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의 죽음은 암울한 종막인가 종전의 도화선인가

[주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침공 2년, 상부압박의 임계치가 왔다

등록 2024.02.21 09:36수정 2024.02.2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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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구 러시아 영사관 근처에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는 꽃과 사진이 놓여 있다. ⓒ AP/연합뉴스

  
2024년 2월 16일, 나발니가 죽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 2주년이 되기 단 8일 전이었다. 죽음을 경고하며 돌아오지 말라는 러시아 정부의 말에도, 나발니는 "돌아갈지 말지라는 질문은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결코 (러시아를) 떠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죽음은 공론화 되었으나 짧았고, 푸틴은 끝까지 그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시신 또한 유가족들에게 제대로 수습되지 않아서, 적어도 소식을 접한 반 푸틴 세력들은 그의 부고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표출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나발니의 죽음을 돌연사로 치부했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으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구하지 못했다면서. 러시아 북부 병원에 그의 멍이 든 시신이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확실하진 않은 상황이다. 명확하지 않은 매체와 익명의 구급대원 제보자를 인용한 뉴스의 신빙성을 믿기엔 어려움이 있으니까. 항상 푸틴을 적대했던 세력들의 의문사는 있어왔다. 아마 대표적인 반 푸틴 인물이었던 그의 죽음이 불러올 파장은 지금도 크지만 앞으로도 상당할 예정이다.

SBS는 나발니의 죽음으로 인한 반 푸틴 세력의 약화를 말하며, '대러시아 제재도 대부분 소진되면서 서방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비난뿐이라는 암울한 분석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불쾌했지만 부분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전쟁, 국제사회와 대기업들의 러시아 보이콧이 있어왔지만 푸틴은 인도쪽으로 원유를 판매해서 전쟁자금을 마련했고, 2023년 2분기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4.9%p가 되었다. 해외 기업들은 철수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와중에, 떨어졌던 루블화 가치는 이미 회복한 상황이다.

되려 경제 제재로 인해 유럽은 천연가스 가격의 폭등을, 우리나라는 광물 가격의 폭등을 받고 도산하는 기업들이 생겼다. 이 와중에 러시아의 아래로는 인구수를 자랑하며 러시아와 사회 체제도 비슷한 우방국 중국이 상대적으로 이득을 보는 중이다. 국제사회가 국가간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와 화합의 장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공헌한다는 말이 이전만큼 확신을 가지기는 어려워지는 상황. 결국 우크라이나가 모든 이권을 빼앗기면서 암울한 종막으로 치닫는게 아니냐는 비관적인 시선은 자연스러운 것일테다.

다만 나는 나발니가 역사를 바꾸는 주요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를 보고선 나는 한번 더 허지웅의 말이 기억날 수밖에 없었다.
 
"편하고 안전한 길이 있고, 어렵고 불편하지만 양심을 따를 수 있는 길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이 전자를 택한다. 우리는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약한 존재다. 그런데 아주 가끔 이상하게도 다수의 시민이 후자를 따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반드시 역사가 바뀐다." - 영화 <택시운전사>(2014) 평론 일부 

 
집단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독일이 2017년 에버트 인권상의 수상자를 개인이 아닌 2016년 국정농단의 사태의 촛불집회 1000만시민으로 지목한 건 이유가 있다. <서울의 봄>에서 나온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대사는, 체제를 전복시키지 못한 집단의 저항은 '반사회'로 묻힌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사였다. 얼마 전에도 나발니의 석방을 외치던 시민들 약 2000여 명이 결국은 체포되었다. '체포'라는 워딩에만 집중하자면 결국은 공산주의적 사회체제가 민중을 억압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그 '2000명'에게 집중하기로 했다. 나발니와 2000명, 과연 2000명 뿐일까. 그의 사망소식 이후 러시아는 추모객 400명을 추가적으로 체포했다. 조의마저 억압하는 국가를 두고, 앞으로 거리로 나와서 '부끄럽다'고 외칠 시민은 더 늘어날 것이다.

21세기 정보의 범람 속에서 러시아는 전쟁 초기부터 속셈이 만천하에 까발려졌다. 언론을 통제하고, 방송을 제재했으나 누군가는 해킹을 통해 전쟁 중임을 송출했고, 일론 머스크는 우크라이나에게 스타링크를 날려줬다. 장기전으로 치닫는 전황, 세계국제기구의 맹비난, 강제징집, 대부분의 지지율을 노년층에게서 얻고 있는 푸틴 등을 보고 있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최근 중국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독립론자가 총통으로 당선되었고, 북한은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를 적대국으로 확정하고 위협하려는 선전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부저항이 올라가고 상부압박이 약해지는 이 상황 속에서 전쟁을 지속하고 싶은 푸틴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모두에게 꺾이고 죽던지, 고립된 귀족으로 살다 고독사하던지. 프리고진의 '우연에 의한' 비행기 추락과 나발니의 '갑자기 쓰러진' 돌연사 모두가 의문으로 남은 가운데, 더 이상의 러시아 국민들을 향한 억압은 역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If they decided to kill me, then it means we are incredibly powerful in that moment, you have to use that power. Don't give up." (만약 러시아 정부가 나를 죽인다면, 이는 그만큼 우리의 힘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내가 죽어도 남은 사람들은 그 힘을 사용해야 한다. 포기하지 마라.)

2021년, 러시아 정부에게 체포되기 직전 나발니가 한 말이다. 대중은 약한 게 맞다. 다만 대중은 본인들의 삶마저 위협받는다면 일어선다. 종전과 더불어 러시아 국민들에게 보다 나은 삶이 오기를 희망한다.
#나발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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