 손가방까지 뒤짐 당한다.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해도 외면당한다. 박근혜 정부의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있고 나서 심해진 박해다. (121~131쪽).
 
박근혜 정부의 그 합의를 무효화 하고자 활동의 선봉에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섰고, 그 단체의 대표가 이 책 <윤미향과 나비의 꿈>의 저자 윤미향이었다. 합의가 있고 나서는 일본 대사관 근처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도 위험해졌다. 어린 대학생들이 교대로 소녀상을 껴안다시피 하고 밤샘을 하던 때였다.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고 백남기 농부님의 병실을 지키던 녹색당의 농업위원장으로 나도 소녀상을 지키러 갔었다.
 
책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일본에서 벌어지는 일본군 위안부 방해 활동 뒤에는 한국의 정보기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바로 국정원이다. 한국 활동가들의 정보를 일본 정보기관에 제공하고 일본 극우 정권과 우익단체를 지원할 뿐 아니라 일본 공안기관에 정보를 주면서는 "그 여자 빤스까지 벗겨버려"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2021년 6월 1일. 엠비시 '피디수첩' 인용).

국정원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보기관인가? 독자들의 가슴은 처연해진다.
 
이 책은 한 편의 고발장 같다. 여성을 능멸하고 성 도구로 만든 일본제국의 전쟁 역사에 정의를 세우고자 했고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치유자가 되고자 했던 30년 세월을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현실 법정에서 피고가 되어야 하는 이 현실을 낱낱이 고발하는 책이다.

사법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거짓 조작일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검찰 독재정권의 정의 사냥, 역사 사냥, 평화 사냥이 얼마나 가증스러운지 알게 하는 책이다. 고난의 시간에 그녀의 곁에서 살며시 손 한 번 잡아 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지는 책이다. 단 돈 만원 후원금을 보내지 못한 게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격랑의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항구에 닻을 내리는 나룻배처럼 윤미향 책의 후반부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고향 땅 남해의 당항리 우형마을이 등장한다. 한 주일 내내 흙 속에 사시다가 주일이 되면 노동을 내려놓고 하루 '교인'이 되는 부모님. 교회의 종지기였던 아버지 따라 대신 종을 치기도 했던 앳된 소녀 윤미향을 만날 수 있는 대목이다.
 
"윤미향이 글을 아주 잘 썼구나. 너는 나중에 시인이 되어도 좋겠다."라는 교감 선생님 말씀 한마디에 시인이 되어 버린 윤미향. 하늘과 물, 바다, 꽃, 나비 등 그녀의 시상을 떠올리게 하는 소재들은 남해 바닷가에 넘쳤다. 1977년에 장애인을 돌보는 여성 목사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여성 목사님께 감화되어 시인 생활(?)을 접고 그녀는 목사가 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한국신학대학에 들어갔다. 이제 목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김학순 할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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