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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1]

 

1.

어디가든 꼭 살아있으라는 기원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걸 의미했다. 그릇을 돌려주러 왔던 아미라 어머니는 말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자 표정이 굳어졌다.

 

- 어디 가?

- 라말라에 일자리가 생겼어요.

 

잘됐네. 그렇지만 표정은 그대로였다. 며칠 전만 해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 하며 서로의 처지를 동정했는데. 그렇게 빨리 일자리가 생겼을 리 없다는 태도였다.

 

반복된 봉쇄와 지속적인 파괴로 두 집 중 한 집이 실업상태다. 남아 있던 일자리들조차 사라진지 오래였다.

 

일자리가 생긴다 해도 여자에게 돌아올 것은 없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세간들을 팔아 연명하거나, 부정기적으로 배급되는 식량에 의존하여 목숨을 부지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전부였다.

 

용기 있는 기자들이 예닌의 학살극을 폭로하지 않았다면, 저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봉쇄를 계속했을 것인가. 끔찍했다.

 

예닌난민촌을 공격하던 이스라엘 군인들이 건물에 설치된 부비트랩으로 20여 명이 사상되었을 때였다. 보복에 나선 전투기와 탱크, 불도저가 난민촌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반드시 열 배, 백 배로 보복해. 이스라엘 군 대변인은 복수심에 불타는 목소리로, 수백 명의 주민들을 죽였다고 자랑했다. 그렇지만 곧이어 250명 정도밖에 안 죽였다고 축소 번복했다. 그럼에도 국제적 비난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50명 정도를 죽였다고 다시 말을 바꾸었다. 물론, 대부분 이스라엘 군에 발포한 무장 세력이었다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수백 명의 주민들이 피살되고 수천 명이 체포되었으며, 수십 명의 민간인들은 체포된 즉시 처형되었다. 그렇지만 저들은 봉쇄조치를 푼 지 며칠 만에 다시 예닌을 침공하여 더 많은 가옥과 건물들을 파괴했고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공격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금 그곳에는 다시 통행금지가 내려졌다. 

 

- 이모부가 일자리를 구해주었어요. 방송국 보조 일예요.

- 그러면 정말 다행이고. 

 

식탁 위에 빈 그릇을 내려놓는 아미라 어머니의 손길이 불안해보였다. 그 안에는 이모가 만들어 보낸 양고기탄두리가 담겨 있었다. 지난주 엄마의 40일 추모의례 때 많은 도움을 주어 고맙다는 사례였다.

 

그녀 남편은 가택수색이 있던 날 밤 군인들에게 끌려간 후 아직도 생사가 불명했다. 집 옆 벽에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후세인 오마르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는 이유였다.

 

사피나보다 다섯 살 많은 그녀에게는 아미라까지 일곱 명의 자식이 있다. 지금껏 아홉 식구가 굶지 않고 버티는 것은 사피나가 연결시켜 준 나블루스 와크프[waqf-종교재단]의 정기적인 식량 배급 때문이었다. 서로 나누고 사는 것은 무슬림의 당연한 의무였다.

 

- 곧 돌아올 거지? 

 

현관문을 나서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사피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떻게 대답하든 믿지 않을 것이다.

 

어디가든 꼭 살아있어야 해. 아줌마는 혼잣말처럼 내뱉은 후 빠른 걸음으로 돌아갔다. 그 말은 남편을 향한 기원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피나는 그녀가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문을 닫지 않았다.

 

가능한 조용히 떠나고 싶었다. 감시하는 밀정들 때문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또 한사람이 죽었다는 의미였다. 남은 자들은 그만큼 희망이 줄었다고 느낀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두 달이 가까워오지만 아직도 실감나지 않았다. 문을 닫고 돌아서면 엄마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올 것도 같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된다.

 

사촌여동생 리요나는 결국 프랑스로 출발하지 못했다. 그 자리는 아메드가 아니라면 사피나의 몫이었다고, 이모가 선언했을 때였다.

 

사촌여동생의 눈에 가득했던 좌절어린 절망을 보며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새로운 인생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부풀었던 스물한 살 처녀의 희망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존경하는 알 파와즈 선생의 따님과 결혼하고 싶습니다. 남편 수바흐가 중매쟁이와 함께 왔을 때, 사피나는 스물한 살이었다. 결혼 당사자가 프러포즈를 위해 직접 신부 집을 방문하는 것은 이슬람전통에 비추어 파격이었다. 아빠는 굳은 표정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이렇게 찾아오는 것은 무례야. 그들이 돌아간 후 아빠가 엄마에게 했던 말은 그 한마디였다.

 

그들은 오랜 시간동안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었던 모든 구습은 바뀌어야 한다고, 점령 현실을 극복하는데 무슨 힘이 되었느냐고 열변을 토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힘이 넘쳤다. 따라온 중매쟁이의 차분한 설명도 간간이 들렸다.

 

남자는, 그래서 결례를 무릅쓰고 직접 찾아왔노라고 했다.

 

아빠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조그맣게 말해도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빠는 듣기만 했을 뿐이다. 저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걸까. 부엌 벽에 몸을 기댄 채 사피나는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중매쟁이는 이모부가 아니었다. 아빠와도 잘 아는, 남편의 대학 지도교수였다. 남편은 이모부에게 중매를 부탁했으나 거절당했노라고, 결혼식 일주일 전에 털어놓았다. 딸에 대한 아빠의 애정으로 보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거절 이유였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건 아빠를 모르고 한 말이다. 

 

결혼식 전날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사랑하겠다고 말했던,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결코 잊지 못할 말들을 들었을 때, 뼈 속까지 저릿한 흥분에 얼마나 가슴 뛰었던가. 첫날밤의 아스라한 고통의 단꿈을 함께 하지 못했어도 그는 유일한 남편이고, 마지막 사랑이 될 것이다.

 

이모, 그만 하세요. 일주일 전이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참석한 엄마의 추모의례가 끝난 날 저녁이었다. 프랑스에 가지 않겠다고, 예언자의 이름을 걸고 마지막으로 다짐했을 때였다. 이모는 화를 억누를 수 없어 붉게 상기된 얼굴로 노려보았다.

 

-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네 어미가 다시 살아온 모양이구나. 나보고 모든 뒷감당을 다 하라는 거냐? 

 

행사의 뒷마무리로,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마친 후였다. 커피를 들고 식탁에 앉은 이모는 거실의 외삼촌들 앞에서 다시 한 번 다짐 받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 오빠들도 뭐라고 한마디 해 봐요!

 

누구도 끼어들 권리가 없었다. 행사의 모든 비용을 지불했고, 제례에 올릴 양들까지 직접 장만했다고 해서 엄마가 용서하리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 언니는 좋겠수, 똑 닮은 딸을 가졌으니. 

 

이모는, 엄마 아빠가 함께 찍은 식탁 위 벽의 액자 속 사진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사피나는, 개수대 앞에서 우물쭈물하며 귓바퀴를 뒤로 젖히고 있는 리요나의 뒷모습이 안쓰러웠다.

 

아빠 딸이기도 해요. 단호한 사피나의 태도에 이모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물러설 이모가 아니었다.

 

다음 달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어. 이제 어쩌면 좋아? 어제 오전 리요나가 탄두리와 약간의 음식을 가져왔을 때, 생기발랄했던 대학생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넋이 빠진 채 배낭을 내려놓은 후에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신랑은 사랑고백을 했다던 그 남자가 아닌 것도 분명했다. 그랬다면 이렇게까지 낙담한 모습으로 왔을 리가 없다. 프랑스에 갈 수 없게 된다면 마음 아프겠지만, 주어진 운명을 개척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다른 이의 슬프고 아린 경험에 귀 기울이는 자에게 복이 있기를.

 

 

2.

어릴 적 죽음은 옛날이야기의 결말 부분이었고, 자러 갈 시간이 되었다는 암시였다. 전설은 할아버지가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계셨던 할머니는, 신과 대면하기 위한 마지막 절차라며,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죽음은 현실이 아니었다. 비극적 결말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빠는 당신을 위해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죽음조차 온전히 당신 것이 아니었다. 아빠의 장례 직후 유품들을 정리하며 그것을 깨달았다. 낡은 청진기 두 개, 수 십 권의 책들, 세 켤레의 구두, 가방 하나 분량도 안 되는 옷가지들이 전부였다.

 

아빠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었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더더욱 될 수 없었다. 남겨진 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죄의식.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독립에 대한 갈망.

 

아빠는 손목시계조차 사치스럽다며, 차지 않았다. 왜 그걸 몰랐던 것일까, 어째서 아빠는 당신 것을 갖지 않았을까. 너무나 오래되고 자연스러워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다.

 

어젯밤 마지막으로 서랍장을 열었을 때 왈칵 눈물이 났다. 아빠의 왕진용 가죽가방을 보는 순간, 엄마가 너무 그리웠다.

 

장례 다음날이었다. 난장판이 된 집을 정리하면서 못질되어 있던 서랍장을 열었다. 생전에 엄마가 손대는 것조차 날카롭게 반응했던 상처뿐인 성궤. 그곳에 남은 것은 죽은 자들의 체취뿐이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의 옷가지가 유품으로 남았고, 할머니의 것이 그 위에 남겨졌다. 거친 베와 면으로 짠 옷과 가운들, 한 땀 한 땀 치밀하고 곱게 수놓은, <신은 위대하다>고 새겨진 푸른색 실크손수건. 유리와 수정으로 만들어진 조잡한 장신구들. 에메랄드와 루비 등이 박힌 몇 가지 귀금속들.

 

시간과 공간의 변화와 부침 속에서 떨어지고 망실되었으며, 처분되고 버려지고 남은 흔적들. 유품을 정리하는 것은 죽은 자를 가슴에 묻는 해묵은 행사이고, 남겨진 자의 의무이다.

 

이맘 까삼의 단검은 아빠가 체포된 다음날 집이 부서질 때 없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그것마저 기억의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빠는 가죽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았다. 대신 아메드의 물건들이 담겨있었다.

 

의외의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했을 때의 당혹스러운 반가움이란. 마지막 남은 액자 속 사진조차 태워져,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고 상심했는데. 가엾은 아이는 아빠에게 보호되었다.

 

출생증명서, 앙증맞은 금실 터번과 비단 가운, 처음 머리를 깎았을 때 모아둔 것이 분명한 머리털들과 손톱 발톱. 태어난 직후의 폴라로이드사진은 오랫동안 감광되어 희미해졌다. 초등학교 때의 사진들과 상장들. 아이는 항상 웃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앙다문 입술의 긴장한 사피나.

 

동생의 프랑스 행 편도 비행기 표와 여권을 발견했을 때는, 묵혀두었던 슬픔이 밀려나와 한참 동안 벽을 응시했다.

 

가방 맨 아래에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 들어 있었다. 검은 가죽 벨트로 가운데를 묶은, 누렇게 변색되고 귀퉁이가 얼룩 진 낡은 두루마리 명주주머니였다. 열 겹도 넘게 말려진 속에 담긴 것은 외가의 피와 땀과 한으로 얼룩진 응고물들이었다.

 

지금은 이스라엘 땅으로 변해버린 집과 과수원, 토지문서들.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갈 수 없을 그곳. 오랜 시간을 애타게 기다렸지만 세월의 풍상을 이기지 못해 만지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은 과거의 흔적들.

 

문서는 대물림되었지만 그것들이 보증했던 세계는 오래 전에 파괴되고 약탈되어 사라졌다.

 

엄마는 벽 하나를 온전히 채웠던 많은 책들을 모두 버렸다.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이었다. 심지어 마키아벨리가 로렌쪼 메디치공작에게 보냈던, 양피지에 쓴 편지의 18세기 필사본 액자조차 불구덩이에 던져졌다. 그걸 볼 때마다 얼마나 득의만면해 했었는데.

 

- 저 귀한 것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알아? 공부는 그렇게 집중해야지, 망외의 열매도 얻는 법이거든. 

 

엄마가 피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던 때였다. 도서관 고문서 실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조용히 가지고 나왔을 뿐이라며, 절대 도둑질한 것은 아니었다고 애교스럽게 변명했다.

 

그런데 그것이 재로 변하는 순간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으니, 다른 것들은 회상할 가치조차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엄마는 오래 전부터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것으로 예감했던 것 같다. 수의를 만들어놓았던 것이나, 시신을 감쌀 무명천을 장만해놓았던 것은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서랍장을 열어본 후에야 발견되었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다.

 

서랍장이 거의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애잔한 서글픔이란. 속옷가지들과 겨울옷들을 모두 모아도 서랍 하나를 채울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50여 년 삶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처럼, 죽음은 인생의 결말이 아니다.

 

삶이 정지하는 것. 단지 그것이다.


태그:#팔레스타인, #예닌학살극,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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