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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만에 5천만원..."살려주세요" 요청에 쏟아진 응원들

2024년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 '0원'... 2만 3061명의 손잡은 후원자들

등록 2024.01.15 11:59수정 2024.01.1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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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여름(활동가명)은 서울여성노동자회 소속 활동가입니다.  [기자말]
6년 전 내가 신입활동가 때 일이다. 선배 활동가가 쇼핑백 한가득 옷가지를 챙겨 출근했다. '이 짐을 전철로 다 가져오셨나?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해외 파견근무 중에 성추행을 당하고 급히 귀국한 피해자를 위해 옷가지를 챙겨 오신 거였다. 선배는 '얼마나 놀라고 정신이 없었으면 한국은 겨울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반팔 차림으로 왔겠냐'며 안타까워했다. 피해자 임시 숙소가 안전한지, 끼니는 거르지 않는지 수시로 챙겨 물었고, 법률 대응만큼이나 심리정서치유 프로그램에 정성을 쏟았다.

수개월간 사건 대응이 이어졌지만 피해자는 지치지 않았다. 매번 더 편안해진 얼굴로 상담실에 나타났다.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자청해 거리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건이 모두 마무리되고, 더는 상담실과 소통할 일이 없는데도 잊을 만하면 소식을 알려왔다. 다시 해외에 일을 구해 출국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예상보다 빨리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과 더불어 그는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일상으로 잘 복귀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여성노동상담실 활동가들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이다. 더 나은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가진 모든 수와 능력을 동원하는, 그래서 언제나 조금이라도 전진하는 사람들, 피해 노동자뿐 아니라 동료 활동가에게도 감동을 주는 존재이다.
 
 
사실 나는 이걸 나만, 우리만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속이 상하기도 했다. SNS에 남긴 우리 활동기록에 별 반응이 없는 날은 서러워하기도 했다. 부끄럽게도, 혼자서 비장하고 오만한 그런 순간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 모금을 통해 명확히 알게 됐다. 그건 우리가 주저하고 머뭇거린 때문이었다. 갖가지 자기검열을 하느라 우리는 한 번도 제대로 말해보지 않았다. 용기 내어 말하지 않았다. '도와 달라'고.

48시간 이어진 폭발적인 응원과 모금 릴레이

무조건적인 지지와 응원이 꼭 필요한 상황에 처한 우리가 절박함이 끌어올린 용기로 도움을 요청했더니, 많은 이가 기다렸다는 듯 덥석 손을 잡아주었다. 참여자만 무려 2만 3061명이다. 모금함이 열린 지 48시간 만에 직접 기부 2420명 약 4704만 원, 참여기부 2만 641명 약 296만 원, 도합 5001만 1400원으로 모금 종료! (응원글 바로 보기). 아마도 카카오 같이 가치 모금함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 아니었을까?
 
기꺼이 연대할 준비가 된 여성들과 치열하게 활동해 온 활동가들이 마주한 48시간. 모금함이 얼마나 빠르게 채워지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소액이지만 꼭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모금함이 찰 때까지 매일 참여하겠다'는 다짐 등등 진심을 눌러 담은 응원의 메시지가 새로고침하기 무섭게 올라왔다. 전국 12개 지역 활동가들은, 텔레그램 채팅방에 모여 밀려드는 응원 댓글을 하나하나 다 읽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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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노동자회가 긴급하게 올린 연대의 요청에 2만명 넘는 시민이 빠르게 화답했다. ⓒ 화면갈무리


여성노동자회 활동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라며, 감격하고 환호하고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모금에 참여하는 모든 분에게 생중계하고 싶었다. 우리가 연결된 이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24년 간의 동상이몽? 고용평등상담실의 시작과 끝

 
전국 여성노동자회는 1995년 일하는 여성의 권익보호와 피해구제를 목적으로 여성노동 상담창구 '평등의전화'를 개설했다. IMF 이후 기업의 '여성 우선 해고' 기조로 여성들은 대량 실업에 더해 온갖 차별을 겪어야만 했고, '평등의전화'로 걸려오는 피해 상담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여성노동자회가 '여성실업대책본부'를 꾸려 본격 피해구제에 나섰지만 근본 해결책일 수 없었다. 노동계의 계속된 요구에 정부는 2000년 '우리 사회 고용 평등 실현'을 목표로 민·관 협력 구조의 고용평등상담실 운영을 시작했다. '평등의전화'를 통해 노동상담 경험과 역량을 갖춘 여성노동자회가 고용평등상담실의 주축이 되었다.

고용평등상담실은 '민·관 협력사업의 좋은 예'로 손꼽히며 24년간 이어왔지만, 협력의 주체인 고용노동부는 성과주의 행정 시각으로 일관하며 모든 것을 수치화하여 논의에 임했다. 효율적 예산 사용? 성과주의 행정? 다 좋다. 하지만 법과 제도, 수치화되는 구제 조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민관협력을 시행하는 것은 태생적으로 경직적일 수밖에 없는 행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데, '상담건수'로 상담실 등급을 매기고 운영비와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하겠다는 일이 매해 반복되었다. 그들은 여성노동자의 안식처 고용평등상담실을 그저 '부처 홍보 실적의 한 줄'로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활동가들은 본래 목적에 집중했다. 우리는 여성노동자의 권리 회복과 일상으로의 안전한 복귀에 전력을 쏟았다. 여성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든 평등하고 안전한 노동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회 전체의 변화를 추동했다. 사내 대응, 법률 대응과 지원, 심리정서치유 지원, 사회문화와 제도 및 법 개선, 여성의 주체적 대응력 향상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지만,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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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7일 전국여성노동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 주최로 열린 ‘여성노동자도 주권자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전국여성노동조합

 
12개 지역 여성노동자회는 정기회의와 워크숍을 치열하게 했다. 전국 활동가가 모여 상담 경향을 파악하고 사례를 나누었다. 사내 대응, 노동부 진정 과정에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놓쳤던 것은 무엇인지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방향을 연구했다. 성평등이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사건 하나하나에 집중했고, 매일 한발짝이라도 앞으로 간다는 심정으로 이어온 24년간의 활동이었다.
 
황당한 노동부의 '0원' 처리, 그 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사전에 어떤 설명이나 논의 없이 2024년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을 '0원'으로 처리했다. 여성을 지우고, 노동 가치를 폄훼하고, 인구 생산의 도구로만 삼으려는 이 정부의 기조를 이미 체감해 온 활동가들은 분노할 새도 없이 움직였다.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국회 토론회, 폐지 반대 1만인 연서명 조직, 피해자 목소리를 담은 기획기사 연재 등을 통해 여론을 모았다. 환경노동위와 예산결산위 소속 국회위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0원이 된 예산을 왜 복원되어야 하는지, 마르고 닳도록 설명했다.

고용평등은 헌법 34조 제3항에 명시된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런데 여성노동상담실을 제발 없애지 말아달라고 이렇게까지 애걸복걸 읍소할 일인가?
 
여성에 대한 윤 정부의 폭압적 기조를 안다. 알기에 안될 줄 알면서도 시작한 싸움이었다. 여성노동자에게는 이곳이 마지막 보루이자 유일무이한 방패막임을 알기에 '해야만 하는 싸움'이었다. 9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우리의 투쟁에도 고용평등상담실 예산은 정부의 가위질에 결국 0원이 되었다. (관련 기사: 고용평등상담실, 여성노동자의 마지막 보루를 지켜내자 https://omn.kr/26fzd ).
 
예상했어도 분노와 허탈은 감당하기 어렵고, 막막함이 밀려왔다. 상담실은 닫을 수 없다는 게 모든 활동가의 심정이지만, 당장에 예산을 확보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금함에 쓴 표현 그대로 '절박한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보기로 했다. 믿을 것은 서로밖에 없다는 걸 시민들이 알아주기를, 이 마음이 닿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사실 나는 처음엔 모금함이 다 찰 거라고는 차마 기대하지 못했다. 결과에 실망하지 말자는 말을 해둘까 싶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기가 무서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다. 정말 두렵고 절실한 마음이었는데, 그랬는데! 48시간 동안 폭발적인 모금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래,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지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을 등에 업은 우리는 못할 게 없다.
 
활동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뭐냐고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늘 대답을 골랐던 거 같다. 어느 하나만 생각날까 싶기도 했다. 나에게도 이제 생겼다, 그런 순간이!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48시간이 있다고. 최대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우리는 활동의 새로운 동력을 얻었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말을 진짜로 알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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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회에 쏟아진 응원의 댓글들. ⓒ 화면갈무리

 
손 내밀면 잡아줄 사람들이 있음을 확인하고부터 더 담대해진다. 대책 없이 뜨거움을 안고 사는 내가, 이런 나다움을 지켜내며 활동할 수 있겠다 싶어 즐겁다. 여성노동자회도 마찬가지이다. 여성해방, 노동해방을 외치며 걷는 우리의 활동이 결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님을 확신하게 됐다. 이 정부보다 더 밑 빠진 독이 우리 앞에 내밀어져도 지금보다 더 많은 손이 앞 다투어 내밀어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막아줄 테니 그대들은 물을 부어라 외쳐주시겠지.
 
여성노동자회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온갖 혐오와 차별을 걷어치우고 성평등 사회로 걸어갈 것이다. 2만 3061인의 후원자들, 벅차고 소중한 48시간을 선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더 많이 상상하고 더 크게 기대하며 나아가요. 쿵쾅쿵쾅 발자국 소리 크게 내며 함께 걸어가요. 
덧붙이는 글 여성노동상담실은 계속됩니다. 평등의전화는 언제나 여성노동 현장에 있습니다.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1670-1611, 대표사이트는 http://kwwnet.org.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고용평등상담실 #카카오같이가치 #모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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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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