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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농지개혁 상찬한 한동훈의 이율배반

[주장] 지주에게 손해가 되는 농지개혁은 높게 평가, 정부여당 부동산 정책은 그 반대

등록 2024.02.15 11:20수정 2024.02.15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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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당 지도부가 이승만 띄우기에 나섰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어올리는 영화 <건국전쟁>을 이번 총선에 활용, '자유민주주의 수호 선거' 프레임으로 치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랴.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의 알맹이, 즉, 보통선거, 사상의 자유, 인신의 자유라는 잣대로만 봐도 실격이니 말이다. 그는 당시 초등학생까지 참여한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났다. 그는 결코 국부(國父)가 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무슨 뜻인가? 그것은 반공(反共)이다. 이들은 한 번도 자유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정의(definition)해본 적이 없다. 이들은 반공만 주장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도 애국자가 될 수 있고, 민간인을 학살해도 되며, 대대적인 선거 부정을 저질러도 양해할 수 있고, 사법살인을 통해 정적을 제거하는 것도 별일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실상은 반공을 위해 친일파를 기용한 것도, 민간인을 학살한 것도, 대대적인 선거 부정을 저지른 것도, 사법살인을 저지른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자신들의 실정을 숨기고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반공'을 내세울 뿐이다. 그런데 이 본질은 지금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들이 이승만을 국부로 추앙하는 까닭은 이 본질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닐까.

농지개혁의 핵심은 지주들의 손해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건국전쟁> 관람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승만의)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 "농지개혁으로 만석꾼의 나라에서 기업가의 나라로 바뀐 것"이라고. 여기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논외로 하고 농지개혁에 관해서만 집중해서 살펴보자.

성공적인 농지개혁이 없었다면 산업화 성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해방 직후 우리나라 전체 206만 농가 중 완전한 자작농(자작지주 포함)은 고작 14%였고 나머지 86%가 자소작농이었다. 그런데 1950년 3~5월 사이에 단행된 농지개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무려 96% 농민이 자작농이 되었는데, 이는 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 인해 농지개혁에 실패한 필리핀과 같은 나라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인 국가기구를 매수·장악해 사회경제적 개혁을 저지하는 지주계급은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수 있었고, 높은 교육열이 가능해져 유능한 인력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이 모든 것은 산업화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농지개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지주들의 손해를 무릅썼다는 것에 있다. 지주들의 손해는 곧 농민들의 이익이고, 이것이 토지 소유 불평등 해소를 가져와 성공적인 산업화의 토대가 된 것이다. 성공적인 농지개혁으로 토지 소유 지니계수가 1945년 0.72~0.73에서 1960년대에 무려 0.30 중반대까지 감소했다.

농지개혁에 있어서 조봉암의 역할은 결정적

그러나 이런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초대 농림부 장관 조봉암의 역할을 빼곤 설명하기 어렵다. 먼저 조봉암이 농지개혁에서 가장 쟁점이 되었던 지주 보상안을 평작의 150%로 묶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한다. 지주 보상액과 농민 부담액은 연동될 수밖에 없다. 즉, 지주 보상액이 낮아진다는 것은 농민들에게 그만큼 유리해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농지개혁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을 뜻한다.

당시 농지 가격이 평작의 300~500% 사이에서 결정되었기 때문에 지주 정당인 한민당(민국당)은 지주 보상가를 평작의 300%, 그것도 안 되면 240%로 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조봉암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 전, 아니 국무회의에 올리기 전, 그러니까 정부 수립 후 3달이 조금 넘은 1948년 11월 22일에, 농민들에게 가장 친화적인 안을 만들어 전격적으로 발표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개해버림으로써 지주에게 친화적인 안이 등장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조봉암 농림부의 치밀하고 놀라운 행정력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농지개혁 법안은 1950년 3월 10일에 최종 확정되어 공포된다. 그런데 농지개혁의 핵심인 농지 매수와 분배 작업은 놀랍게도 그 전해인 1949년 6월에 착수하여 1950년 5월 안에 완료된다.

이런 실행이 가능했던 것은 조봉암의 농림부가 처음부터 농지개혁을 기정사실로 하고 1948년 말부터 1년여 동안 그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법안이 공포된 이후 시행규칙 등을 만든 다음 농지 매수와 분배 작업을 했다면 한국전쟁 발발로 농지개혁이 지연되어 효과가 크게 반감되고 농지개혁의 산업화 기여도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조봉암의 역할을 빼고는 성공적인 농지개혁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의 기여도 무시할 수 없다. 1950년 5월 30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농민의 표를 얻기 위해서 농지개혁을 단행한 측면이 크고, 농민 부담을 줄이는 데 인색했지만, 농지개혁은 어디 까지나 이승만 정부하에서 단행된 것이다.

부동산 부자들의 이익 보장에 앞장서는 윤석열 정권

이렇게 '지주의 나라'에서, 지주의 손해를 무릎 쓴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자영농의 나라'가 된 대한민국은 도시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다시 '지주의 나라'로 전락해버렸다. 토지 소유 지니계수는 2022년 현재 가액기준으로는 0.810, 면적기준으로는 무려 0.916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해방 직후 0.73보다 훨씬 불평등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토지 소유 불평등을 오늘날로 말하면 부동산 소유 불평등이다. 그리고 이 부동산 불평등은 우리 모두가 느끼고 있듯이 경제 불평등의 주범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상찬하는 한동훈의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권이 추진해야 할 정책 방향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이익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농지개혁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과소보유자나 비(非)보유자들에게 유리해지고 이들의 부동산 소유 가능성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오히려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이익이 더욱 커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들은 집권하자마자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이익을 일부 환수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이익을 환수하면 오히려 집 없는 서민들이 피해를 본다는 기괴한 주장을 편다. 이것은 농지개혁 당시 지주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할수록 소작농에게 유리하다는 말과 같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상찬하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지주들의 손해를 무릅쓰고 단행한 것이고 이것은 농민 전체에게, 나라 전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어떻게 하면 지주 혹은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의 이익을 더 크게 해줄까를 궁리한다. 이율배반, 일관성 부재의 전형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자유민주주의 수호, 이승만의 농지개혁 상찬은 한갓 수사에 불과하다고, 본질은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 지키기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입니다.
#이승만 #한동훈 #농지개혁 #부동산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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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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