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페인, <조국의 법고전 산책> 속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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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은 또 이런 귀한 말씀을 남겼더군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헌법과 국가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세상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의 빈민은 행복하고 그들에게 무지와 불행이 없으며 감옥에 죄수가 없고 거리에는 거지가 없으며 노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고 세금이 과중하지 않으며 우리는 세계의 행복과 친구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세계가 우리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렇다.' 너무나 멋진 세상, 따뜻한 사회, 이상적인 국가가 아니던가요. 부디 페인이 꿈꾸었던 세상이 몽상이 아니었기를, 힘들지만 꿋꿋하게 믿어볼 겁니다.
한결 넉넉해진 마음으로 예링의 서재 가까이 다가가 보았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날을 세운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한편 예링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인 러시아 황태자가 예링을 칭송하기를 '법학의 불을 인류에게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라고 했다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비유, 감동적인 비유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드디어 산책을 마쳤습니다.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시작된 걸음이었지요. 그런데 뭔가 좀 헛헛한 기분이 들어 다시, 이번엔 뒷짐을 지고 두리번거리며 걸어보았답니다. 그러다 <캄비세스 왕의 심판>이란 그림을 가까이서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부패한 판사 '시삼네스'의 살가죽을 벗기도록 판결을 한 상황에서 그 행위를 적나라하게 표현해놓은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지요. 법을 해석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가 저지른 불법행위는 다른 어떤 일반인들보다도 더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한다는 신랄한 의지의 발로였겠지요.
지금의 정치 상황이 자꾸만 떠올라 못내 씁쓸했지요. 상상을 해봅니다. 용산을 비롯한 대검찰청 및 산하기관 어디쯤 권력자들이 드나들며 볼 수밖에 없는 그 위치에 이 <캄비세스 왕의 심판>을 걸어둔 풍경을 말이지요. 검찰의 '고장 난 저울' 대신에 말입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유유히 걸어봅니다. 어느새 플라톤의 글 마당에 당도하였고 그분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조우하게 되었지요. 다만 움찔했던 것은 오직 소크라테스의 전언으로만 알았던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씀이 오랫동안 잘못 해석이 된 채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어요.
소크라테스의 운명이 결정될 당시 아테네의 '민주정'에 대해 저자는 숙의민주주의의 필요성과 대중민주주의의 한계성을 말해주는 한 단면이라고 표명하셨더라고요. 진정 합리적인 민주주의의 정립과 실천은 어려운 과제인 것 같습니다.
'시민 불복종'은 신성한 의무
이제 아름다운 숲길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까지 왔으니까요. 안티고네는 고대 희곡의 주인공으로서 비록 가상의 인물이긴 하지만 문헌상 확인되는 최초의 '시민불복종자'라 하더라고요.
그녀는 반역자로 죽음을 맞게 된 오빠의 시체 처분을 두고 '인간의 법'보다는 '신의 법'을 따른다는 의지로 왕의 명령에 불복종을 하게 되었고 <시민불복종>,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 역시 노예제를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함으로써 저항권을 실천하였지요.
이처럼 시민불복종은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함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의식'이 근간에 깔려있음을 알 수가 있었어요. 간디 역시도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의무다. 국가가 무법적이거나 부패해졌을 때 시민 불복종은 신성한 의무가 된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같은 맥락으로 '정부의 폭정이나 무능이 극에 달해 견딜 수 없을 때 거기에 충성하길 거부하고 저항하는 권리' 즉 저항권에 대한 정의를 여러 번 곱새기면서 내 안에 솟구치는 혁명적 거친 숨결들에 집중하고 또 집중을 해 봅니다.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칸트에까지 왔습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을 거론했지만 저의 경우는 회의감부터 먼저 들더라고요.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니까요. 인간은 인간을 벗어난 인간일 수 없기에 인간으로서 닿을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할 것이며 그중 한 부분이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영원한 평화라고 단연코 생각하거든요.
마침 저자께서는 미얀마 사태에서 보아온 것처럼 국제관계 역시 힘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라며 단호한 지적을 하셨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상태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시나브로 선지자들의 빛나는 정신 세계를 고취해보았네요. '굴종으로 얻은 평화 대신 위험한 자유를 택한 수많은 선지자들의 분투와 희생 덕분에 우리의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그 덕에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라는 저자의 말로 저의 모든 소회를 대신하려 합니다.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고전이지만 누구도 잘 읽지 않는 고전'을, 더구나 '법고전'을 보다 친절하고 흥미롭게 풀어주신 저자에게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은 우리의 조국이고 우리가 주인입니다.
조국의 법고전 산책 - 열다섯 권의 고전, 그 사상가들을 만나다
조국 (지은이), 오마이북(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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