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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후 암울한 한 달, 현장소장을 의심했다

[고향집 다시 짓기] 불안에 잡아먹히기 직전에 나를 구원한 공사

등록 2024.03.27 11:11수정 2024.03.2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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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기자말]
"안녕하세요, 이번 공사를 담당하게 된 현장소장입니다. 공사 현장을 미리 확인하고 싶은데, 내일 가봐도 될까요?"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겨울이 시작된 2023년 12월 첫 주의 토요일 오후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청 홈페이지를 새로고침하며 착공신고가 완료되었는지 확인했지만, 어디에서도 기다리던 소식은 들려오지 않던 차였다.


동생들의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낳고

동생들은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지내야 하는 엄마 걱정으로 따가운 눈총을 거두지 않았고, 급기야 며칠 전에는 '제대로 계약한 것이 맞는지, 혹시 사기라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까지 전했다.

동생들의 의심은 불안이 되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자신 있었던 모든 선택이 잿빛으로 변해버린 토요일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는' 것이 맞다. 눈앞의 풍경마저 색깔을 잃고 잔뜩 가라앉았던 참이라, 기다렸던 전화마저 제대로 '좋은 소식'으로 들리지 않았다. 

'아직 착공신고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무슨 현장소장이라는 거지? 시공사로부터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설마, 나 정말 계약에서 실수라도 한 걸까?'

불안으로 잔뜩 움츠러든 정신은 모든 것을 의심하고 있었고, 처음부터 건축 상담을 진행했던 담당자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다.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알려주며, 공사 담당자가 맞는지 물어보았고, 영원처럼 길었던 찰나를 느끼던 차 답신이 왔다.


"건축주님, 공사에 배정된 현장소장이 맞습니다. 현장에서도 평이 좋은 실력 있는 분이십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한참 후에야 현장소장님과의 대화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전화한 후 담당자는 급하게 현장소장님께 연락을 드려서 나의 이 멍청한 불안을 그대로 전달했던 모양이다. 현장소장님은 내 섣부른 의심에 '이 공사를 해야 하나'를 고민하셨다며, 첫인상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고 웃으셨다.

얼마나 최선을 다해 그날의 의심을 사과해야 했던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럽다. 잘 해결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불안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느꼈던 순간이었다. 매번 '나를 믿자' 하면서 불안에 속지 말기를 외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실패였으니까.

곧바로 현장소장님께 다시 연락을 드렸고, 직접 가 볼 수는 없었지만 엄마께 안내를 부탁드렸다고 전했다. 그리고 현장소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던 12월의 첫째 날 착공신고가 마무리되었다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철거를 마무리한 후 암울한 한 달을 보내고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희망으로 가득 찼어야 하는 그 순간을, 멍청하게 의심으로 소비해 버렸는지 어리석은 내가 아직도 용서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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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첫날의 기록입니다. 현장소장님이 보내주신 첫 번째 사진입니다. 공사 현장을 확인하신 후, 건축물이 앉힐 자리에 파란색 라커로 표시를 해 주셨어요. 사진 보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 하규하

 
마침내! 공사가 시작되었다. 2023년 3월의 봄날 시공사를 선택하며 시작된 공사는 열 번이 넘는 설계 수정, 인테리어 미팅과 가구 미팅까지 거친 후, 드디어 12월 3일의 현장 미팅으로 이어졌다.

계획은 9월 착공이 목표였지만, 세상은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 걸 또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인생은 예측불허라서 삶은 그 의미를 갖는다는, 순정만화의 가르침이 없었다면(<아르미안의 네 딸들> 신일숙), 여기서 또 좌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히도 좌절의 바닥에서 끌어올려 준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현장소장님, 감사합니다!

엄마와 현장 미팅을 마친 후, 곧바로 현장 측량 및 건물이 놓일 위치를 확인하고는, 기초공사가 시작되었다. 첫날의 공사장이 여전히 생생하다. 기다려왔던 날이었지만, 생업의 압박과 35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저녁 즈음 문자가 왔다. 현장소장님이었다.

예전의 집이 철거되고 새 집이 앉힐 자리를 파란색 라커로 표시한 몇 장의 사진들이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나는 이제 더 이상 가족들에게 의심받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 파란색 선 안으로 8개월 넘게 고민했던 우리 가족의 새 집이 올려지게 되겠구나, 하는 수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후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겨울에 철근 콘크리트 공사 괜찮을까?

"12월 13일에 기초 타설 예정입니다. 건축물 현황측량 신청 부탁드립니다. 건축사사무소에 여쭤보시면, 경계측량업체를 알려주실 거예요."

공사가 시작되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다. 집을 짓기로 결심한 이후, 공사에 대해서는 끝없이 상상해왔다고 자부해 왔지만, 직접 보고 만지고 확인하는 세상은 전혀 달랐다. 현장소장님은 결정이 필요하거나, 상의가 필요한 일들에 대해 계속 의견을 물어보셨지만, 반대로 내가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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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현장 방문의 날입니다. 기초공사는 벌써 진행되어 있었고, 단열재가 올라간 기초를 보는 순간부터 완전히 반했답니다. 이날부터 제 눈에는, 건물이 지어진 풍경이 계속 보였어요. 얼마나 행복했다구요! ⓒ 이창희

 
"소장님, 저 멍청한 질문 하나 있어요.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겨울 공사를 하면 안 된다던데, 괜찮을까요?"
"요즘엔 관련 법규가 강화되어서,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현장의 온도가 일정 온도 이하로 계속되면 현장 작업에 제한이 있고요,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면 레미콘이 콘크리트를 공급하지 못합니다. 양생 중에도 영하의 온도가 우려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사람이란 것이 원래부터 간사하다지만,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언제 시작하는지가 가장 큰 걱정이더니, 현장이 열리고 나니 또 다른 것들이 계속 신경 쓰인다. 제일 먼저 신경을 거스른 것은 겨울에 진행하는 철근 콘크리트 공사였다. 예전부터 겨울 공사는 하면 안 된다거나, 영하의 날씨에는 콘크리트 양생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걱정이라며 질문을 했더니 우문에 현답이다. 바로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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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청 건축물 착공신고 현황 겨울에도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 공사가 꽤나 많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겨울공사라고 걱정했더니, 괜찮다며 안심하라고 하시네요. ⓒ 이창희

 
나중에 서산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유사한 규모의 착공신고 건을 확인한 결과도 동일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의 착공이 가장 많은 달은 5월과 9월이었지만, 겨울인 11월부터 2월까지도 꽤나 많은 건수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주의해야 하는 날씨는, 겨울의 추위보다는 여름의 무더위나 장마인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6월과 7월의 공사 건수가 겨울보다 적었다.  

드디어, 공사가 시작되었다. 불안하고 걱정스럽던 10월과 11월의 가시방석은 이제 끝이다. 든든한 현장소장님과 시공사의 팀들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집을 짓기 시작하셨다. 두려움보다 기대가 훨씬 커진 채 12월을 맞이했다.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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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크리스마스 카드도 공사장 풍경! 현장소장님이 보내주신 눈쌓인 풍경으로 올해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신했습니다. 올해 가장 좋은 일도 공사를 시작한 것이었으니까요! 친구가 올해의 인물을 뽑아보라는데, 당당하게 '현장소장님!'을 외쳤으니 얼마나 좋았는지 아시겠죠? ⓒ 하규하

#고향집다시짓기 #착공신고 #현장소장 #철근콘크리트구조 #공사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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