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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법원에서 일하는 파산 과장의 고민

책이 된 회생·파산 이야기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등록 2024.03.25 17:01수정 2024.03.25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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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산수유와 진달래가 앞 다투어 피어날 무렵 머릿속에서 어떤 스토리가 꿈틀거리며 문장으로 태어났다. 불편하고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얼핏 들으면 모순적이면서도 누군가 해야 할 우리 사회의 불편한 이야기. 따뜻한 봄날에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완성된 문장들로 <오마이뉴스>의 문을 두드렸다.

[관련 시리즈 :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 파산 이야기 https://omn.kr/236x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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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배운기 지음. ⓒ 루아크

 
연재를 시작하면서 회생법원 내의 여러 업무 담당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며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민원인들이나 국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회생법원의 뒷모습은 어떨까. 우리들끼리는 어떤 얘기를 하고 무슨 불평불만을 토로할까. 연재를 마무리하며 서울회생법원의 구성원들이 나누는 진솔한 얘기 속으로 들어가 본다.


"여러분, 회생법원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업무마인드가 달라져야 합니다. 재판을 하는 중립적인 사법부의 구성원이 아니라, 경제나 복지담당 공무원의 역할과 자세로 변해야 합니다. 마음속에 불편함이 올라오더라도 우리의 역할이 채무자에게 갱생의 기회를 제공해서 신속하게 경제활동의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도 채무자들 중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잖아요. 느닷없이 뒤통수 맞는 채권자들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면책시켜주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채권자들을 골탕 먹이고 돈을 떼먹는 나쁜 채무자들은 반드시 선별해서 회생파산제도의 혜택을 못 받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회생파산 제도의 원래 취지가 정직하지만 불운한 채무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제도잖아요."

"사건을 조사하다 보면 누가 봐도 명백하게 고의로 대출을 받아 파산 받으려는 증거가 명백한 사건도 있죠. 참 이렇게 불량한 사람들도 있을까 싶다가도 오죽하면 그럴까 하는 안타까움도 드네요. 서면에 기재된 그 행위 자체로 신청인의 선악이나 진정성 여부를 단정하기는 어렵잖아요."

"그리고 이런 사건들도 있어요. 회생파산 신청 직전에 제3자에게 재산을 빼돌리고 자신의 재산을 최소화시키거든요... 물론 나중에 파산관재인이나 관리인 등이 부인권을 행사할 수도 있어서..."

"서울회생법원이 파산면책을 빨리 잘 해준다는 소문에 관할을 바꾸기 위해 편법을 쓴 흔적이 보이는 사건도 있죠, 주로 변호사나 법무사 사무원들의 집 주소나 사무소 등으로 주소를 이전하거나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서울에 출퇴근 한다는 증거를 만드는 만들어 신청하게 만든다는 현실을 보면 채무자들의 상황도 참 열악하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탈법행위를 하겠지만, 대리인들이 이를 권유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가끔씩 채권자들이 전화가 오거든요. 일반회생 신청사건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덜 억울하게 채무자를 불편하게 할 수 있는가를 묻곤 합니다. 이때는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채권자 동의 없이는 일반회생절차가 진행되기 어려우니 편하실 대로 하시라고요."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가 한 권의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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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진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배운기 지음. 루아크 출판. ⓒ 루아크

 
고민은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적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상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노력한 다음 그 능력을 바탕으로 밥벌이 하는 삶을 말할까?" 언뜻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하는 게 우리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전제로 한 과도한 경쟁과 성공 논리가 공동체의 온정을 빼앗아간 지 오래 되었다. 승자독식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공존공생은 헛된 구호가, 패자부활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까닭에 사회의 경쟁 논리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정의가 이제는 재구성되어야 할 때다.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는 그 뜻을 뒤집어보면 인간의 삶 속에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고통이 함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개개인의 삶에서 이 네 가지는 늘 균형을 잃는다. 평범한 개인의 삶은 불행 속에 어쩌다 행복이 존재하는 서사 구조일 것이다.

불행 속에 행복이 존재하는 서사 구조. 그 대표 사례가 바로 연재의 주된 소재거리인 회생·파산제도가 아닐까 싶다. 많은 이들이 이 제도를 통해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계채무자가 경제적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회생파산제도의 진정한 존재 의의다.

회생·파산제도는 단순히 채무를 탕감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한계채무자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회경제적 상황 변화에 예민한 채무자들에게는 사회의 관용에 따른 '디폴트 세팅'이 필요하다. 한계채무자가 자본주의적 삶의 기본값을 다시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선순환 작용이 바로 회생파산제도의 역할이다.

경제적 한계상황에 처한 이들을 실패자라 규정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강한 바람으로 나그네의 옷을 억지로 벗기려 하는 것과 같다. 다정한 손길로 그들을 보듬음으로써 스스로 갱생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생각 끝에 모아진 글들이 이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현장에서 바라본 회생·파산에 관한 고민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던 어느 날. 그 흔적의 몇 꼭지를 보고 어느 출판사 루아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상의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인문과 건축, 노동과 인권 등 진보적 시선을 가지고 자신만의 출판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당찬 분이었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초, 휴가기간 중에 합정동 카페에서 천 대표님을 만나 그 자리에서 바로 합의했다.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로 책을 만들기로. 그런 연유로 금년 2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23개의 기사에 7개 꼭지를 더하여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서울회생법원의 회생·파산 업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발품 팔아 기록했다. 업무 담당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뇌, 채무자들의 고통과 희망, 채권자들의 불만과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참된 정치가 이뤄지고 선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담았다.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참된 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이 문장은 머리보다 가슴에 먼저 와 닿는다. 이때의 정치는 시민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연민의 도구이자 정의의 선언이었다. 모름지기 시민이 국가와 법제도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국가와 법제도가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 명제에 온전한 진실을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는 비정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게 없겠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 브런치스토리에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 현장에서 바라본 회생·파산 업무의 두 얼굴

배운기 (지은이),
루아크, 2024


#불편하지만따뜻한회생파산이야기 #배운기 #루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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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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