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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머리숱 없어서 너무 좋겠다"

[50대 아빠 두 꼬맹이 양육기①] 너무 솔직한 아들

등록 2024.03.22 20:06수정 2024.03.2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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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0대 아빠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운다. 첫째와는 46살, 둘째와는 47살 차이가 난다. 누가 봐도 깜짝 놀랄 만한 나이 차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끔 가슴 뜨끔한 일을 겪기도 했다.


아이를 보면서 "아이구, 귀여워" 하시던 분들이 나를 '흘깃' 보고선 다시 아이에게 "할아버지랑 나들이를 하는구나"라고 해서다. 그러면 아이가 "아니예요. 아빠예요"라고 말해서 일단락되곤 했지만, 나도 민망하고 상대방도 민망한 상황이었다.

그때보다 몇 년이 더 지난 지금은 그런 일이 사라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때보다 나이는 더 들었고, 자연스럽게 노화도 더 진행됐다. 그런데 몇 년 전엔 종종 들었던 '할아버지'란 표현이 왜 사라졌을까. 혹시 내 귀가 어두워져서 듣지 못하는 것일까(헉).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내가 젊어지진 않았다. 스타일이 더 좋아진 것도 아니다. 젊어지려고 더 노력한 것도 아니다.

젊은 아빠 되기를 위한 아내의 노력

아. 내가 노력하진 않았지만 아내는 노력했다. 아내는 한동안 내 가발을 찾으러 다녔다. 그래서 인근 도시에서 딱 맞는 가발을 찾았다. 생각보다 가발 가격은 비쌌다. '헉' 소리가 나오는 가격이었다. 가발을 판매하는 미장원 사장님은 "서울에 비하면 절반 가격이에요"라고 말했다.

검색해보니 그런 것 같긴 했다. 돈이 아까워 가발을 몇 달 썼다. 바람이 불거나, 조금 거친 운동을 하거나, 아이들과 열심히 놀다 보면 가발이 살짝 돌아가곤 했다. 나는 느끼지 못했다. 아이들도 상관없었다. 놀라는 건 집에서 내 모습을 본 아내였다. 몇 번 난감해진 내 머리털을 보고선 슬그머니 가발을 벗겨서 치워버렸다.


아내는 포기란 게 없다. 이번엔 머리문신이란 걸 찾아냈다. 그래서 석 달에 걸쳐서 머리문신이란 걸 했다. 첫 한 달 동안 머리문신을 하는 장인은 매번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거, 참."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땀을 많이 흘리시나요?" "문신이 좀 안되는 분들이 있어요." "처음엔 안되다가 시간 지나면 점점 진해질 거예요."

두 달째가 됐다. 하던 말을 조금 더 자주 했다. "거, 참"이란 탄식과 함께. 문신장인은 본인도 확신이 들진 않는 듯한 목소리로 거울을 내밀었다.

"어떠세요?"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요."


두 달 전 촬영한 사진을 보여준다. 과거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하니 차이가 나긴 한다. 집에 가니 아내는 '갸우뚱' 한다. 주변에서 먼저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내가 가까운 사람에게 실토하고 물어보면 "좋아진 것 같은데요"란 답이 돌아왔다. 엎드려 절받기란 걸 알았지만 그렇게 믿고 싶었다.

원래 훨씬 이전에 끝나야 했지만 문신장인도 무한정 끝낼 순 없었다. 석 달째 마무리를 지었다. 장인도, 나도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행운을 빌면서 그렇게 '굿바이'를 했다.

아내에게 사연을 들은 지인들은 잠깐 내 머리를 보면서 아는 체를 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아내를 따라가서 얼굴에 주사를 한 번 맞은 적은 있다. 그걸 '보톡스'라 했다. 주름이 펴진다 했는데, 아내는 내 얼굴을 보면서 "사나와졌네"라면서 웃었다.

1년 동안 '늙은 아빠'를 '젊은 아빠'로 변신시키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아내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런 아내의 '헌신'이 있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 소리가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할아버지 소리가 들어갔을까.

내가 사는 동네는 작은 동네다. 그 전엔 '면'이었고 최근에 '읍'으로 승격했다. 1-2년 지내다 보면 결국 얼굴이 익게 되는 동네란 뜻이다. 아들이랑 딸이랑 산책하는 모습을 많이 봤을 테고 '할아버지'라고 하던 분들은 아들의 교정 작업을 받았다. 결국 세월이 흘러 나이 많은 아빠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 솔직한 아이들, 흉내 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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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참 좋겠다" 머리숱이 없다는 아빠를 '부럽다'고 하는 아들 ⓒ 김대홍

 
문제는 바깥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참 솔직하다. 눈치를 보긴 하지만 어른처럼 눈치를 보진 않는다. 어른들은 교양 있게 거짓말도 잘하고, 속내도 교양 있게 잘 숨긴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 거짓말을 하긴 하지만 금세 들통난다.

줄곧 살다 보니 아이들은 나이 든 아빠가 익숙해졌을 텐데, 몇 달 전 아들이 저녁에 목욕을 하면서 나보고 '부럽다'고 하는 거다. '왜'라고 물었다.

"아빠는 머리숱이 없잖아. 그래서 머리도 금방 감고, 금방 말리잖아. 그래서 부러워."

아이구야. 아들은 진심이었다. 설마 7살 아들이 아빠를 이런 식으로 놀릴까. 나보다 머리숱이 더 풍성한 아들이 앙상한 내 머리털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몇 초 동안 지켜봤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럼, 바꿀래?' 그럼 서로 '윈윈'이겠지만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고. 중요한 건 저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아들아, 나한테는 그런 말을 해도 되지만 다른 어른들한테는 하면 안돼. 그 분들은 싫어할 수도 있고, 놀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

아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지만 '알았어'라고 했다. 그 뒤로 머리 이야기를 안 한 걸 보면 제대로 접수는 된 듯 싶었다.

머리 건은 일단락됐지만 또 다른 건이 나타났다. 2탄은 좀 더 셌다. 역시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아들이 나를 빤히 보더니 "아빠는 좋겠다"라고 하는 것이다. "뭘?"이라며 물었다.

"아빠는 곧 하늘나라 가잖아. 그러면 거기서도 재미나게 지낼 수 있고, 혼자 있는 아지(지난해 세상 떠난 우리집 강아지)도 만날 수 있고. 아지 혼자 외로웠을 텐데."

그야말로 '헉'이었다. 나이 든 아빠의 존재를 어쩌면 나보다도 더 현실적으로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을 떠나는 것에 대해 꼭 나쁘게만 보는 게 아니라는 점도 드러난다. 이걸 혼낼 일은 아니고. 그렇다고 '잘했다' 할 일도 아니고. 잠깐 뜸을 들인 뒤 아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들은 아빠가 하늘나라 가도 괜찮아? 아들은 아빠 없어도 괜찮아?"

그 말을 듣자 아들 눈이 촉촉해진다. 그 생각은 못한 모양이다. 아빠 문제로 생각했는데, 자기 문제란 생각이 든 모양이다. 아들을 안고 '괜찮아'라고 했다. 며칠 뒤 아들 친구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엄마도 눈가가 살짝 '촉촉'해졌다.

아이들은 참 솔직하다. 그 솔직함은 어른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다.
#가족 #머리숱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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