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주의 기쁨도 잠시, 얼굴을 보려면 2주나 기다리라니....

3월 초에 손녀가 태어났습니다. 할배할매의 백일해 예방 접종 후 항체형성 2주가 지나야 만날 수 있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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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jayjung1988)등록 2024.03.17 14:12
이달 초 어느 날 저녁, 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가연(가명)이 지금 병원에 왔어요. 낮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해 안되겠다 싶어 같이 왔는데 아마 곧 애기를 놓을 것 같아요." 며느리의 산통이 시작됐다는 전갈이었다. 초조하게 저녁 시간을 보낸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연락이 왔다. 체중 2.82kg의 딸을 무탈하게 출산했다고 한다. 2021년 결혼한 아들 부부는 첫 아이를 유산했다. 그 이후로도 임신을 시도했으나 선뜻 애기가 들어서지 않아 애를 태웠는데 이번에 순산한 것이다.
 마침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우리 내외는 허둥대며 병원으로 향했다. 자정을 좀 넘긴 시간이었다. 집에서 병원이 차로 10분이 안걸리는 가까운 거리였지만 서둘러 차를 몰았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주차요원이 다가와 용건을 물었다. "손주를 보러 왔다"고 하니 병원 출입이 안된다고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내 첫 손주를 보러왔는데 그냥 가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 어이없어 하며 되물었다. 그는 "코로나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뿐더러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들이 있기 때문에 산모와 애기 아빠를 제외한 누구도 출입이 안된다"고 했다.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해가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할 수 없이 병원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로 안부만 묻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산 이틀 후 며느리는 병원에 딸린 산후조리원으로 옮겼다. 그 곳에서 2주를 머물 예정이다. 조리원에 가면 손녀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병원 측에서는 '백일해'예방 접종을 받아야 만 대면접촉이 가능하다고 했다. 뭔 놈의 절차가 이렇게 까다롭나 싶었으나 별수없이 접종 의료기관을 물색했다. 개인의원에서는 대체로 1회 접종에 5만원이었다. 부부가 맞으면 10만원이니 적지 않은 돈이라 싸게 맞는 곳을 찾은 끝에 건강검진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서 1인당 3만원에 해결했다. 접종을 했지만 손녀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백일해의 항체가 형성되려면 2주가 걸린다는 것이었다. 결국 며느리의 조리원 생활이 끝나고 집으로 올때쯤에야 손녀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손녀의 출생은 우리 부부와 아들과 며느리, 사돈 내외를 온라인 상으로 연결시켰다. 며느리가 시부모와 친정부모에게 손녀를 보이게 할 요량으로 네이버 밴드를 만들었다. 저녁 10시쯤 이면 아내 핸드폰에 '차랑'하는 소리가 울린다. 며느리가 손녀 모습을 스틸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손녀 모습을 밴드에 올렸다는 신호음이다. 아내와 나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본다. 신생아답지않게 또랑또랑한 얼굴이 신기하고, 나날이 자라는 듯한 변화에 경탄한다. 꼬물꼬물거리는 움직임에 우리 부부는 쓰러진다.
 며느리가 참 고맙다. 의료대란 상황에서 무사히 출산한 것이 고맙고, 몇 년전 정년퇴직 후 별다른 낙이 없는 내게 미소거리를 만들어 준 게 기쁘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 0.78명의 저출생 시대에 떡하니 애국자(?) 반열에 오른 점도 자랑스럽다.
손주를 보기전에 마음 속으로 다짐한 게 있다. 카카오톡 대문 사진에 손주 사진을 올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손주 사진으로 도배를 한 카톡프로필을 보면 팔불출처럼 보였다. 애기를 갖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가정들에 섭섭함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음 뿐이었을까. 단톡방 친구들에게 양해(?)아닌 양해를 구하고 내 프로필에 손녀 사진을 내걸었다. 그리고 이틀 후 내리기 싫은 그 사진을 내리는 것으로 손녀자랑을 마무리했다. 친구들은 보기 좋다며 그냥 두라고 했다. 며칠 후면 엄마 품에 안겨 손녀가 집에 온다. 태어난 지 2주가 지나면 할아버지를 알아볼수 있을까, 앞으로 이 녀석은 뭐가 될까, 아빠로서는 시원찮았지만 할애비로서는 괜찮은 존재가 돼야될텐데 어떻게 해야되나, 아예 내가 육아의 한 축을 떠맡을까 등 설레임과 걱정이 교차됐다.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8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60 중반을 목전에 둔 내 친한 친구들 중에 내가 가장 먼저 손주를 맞은 게 현실이다. 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욕망이 아니다. 행복해야 결혼하고,행복해 질 것 같은 가능성이 보여야 아기를 낳는다. 출산율이란 숫자가 아닌 삶의 행복을 담보하는 분위기가 확산될 때 아기는 태어난다. 소소한 이 행복감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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