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어르신들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어버이날 단상

등록 2024.05.05 16:24수정 2024.05.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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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순회기

오랫동안 자전거와 함께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건강을 챙기자는 의도였지만, 자전거 길에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가 훨씬 건강한 삶을 만들어 준다. 지나는 길에 만나고, 구멍가게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구수하고도 흥미롭다. 아직도 남아 있는 시골의 구멍가게는 동네 사랑방이며 지나는 길손의 쉼터였다. 오래전 과자가 있고, 영화에서나 봄직한 물건들이 지나간 기억을 찾아내 준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전거를 타며 찾아가는 구멍가게는 서너 곳이다. 

지나는 길에 들러 음료도 마시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대부분 여성 어르신이지만 구수하고도 투박한 말솜씨는 발길을 잡기에 충분하다. 오늘도 그냥 지날 수 없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주인은 대장부 타입으로 거침없는 말솜씨에 대화는 밀리지만 언제나 재미있다. 지나는 길에 깜짝 놀랐다. 추운 겨울날, 여성 어르신이 장작을 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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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는 어르신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어디론가 가시고 있다. 어르신은 무슨 생각으로 어느 곳으로 가고 계실까? 어버이 날이 다가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어르신이다. ⓒ Pixabay

 
구멍가게 회담은 진지하다

산더미처럼 나무를 쌓아놓고 장작을 패는 주인장, 남자를 뛰어 넘었던 여장부의 오랜만에 만난 모습은 달랐다. 세월의 잔인함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몸짓으로 얼굴이 핼쑥하다. 몸이 옛날 같지 않아 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온몸이 아파 병원을 가도 마찬가지라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자리를 잡았다. 

옛날 과자와 음료수가 곁들여진 5자 회담, 친구들 넷에 여주인장이다. 아픈 몸을 보전하라며 일거리를 말려보지만, 시골에서 그것도 하지 않으면 뭘 하느냐 한다. 그렇다. 시골에서는 놀이 삼아 짓는 농사요, 더러는 주업으로 삼는다. 대대로 물려받아 배운 것은 농사일 밖에 없으니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라도 일을 해야 한다. 돈도 필요하지만, 가끔 찾아와 시답잖게 생각하는 자식들에게 무어라도 주고 싶어서다.

친구가 나섰다. 허리 치료를 위한 체조를 알려주는 친구, 따라 하는 여주인장이다. 순식간에 구멍가게가 헬스장이 됐다. 구멍가게가 느닷없이 체육관이 된 것인데, 그 순간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가게문이 열렸다. 굽은 허리로 간신이 문턱을 넘어오는 돌멩이 할머니였다. 활짝 웃으시는 얼굴은 예전만 못하다. 돌멩이 할머니, 손주와 손녀를 뒷바라지하는 할머니다.

돌멩이 할머니는 아름다웠다


숨은 사연 속 할머니는 시장을 보러 자전거를 이용하신다. 굽은 허리를 감당할 수 없어 배낭을 메시는데, 배낭에는 큼직한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돌멩이가 굽은 몸을 지탱해 주어 자전거 타기가 수월하다는 할머니, 눈물겨운 사연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 손주 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가 끝이 없다. 과자를 권하자 싫다 하시니, 가게 주인은 비타OO을 좋아하신다 일러준다.

가게 구석에서 찾아낸 비타OO, 할머니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티 없는 밝은 모습이 한없이 밝아 보인다. 허리가 불편해도 손주들을 돌보며, 이웃으로 마실을 오신 것이다. 말씀이 하고 싶어 찾아오셨는데, 예기치 않은 객들에게 비타OO을 얻어마시며 나누는 이야기에 신이 났다. 손주와 손녀를 돌보는 할머니의 삶, 고단해도 그곳엔 사람 사는 맛과 멋이 있다. 

손주를 돌보는 눈물겨운 할머니가 사람 냄새를 풍겨준다. 고단해도 티 없이 해맑은 할머니의 애잔한 삶을 뒤로하고 나선 자전거 길, 다음 동네 구판장 할머니가 궁금하다. 마을 회관 한편에 가게를 차린 구멍가게다. 환갑을 넘긴 여주인장은 구수한 사투리로 웃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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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가정의 달인 5월에 들어 꽃가게에는 많은 꽃들이 있다. 어버이 날에 필요한 카네이션, 그 속에는 어떤 뜻이 숨어 있을까? 꽃을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혹시, 일년간의 의무감에 꽃을 사며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이 오가는 5월이다. ⓒ Pixabay

 
세상 자식들은 분발해야 한다

언젠가 찾았더니 세상 아들놈들은 다 쓸모가 없단다. 비가 와도 전화 한 통 화가 없고, 집에 오라니 아내와 상의해 보겠다는 말에 마음이 상했다는 주인장이다. 고개를 넘고 넘어 찾아간 구멍가게는 문이 닫혔다. 가끔 몸이 불편해 문을 닫곤 했는데, 쾌유를 빌며 달려가는 자전거길에 단골 식당을 찾았다. 동네 맛집으로 소문나 늘 사람이 붐비는 곳, 멋진 모자로 멋을 부린 할아버지가 서빙 그리고 할머니가 주방일을 하신다.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하시던 주인장이 무덤덤하다. 일이 많아 그러려니 하며 된장찌개를 주문했다.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기다리는 사이, 주인장 내외의 의견 충돌이 났다. 할머니가 동태찌개 끓일 것을 어디에 놨느냐고 한다. 어르신은 말이 없다. 잠시 후, 끓이라는 동태찌개를 냉장고 위에 놓아뒀다며 화를 내신다. 세월은 모든 것을 잊게 하고, 방금 전 일도 가물가물하다. 갑자기 식당 안이 싸늘해진다. 한 참 후에 된장찌개가 나왔지만 오늘은 된장 맛이 전과 같지 않다. 

어버이날이 있어야 하느냐 묻는다

헐떡이며 페달을 밟으며 늙어가는 청춘들은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아픈 몸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 대장부며, 손주를 돌보며 살아가시는 할머니는 자전거를 타기 위해 돌멩이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다니신다. 어디가 불편한지 가게 문을 닫아버린 주인이었다. 노년의 몸을 이끌고 식당을 운영하시는 할머니 부부, 고단한 몸은 모든 것을 허락지 않는다. 

근력도 모자라고 기억력도 아물 거린다. 남은 세월을 꾸리려 가게문을 열고 또 식당 문을 열어야 했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이 마음을 알고 있을까? 공평한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간다는 것도 알고 있을까? 자동차 뒷좌석에 실리는 시답지 않은 참기름과 고춧가루에 내 부모 피와 땀이 얼룩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알아주면 좋고, 내 일이기에 하고 있음은 한참 후에나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할머니들이 해준 삶의 이야기가 떠 오른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뭐가 문제냐는 말, 어버이날이 있어야만 하느냐 하는 말. 가정의 달이 뭐가 필요하고, 어버이날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는 말. 평소에 잘해야지 대단한 날이라고 수선 떠는 것은 못마땅하단다. 

그렇다. 명절에나 찾아오고 어버이날의 어수선함은 이웃과의 식사만도 못하다. 허름해도 편안한 밥 한술이 행복하고, 난리 속에 먹는 것은 오로지 밥이다. 어버이날도 없으면 그것조차 없을까 두렵지만, 내 부모가 드시는 약의 종류는 알고 있을까? 참기름 한 방울 속엔 내 부모의 피와 한이 담겨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으니 고희의 늙은 청춘도 할 말은 없다. 서둘러 된장찌개를 먹고 문을 나섰다. 한껏 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도 주인장의 표정은 변함이 없다.
#어버이날 #5월 #가정의달 #할머니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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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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