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의 불편함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과일 깎기부터 지하철 개찰구까지... 오른손에 치우친 우리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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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yellow2989)등록 2013.09.06 16:25
A씨는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을 준비했다. A씨에게 그의 어머니는 직접 과일을 깎아보라고 하신다. A씨는 왼손잡이라 평소처럼 과도를 왼손에 쥐고 과일을 깎으려 했다. 그러나 과일 깎기가 쉽지 않다. 왼손에 잡힌 칼의 날은 아래쪽에 있었고 과일 껍질과 밀착하지 못해 엇나가기 일쑤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왼손에 쥐어진 칼을 껍질과 과육을 분리하지 못했다. 시중에 나온 식칼과 과도는 대부분 오른손잡이가 쓰기에 편리하게 제작된 것이라 종종 이런 일이 있곤 한다.

지하철 개찰구는 오른손잡이들에게 편하도록 제작되었다. 교통카드인식기가 오른쪽에 있어 왼손잡이들에겐 불편함이 따른다. ⓒ 박윤정


A씨는 오늘 하루가 굉장히 고됐다. 아침 등굣길부터 왼손잡이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을 겪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는 것도 한차례의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했다. 왼손에 지갑을 쥐고 오른쪽에 있는 카드인식기에 갖다 대려니 왼팔을 오른쪽으로 쭉 뻗어야 하거나 오른손에 다시 지갑을 바꿔 쥐어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의실 책상과 의자도 A씨를 괴롭힌다. 각종 기자재와 시설물을 현대화한다고 해놓고선 'ㄱ'자의 책상과 의자가 연결된 것이 즐비했다. 이 책상은 오른팔을 올릴 수 있는 팔걸이가 의자에 연결되어 있다. 오른손잡이들이야 아무렇지 않게 그 책상에서 필기를 할 수 있지만 A씨는 그렇지 않았다. 필기를 하려면 왼팔이 공중에 붕 떠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결국 옆에 있는 책상을 끌어다 왼팔을 받치고 글을 썼다.

이처럼 책상과 의자가 붙여져 있는 경우, 왼손잡이에게 오른팔걸이는 무용지물인데다 불편함이 있다. ⓒ 박윤정


불편했던 3시간짜리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간 A씨. 양변기에서 용변을 보고 물을 내리려는데 여기서도 오른손잡이만을 위한 편의가 존재한다. 양변기의 물 내리는 레버가 오른쪽에만 있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왼손을 쓰려던 A씨는 다시 오른손으로 고쳐 변기 물을 내렸다.

A씨처럼 일상생활에서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왼손잡이는' 약 11%정도 된다. 10명 중 1명꼴로 왼손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른손잡이에게만 맞춰진 환경과 시설물에 늘 불편함을 느낀다.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편의에 맞추면 되지'라는 생각은 오른손잡이의 생각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A씨의 사례를 포함해 오른손잡이에게 '맞춤'으로 제작되다시피 한 가위는 물론이고 PC방의 컴퓨터 마우스도 모두 오른쪽이 비치되어 있다.

왼손잡이가 PC방에서 게임을 하려면 준비해야할 것이 있다. 우선 마우스를 왼쪽으로 옮긴 후 컴퓨터 제어판 마우스 설정을 '왼손'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게임에 접속하면 오른손잡이에 맞게 설정된 게임의 환경설정도 고쳐야 한다. 오른손에 마우스를 쥐는 대다수를 생각해 왼손의 방향 키보드는 'a, s, d, w'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왼손잡이가 오른손잡이 게임 설정에 맞춰 게임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이들은 팔을 서로 엇갈리게 해야 게임을 할 수 있다.

왼손잡이라면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왼손 쓰지 말라'며 혼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왼손잡이라면 어릴 때 어른들로부터 '왼손 쓰지 말라'며 혼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왼손잡이일수록 도둑질을 많이 한다거나 왼손잡이의 사회 부적응 현상이 많다는 연구 결과도 없는데 말이다. 이것은 모두가 오른손을 쓰는데 왼손을 쓰는 것이 보기 좋지 않고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왼손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 우리의 대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는데, 왼손을 쓰는 사람들은 우뇌가 더 발달돼 있다. 우뇌는 미술, 음악, 체육 등과 같은 예술, 동작성 지능과 관련이 있다. 왼손잡이는 우뇌를 많이 사용하므로 이 분야에 특출한 사람은 왼손잡이가 더 많다는 통계도 있다. 그 예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등의 예술가를 들 수 있다.

또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왼손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운동을 할 때 말이다. 농구시합을 할 때 왼손잡이들은 왼손으로 패스를 하거나 골을 넣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상대를 속일 수 있어 승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야구선수들 중에서도 왼손잡이가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타자들은 대개 좌타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좌타석이 1루와 가깝고 우투수가 많기에 날아오는 공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투수가 된다면 이런 타자들을 만나면 더 까다롭게 승부할 수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로 진출해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괴물투수 류현진'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중 누가 옳고 그르냐 혹은 누가 더 낫냐고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오른손은 오른손 나름의 장점이 있고 왼손은 왼손 나름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오른손잡이가 많다고 해서 오른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잘못된 편견이다. 다수의 오른손잡이에 의해 형성된 오른손 문화가 왼손잡이들의 자유를 막고 있을지도 모른다. 89%의 편의를 위해 11%를 강제로 바꾸려는 사회보다 11%를 좀 더 배려하면 100%가 편리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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