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1학년, 어린 지구인들의 좌충우돌 교실 이야기

〔서평〕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등록 2018.05.25 14:14수정 2018.05.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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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 표지 초등 1학년, 어린 지구인의 좌충우돌 수업 이야기 ⓒ 안준철


놀랍다. 교실 수업 풍경이 이렇게 아름답고 생동감이 넘칠 수가 있을까?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유럽 교육선진국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초등 1학년 이야기다.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통해 숨은 자음 찾기를 하는 시간이다.

개구리
         한하운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라

선생님은 칠판에 시를 적고난 뒤, 한하운 시인이 열일곱 되던 해 나병(한센병)에 걸린 이야기며, 공부도 포기하고 산에 들어가 있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일본에 가서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며, 그러다가 다시 병이 나타나 병을 고치러 소록도까지 걸어갔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병을 옮기기 때문에 기차를 탈 수가 없어서 손가락이랑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무릎을 절뚝거리면서 뜨거운 땡볕 길을 걸어서 갔다는 사실까지 들려준 뒤에 이렇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개구리 소리를 듣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릴 적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익혔던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를 떠올렸어요."

그런 다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화다.  

"시인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거죠?"
"엄마한데 가면 안 돼요?"
"그때쯤 시인의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고 없었어요."
"시인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어요?"
"혼자 가야했어요. 병을 고치기 위해서."
"개구리가 시인을 보고 그기 가, 그기 가 했으니까."
"무슨 뜻이야?"
"그기 가면 괜찮아, 이렇게요."
"하하, 그렇구나. 개구리가 시인한데 힘내라. 괜찮아.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한하운 시인이 아이의 말을 들었다면 무덤에서 배꼽을 잡고 웃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아이가 한하운의 시 '개구리'를 따뜻한 응원가로 풀이한 것은 놀랍지 않은가. 그것뿐이 아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시 안에 제목이 들어 있다는 말을 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또 한 번 놀라운 발견을 한다.

"찾았어요. 개구리."
"나도 나도."
"선생님 와 봐요. 좀 봐요."

아이들이 시에서 '개구리'라는 제목을 찾은 것으로 알고 달려간 교사에게 아이들은 자음 ㄱ과 ㄹ이 '개구리'라는 시 제목에 숨어 있노라고 자신이 넘치는 얼굴로 소리친다. 그리고는 개구리 떼처럼 교실을 뛰어다닌다. 놀랍고 생생한 아름다운 교실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수업 장면을 보자. 이번에는 <돌매미>라는 시다.

돌매미 
         박명호

비 오고 매미가 운다.
이얼지 이얼지 이얼지
이얼찌끽 이이이이이이
찌징찌징 쫍쫍쫍쫍

교사는 소리 내어 시를 읽어준다. 그리고 한 줄씩 바꿔서 읽고 아이들은 모두 읽었다. 세 번을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시는 어때요?"
"소리가 많아요."
"글자가 많이 없어서 좋아요."
"이이이이이이는 점점 크게 읽어야 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이이이이이이는 나 여기 있어, 하는 거고, 쫍쫍쫍쫍은 수액을 먹느라 바빠서 작게 해요."
"코를 움찔거리면서 읽으면 재미있어요."

아동문학 전공자이기도 한 최은경 교사는 매일 같이 수업일기를 쓴다. 수업 중에 아이들이 하는 말을 책에 연필로 급히 적기도 한다. 시인이 시골 어머니의 입말을 받아 적는 것과 그 이유가 크게 다르지 않다. 살아 있는 언어는 순간순간의 삶과 일상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수업은 선생님이 짜지만 그날 수업의 주인공은 좌충우돌하면서도 언어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철부지 아이들이다.    

최은경의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교육공동체 벗)에는 '초등학교 1학년, 은경샘의 교실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최 교사의 교실 이야기는 시골 학교나 작은 학교와 같이 조금은 '특별한' 환경에서 겪은 일이 아니다. 서른 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도시 속의 일반적인 학교 환경에서 실천한 기록이다. 그만큼 책 속에 담아낸 교육철학과 방법들을 눈여겨볼 수 있다. 이 책의 특징이요 미덕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책 제목을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라고 했을까?

최은경 선생님은 아이들을 반짝이라고 부른다. 수업 시간에 두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을 상상하면 되겠다. 처음부터 그랬을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 선생님은 반짝이들과 3월 한 달을 지낸다. 말도 안 통하고, 하고 싶은 건 얼마나 많은지, 툭하면 물이랑 우유를 바닥에 쏟아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우주선을 접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와글와글 외계어로 떠드는 아이들이 조용할 때가 딱 한 번 있었다. 이야기를 들려줄 때였다. 지구 말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을 똑 바로 보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은 너무 좋아서 밤낮으로 재미난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가 들어 있는 책을 들고 학교로 달려갔다.  

옛이야기의 힘

'아동 학대 예방'에 대하여 공부하는 날이다. '아동 학대' 중에서도 '버려진 아이들' 이야기는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 왔다. 최 교사는 학년 선생님들과 아동 학대 예방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의논한다. 초등 교육용으로 배부된 안전교육 동영상에는 적나라하고 무서운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친숙한 옛이야기 그림책 <해와 달이 된 오누이>로 수업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제일 재미있어 한 대목은 바로 호랑이에게 도망치려고 꾀를 낸 장면이다.

"엄마, 엄마, 똥 마려워."
"그냥, 방에다 눠."
"방에다 누면 똥 냄새 나잖아."
"그럼 마루에다 눠."
"마루에다 누면 방에서 나가다 밟잖아."
"그럼 댓돌 위에다 눠."
"댓돌 위에 누면 신발에 똥이 묻잖아."
"그럼 마당에다 눠."
"마당에다 누면 집이 더러워지잖아."
"그럼 뒷간에 가서 눠."
오누이는 뒷간에 가는 척하면서
살그머니 뒤뜰로 돌아가
우물 옆에 있는 감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갔어.

여기까지 읽고 잠깐 숨을 돌리자, 한 아이가 머리에 전구라도 켜진 듯 크게 소리친다.
"우와, 호랑이 몰래 도망쳤다."
"꾀쟁이예요."

이야기책을 좀 더 읽어준 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넌지시 묻는다.

"제일 재미난 부분이 어디예요?"
"호랑이 속이는데요."
"여러분들은 호랑이처럼 무서운 걸 만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꾀를 써야죠."
"어떻게?"
"저∼더우니까 밖에 나갔다 올게요, 하고 도망쳐요."
"아니, 배가 아프다고 똥눠야겠다고 해요."
"음∼학교에 준비물 가지러 간다고 하고 막 달려요."
"태권도 관장님한데 전화해요."
"몰래 방에 들어갔다가 안심 알리며 폭탄을 가지고 호랑이랑 대결해요."
"자기는 자기 자신이 지켜야 해요. 오누이처럼."

최은경의 <지구인이 되는 중입니다>는 초등 교사의 미시적인 교실 기록이다. 초등 1학년, 아이들은 물론, 교사도 부모도 낯설고 힘들 수밖에 없는 예민한 시기. 돌봄과 학습이 뒤섞여 교실 공간은 낯선 외계인들의 집합소 같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의 힘을 빌어 성장의 과정을 통과해 가는 교사와 아이들 일상을 담았다. 물론 그 일상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때가 더 많다.

느린 아이

아침부터 툴툴거리던 원이가 기어코 화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둘러엎고 영이 책을 찢었다.
자그마한 몸집에서 어떻게 그런 과한 행동이 나오는지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말싸움을 하던 영이도 원이 책가방은 쓰레기통에 던지고 괴성을 지르며 발을 굴렀다.

'아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

최 교사는 원이 엄마와 상담을 한다. 이미 여러 번째다. 원이 엄마는 지난 번 상담 때 했던 말을 반복한다. 너무 일찍 결혼했고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라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놀이방과 유아원 그리고 학원에 아이를 맡겼다고 했다. 다섯 살이 되던 때,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듣고 밥도 안 먹어서 혼을 냈는데 그 뒤로 더 눈치를 보게 되었다고 했다. 유아원에서 벌선 날은 오줌을 쌌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이 엄마는 지금까지 아이에게 책 한 권을 읽어줄 생각을 못했다는 말을 한다. 1학년에 되면서 선생님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가져와 동생에게 읽어주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고도 했다.

사실 원이는 글자를 읽지 못한다. 자음자와 모음자를 구분하고 낱자 몇 개를 읽을 정도다. 그렇지만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보고 지어낸 이야기를 곧잘 하곤 했다. 최 교사는 그날의 교단일기를 이렇게 갈무리한다. 

"1학년이 되었지만 초등학생 되기가 생각보다 어려운 아이들이 있다. 또래보다 조금 느린 성장의 시간을 건너가는 아이들. 하지만 포기하기엔 이르다. 지금 아주 큰 문제로 보이는 행동들이 2학년이 되면 자연스럽게 바로 잡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좀 더 기다려 주고 인정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규칙과 순서 정하기

"내가 학교 일등 왔어."
"바둑판은 내가 일등으로 찜했어."
"급식 내가 일등 먹었거든."
"받아쓰기 놀이 백 점 받았어."

아이들은 툭하면 "일등", "백점"이라는 말을 외친다. 숨은 그림과 낱말 찾기 놀이를 하는데도 서로 일등으로 마쳤다고 해서 말싸움이 났다. 누군가 일등이라고 말하는 순간 화를 내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왜 그럴까? 물론 최 교사 반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든 순간에 자기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하는 아이들. 모든 것은 저절로 생기는 법이 없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

"우리 아빠는 내가 일등해야 한다고 말해요."
"학습지 일등 풀면 스티커 주는데 삼등해서 못 받았어요. 

남보다 먼저 하지 못한 아이들 대부분이 실패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일등만 상품을 주고 백 점을 맞아야 선물을 사 주는 어른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염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방이다. 이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 최 교사는 그림책 주인공 멍멍이도 아이들과 꼭 닮았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경주에서 늘 일등을 한 멍멍이 차에도 1이란 숫자가 그려져 있다. 늘 일등만 하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코끼리 친구 메기에게 일등을 빼앗긴다. '내가 어떻게 질 수 있지?' 생각하며 밤잠을 설친다.

다음 날 다시 자동차 경기에 나간 멍멍이는 친구와 인사도 안 하고 말도 않고 출발했다. 그리고 일등으로 달리는데 그 앞으로 아기 새 다섯 마리가 지나갔다. 결국 꼬마 멍멍이는 일등을 포기하고 멈춰 서서 아기 새들을 차에 싣고 천천히 달려 꼴찌로 도착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꼬마 멍멍이를 향해 소리치며 폭죽을 터트린다.

"진짜 일등은 너야."

최 교사는 그림책을 다 읽어주고 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꼬마 멍멍이는 어떤 인물인가요?"
"멍멍이는 일등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아기 새를 구해 주고 꼴찌를 했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네가 일등이야 했구나."
"일등을 포기했지만 일등이란 칭찬을 받았어요."
"여러분이 멍멍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세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이들의 내면에 어떤 일이 생길까? 개인차가 있긴 하겠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이야기를 듣기 전과 조금은 다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교육의 힘이 아닐까.

이 책을 초등학교 교사뿐 아니라 모든 교사와 학부모와 교육정책자들이 함께 읽기를 바란다. 초등학교에서 애써서 잘 가르쳐놓은 덕에 아이들의 마음 판에 아로새겨진 우정과 환대의 정신을 끝까지 잘 갈무리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성적만능의 그릇된 교육 풍토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개인교사의 노력만으로는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책의 주인공들인 여덟 살 반짝이들도 나름대로는 성장의 아픔을 감내하고 있을 것이다. 최 교사의 교단일기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부족한 글을 마칠까 한다.

'태어난 지 이제 일곱 해밖에 되지 않는 어린 사람들이 아닌가.'
그러니 틀려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야 한다.
'내일은 더 자라겠지.'
'또 내일은 더 재미난 교실이 되겠지.'
저녁엔 그렇게 기도하며 108배를 했다.
1학년 아이들은 내게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내일 학교 가면 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예상되지 않지만 기대가 되는 하루다.
'그래도 괜찮아. 힘내. 잘 하고 있어.'
여덟 살 반짝이들과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공동체 벗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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