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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 간 아들딸이 오질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4.16 유가족과 생존학생, 연대자들이 몸으로 싸워온 지난 10년을 기록하다

등록 2024.03.22 17:47수정 2024.03.2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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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사진 ⓒ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2022년 봄, 나와 동료, 4.16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작가기록단)은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로부터 10주기 백서 작업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세월호, 가족협의회, 10년. 이 세 단어 모두 쉽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기 때문이다. 

선뜻해보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나 거절할 수도 없었다. 참사가 일어난 후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가간 우리에게 곁을 내어준 가족들의 마음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용기를 잃지 않고 있는 가족들의 곁에서 우리도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등 세 권을 구상한 이유 

백서(白書, white paper)는 원래 정부가 발간하는 보고서를 뜻한다. 영국 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보고서의 표지를 백색으로 했던 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현재 통상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한 종합적 기록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아마도 담당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펼쳐보지 않을 자화자찬 일색의 백서들이 정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한 해에만 못해도 수십 권씩은 발간되고 있을 터였다. 우리는 그런 백서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고 가족들도 동의했다.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솔직한 기록을 통해 지난 활동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그리고 뼈아픈 실패와 안타까운 시행착오까지도 기록에 남겨 백서가 다른 재난참사 피해자들에게 나침반이자 지도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제 우리가 백서에 담고 싶은 내용은 무엇인지, 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발신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뜻을 모아야 할 차례였다. 

일단 당장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해도 10년을 맞아 그동안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을 남기는 일이 꼭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난 시간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활동과 세월호 운동이 빛나는 성취만으로 가득 찬 것도 아니며, 오로지 좌절과 패배의 연속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새로운 10년을 시민들과 다시 함께 시작하자는 일종의 '러브레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를 한 권의 책에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각의 목적에 맞는 두 개의 기록이 필요했다. 통상적인 백서의 형식, 다시 말해 건조한 보고문으로 쓰는 기록물에 더해, 사람들이 조금 더 쉽게 지난 10년을 돌아볼 수 있는 화법과 이야기로 접근한 기록물, 이렇게 두 가지 백서를 구상하게 된 이유다.

여기에 우리는 한 가지의 책을 더 더했다. 언뜻 물음표를 달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번에 꼭 전했으면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10주기를 맞아 무엇이 궁금하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많은 이들은 우리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창비, 2016) 작업 과정에서 만났던 생존학생들과 희생학생 형제자매들의 안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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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에 나선 2학년 학생들 다수가 희생된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의 모습(자료사진). ⓒ 사진공동취재단

 
유가족이면서도 어떨 때는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어야 했고, 어떨 때는 투명 인간이 되어야 했던 형제자매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친구를 보낸 뒤 여전히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때로는 공공연한, 때로는 묵시적인 압박에 시달려야 했던 생존학생들. 이제는 성인이 된 단원고 생존자들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도 10주기를 맞아 꼭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만들어온 서사 속에서 어느 위치, 어느 정도 분량으로 담기기에도 마땅치 않았다.

이러한 고민의 흐름 끝에 세월호 10주기 기록은 세 권으로 나뉘어 시작되었다.

근 2년 동안 100명이 넘는 이들 인터뷰...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붙들고

일단 먼저 공부를 해야 했다. 이 참사와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활동에 대해 우리고 알고 있는 것, 알고 있다고 짐작했지만 미처 다 알지 못한 것, 전혀 알지 못한 것을 찾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만난 이들의 인터뷰 녹취록을 꼼꼼히 살피고 4.16 기억저장소가 발간한 <그날을 말하다>를 비롯한 관련 자료도 다시 봐야 했다. 작가기록단과 가족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건과 꼭 담아야 할 이야기를 조율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몇 차례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확대운영위원회와 워크숍을 하며 퍼즐을 맞추었다. 

근 2년 동안 10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족들은 물론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전, 현직 임원들과 가족들과 형제자매들, 단원고 생존자들, 그리고 4·16 재단, 4.16 연대를 비롯하여 진도 팽목항과 목포에서, 광주에서, 국회와 광화문에서 가족들의 곁을 지켰던 여러 시민들, 전문가들도 포함되었다. 어떤 이들과는 불가피하게 전화 통화를 해야 했지만 어떤 이들과는 수차례 두어 시간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가족들, 시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돌아올 길에서는 어김없이 이 참사와 참사 이후 10년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서사의 실타래인지 실감했다.

그 이야기를 다 담는 것도, 그 이야기에 얽힌 이들을 다 만나는 것도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우리는 누군가의 편향적이거나 일방적인 주장 혹은 기억을 들었고, 우리의 관점에서 잇고 엮어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그 일부를 기록에 남길 수밖에 없다는 아쉬움, 역량의 한계를 실감하기도 했으며, 어떤 부분은 아직 이야기되거나 기록에 남기기에는 10년이란 시간만으로는 모자란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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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30일, 당시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이 조문을 마친 뒤 슬픔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리는 모습. ⓒ 유성호

 
그럼에도 여러 순간 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뿌듯했고, 밝은 면만이 아니라 어두운 그늘까지도 흔쾌히 드러내 보이기 주저함 없었던 가족들, 너무나 소중하지만 어쩌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사려 깊고 신중하게 전해준 시민들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2년여의 작업 결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10주기 공식기록집 <520번의 금요일>과 단원고 생존자 그리고 희생자 형제자매, 그 곁을 지킨 시민의 말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를 10주기에 조금 앞서 출간했다.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백서 <세월호, 10년>(가제)은 세월호참사 10주기 전후의 풍경까지 담아 조금 뒤늦게 발간될 예정이다. 

<520번의 금요일>은 62명의 세월호 가족과 55명의 시민을 총 148회 인터뷰한 자료와 참사 이후의 여러 특별조사위원회 공식 기록 등을 토대로 작성했다.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이제는 20대 후반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참사 당시의 생존자, 형제자매, 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단원고 생존자 9명, 희생자의 형제자매 6명, 20대 시민 연대자 2명, 생존자들이 참여한 단체 등을 인터뷰함으로써 '세월호 청(소)년'이 그들 앞의 재난에 마주 서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록했다.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재난 피해자가 보낸 10년을 다시 추적하여 기록한 한국 사회 전례 없는 시도라는 점에서, 세월호와 함께 보낸 20대들이 여전히 말하기 어려움에도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널리, 그리고 깊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기에서는 먼저 <520번의 금요일>에 담긴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겪은 지난 시간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가운데 반드시 전해졌으면 하는 사건들과 사연들을 모아 열두 갈래로 엮었다. 각 장의 제목과 주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이야기는 '그 섬'에서 시작한다. 선체의 인양이 결정되자 가족들은 세월호 침몰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동거차도 산 중턱에 초소를 설치하고 인양 과정의 감시에 들어간다. 초창기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 천막을 치고 아이들이 떠난 지점을 낮과 밤을 꼬박 지새우며 망원렌즈로 들여다보아야 했던 참담한 곳. 초소를 설치하기 위한 아빠들의 고행과 열악함을 무릅쓰고 감시 활동에 동참했던 엄마들. 하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슬퍼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해방구이기도 했던 그 섬은 이제는 사라졌거나 희미해진 수많은 세월호 기억 장소의 상징일 수도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인양'이다. 바다 밑에 가라앉은 세월호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공간이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한 수색 지점이기도 했다. 2014년 4월부터 그해 11월 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팽목항에서 애타게 아이를 기다렸던 가족들과 그 곁을 지켰던 시민들의 이야기,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의 이야기를 '인양'에 담았다. 또한 세월호 선체는 이 참사의 가장 중요한 증거였다. 3년 만에 세월호가 인양되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뭍으로 올라온 뒤 누워 있던 선체가 바로 서기까지 가족들은 또 어떤 눈물겨운 일들을 했는지도 담겨 있다.
  
'조직'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동시에 이 애도의 공동체가 어떤 역경을 뚫고 자리를 잡아갔으며 나아가 시민들과 함께하려 어떤 놀라운 도전을 했고 마침내 4.16연대와 4·16재단 같은 동료들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이견과 다툼, 상처가 없었다면 그것은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다. '갈등'에서는 배상과 보상이라는 약한 고리를 파고들었던 비열한 권력에 의해 어떤 아픔을 겪어야만 했는지 보여준다. 더불어 그 상처를 보듬으려 어떤 애를 쓰고,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기 위해 또 어떤 애를 쓰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애절하고 지난한 싸움의 기록

'국가'와 '기억'은 그동안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그리고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애절하고 지난한 싸움의 기록이자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가 만든 소중한 성취의 기록이다. 목숨을 구하는 데는 한 없이 무능했던 국가, 반면에 진실을 은폐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데는 너무나 유능했던 국가. 거기에 맞서 가족들과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특별법을 만들고 특별조사기구를 구성한 뒤 진상규명에 나선 것은 한국 재난참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재난참사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재빨리 참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오히려 추모를 악용했던 한국에서 무엇이 온전한 기억과 추모인가를 깨우치기 위해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단원고등학교에서 제도화를 이뤄내기 위한 싸움 또한 너무나 소중한 첫걸음이다.

한편 진실과 기억을 위한 싸움은 법과 제도, 국가권력을 상대로 한 것이기도 했지만 정략적으로 참사를 이용하려 했던 정치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이들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더불어 가까웠던 지인이나 이웃과의 긴장과 다툼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고단한 일이었다.

게으른 사람들은 피해자를 향한 비난에 쉽게 동참했으며 잔인하게 편견과 혐오를 드러냈다. 그 밑바닥에는 무엇이든 돈으로 해결하려 들거나 비용부터 따지고 드는 자본의 논리와 함께 피해자다움이라는 선입견이 강력히 작동했다. '편견'에서는 가족들이 이러한 그릇된 생각과 선입견에 맞서며 피해자다움을 넘어 피해자의 권리를 외치고 다른 재난 피해자들과 손을 맞잡는 과정을 담았다.

가족이라는 양면적인 단어

가족이라는 말은 어떨 때는 참 애틋하기도 하지만 때론 좀 징글맞은 단어다. 또 가족이란 개념은 매우 다층적이면서 뜨거운 주제다. 유가족이라고 하면 대개 희생자의 부모를 떠올리는 한국사회에서 '차이'에서는 유가족의 경계에 서 있는 형제자매들이 자신들의 위치에서 참사를 어떻게 견뎌냈는지, 더불어 당시 생존학생들은 유가족 곁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그렸다.

한편 '가족'에서는 유가족이 아닌, 그럼에도 유가족의 곁을 지키고 함께했던 생존학생 부모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또한 어떤 마음이었으며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애도의 공동체 속에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의 10년은 몸으로 싸운 시간이었다. 진도대교에서, 여의도에서, 청운동과 광화문에서,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의 거리에서 집회와 행진으로 서명으로 시민들과 어깨를 걸고 싸우는 가운데 가족들은 억울하고 애통한 피해자에서 저항하는 시민으로 거듭났다. '각성'은 그 성장의 기록이다.

몸의 싸움은 스스로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분노와 상실감에 지치고 무력감에 빠졌을지도 모를 가족들은 그것에 맞서 자신의 몸을 일으키고 뜨개질과 바느질과 목공으로, 노래와 연극으로, 자원봉사로 시민들 속에 들어갔다. 거기서 시민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다시 싸울 힘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몸짓'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합창'은 4.16합창단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그 주인공은 가족이 아니라 시민이고, 노래가 아니라 연대의 힘이다. 가족들과 시민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르며 함께했다. 그 위대하고 눈부신 인연과 사연들 중 극히 일부만 담을 수밖에 없어 아쉽지만 5.18과 4.16의 만남, 종교인들과 동화작가들의 헌신, 그리고 그저 평범한 어느 부부의 쉽게 믿어지지 않는 연대의 마음이 있었기에 지난 10여 년의 기적이 가능했음을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금요일을 이제 520번째 맞이하게 될 봄. <520번의 금요일>에 담긴 열두 갈래의 이야기는 10주기 이후가 궁금한 이들, 그래서 지난 10여 년간의 여행을 떠나보려는 이들에게 손색없는 안내서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그 여행에서 새로운 질문을 건져 올리는 이들이 있어 또 하나의 기적의 다시 시작이 되길 또한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강곤씨는 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소속입니다. 이 기사는 4.16연대 소식지 '2024년 봄여름호'에도 실렸습니다.

[세트] 520번의 금요일 +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 전3권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지은이), 304낭독회 (엮은이),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기획),
온다프레스, 2024


#세월호 #520번의금요일 #봄을마주하고10년을걸었다 #세월호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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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약칭 4.16연대)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생명이 존중받는 안전사회 건설을 위해 세월호 피해자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단체입니다. 홈페이지 : https://416ac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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