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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 내가 세어보니까 대충 한 만 명쯤 해치우면 진짜 살기 좋아질 거다."
"학자가 정치를 가르치는데 정치성향이 없으면 그건 바보 아니에요?"

지난 13일 김제동의 청춘콘서트2.0 대구 경북대 편에 <88만원 세대>의 공저자 우석훈 2.1연구소장이 찾았다. 시종일관 직설적이고 명쾌한 입담을 과시한 우 소장과의 대담에서 김제동은 "진짜 고수를 만났다"며 혀를 내둘렀다. 민감한 정치현안을 언급하는 와중에도 우 소장의 표현대로라면 "쫀득쫀득하게 짝짝 달라붙는 찰진" 욕설이 대화 사이사이 종종 등장해 콘서트를 찾은 청춘들을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제가 우씨잖아요. 사람들이 부모는 너한테 우씨라는 성을 줬는데 왜 '좌'석훈을 하냐고 그래요.(웃음) 성이 바뀐 사람들이 좀 있어요. 좌씬데 우파인사람, 우씬데 좌파인 사람."

우 소장은 먼저 "(우파들이) 20대 문제 얘기할 때 20대가 눈높이를 낮추면 된다고 하는데 그런 논리는 거짓말하는 것"이라며 20대가 한 노력의 매몰비용을 충당할 수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지적했다. 기업들이 그에 합당한 임금 대우를 청년들에게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록금은 한 명 한 명씩한테 다 매몰비용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부모가 처음부터 대준 사람은 그냥 눌러 살면 되니까 신경 쓸 거 없잖아요. 부모가 등록금을 대주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일해서 그 돈을 갚아야 되죠. 그럼 그게 최소임금이 되는 거예요. 그만큼 대주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면 나은데 그거보다 덜 받으면 이 사람은 그 빚을 평생 껴안고 살아야 되잖아요. (지금 사회 구조는) 거꾸로 돼 있는 거죠.(생략)

10억, 12억 받는 당신들도 좀 낮춰봐라. 한 1억쯤으로. 자기들이 받는 건 자기들이 잘나서 받는 거고, 20대가 못 받는 건 눈을 낮추라 그러는 건 말이 안 돼잖아요. 일관된 기준으로 자기들도 조금 받든지."

청추콘서트 대구
▲ 청추콘서트 대구 청추콘서트 대구
ⓒ 청춘얼쩡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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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얘기가 계속되자 김제동이 슬쩍 "저쪽에서 말하는 좌파나 빨갱이는 아니시죠?"라고 농을 건넸다. 이에 우 소장은 오히려 "그런 좌파나 빨갱이 맞아요."라고 웃으며, 대신 자신은 친북좌파가 아닌 북한도 비판하는 순수좌파라고 소개했다. "학자로서 좀 더 잘나가는 대열에 합류할 수 있지 않았냐"는 김제동의 질문에도 우 소장은 "교수 안 하고도 먹고 살아남은 빨갱이 전례를 남기라는 말을 들었다. 좌파로 살아도 글쓰며 먹고살 수 있다는 사례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했다"고 답했다. 

우 소장이 폭로(?)한 대구의 정체에 청춘들이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자생적 좌파가 등장한 도시가 대구에요. 헌책방에서 가장 늦게까지 <자본론>이 팔렸던 도시가 대구에요. 우리나라 좌파의 본산지. <자본론>을 제일 열심히 연구한 김수행 성공회대 교수, 그분도 대구에서 자랐어요. 진짜 순수좌파는 대구에서 나왔다라고 하죠. 진짜에요. '레프트 대구'라는, 지역에서의 순수 좌파잡지가 작년에 제일 처음 나온 곳도 대구에요. 우파와 순수좌파가 함께 지내는 도시죠."

이에 김제동이 대구를 "화합형 도시"라고 칭하자 우 소장은 "술은 같이 안 먹는 거 같아요"라고 답해 연달아 폭소가 터졌다.

"현재의 경제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김제동의 질문에 우 소장은 "대통령이 못할 거라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못할 줄은 몰랐다"며, "차라리 시장에 있는 아줌마를 자리에 앉혀라. 그러면 재래시장이라도 살리지 않겠느냐. 다른 거 이상한 거에 손 안 대고. 재래시장 살리면 지금보다는 우리나라가 나아질 거예요"라고 덧붙였다.

청추콘서트 대구
▲ 청추콘서트 대구 청추콘서트 대구
ⓒ 청춘얼쩡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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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우 소장은 '정권이 바뀌어도 사람들이 희망하는 좋은 세상이 올까'라는 고민을 많이 한단다.

"(청춘콘서트 같은) 이런 자리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게, 지금 얘기를 많이 해야지 정말로 때가 왔을 때 그걸 할 수 있다고 봐요. 20대, 장애인, 여성, 지역, 기업 문제 등 우린 풀어야할 게 많잖아요. 그러다보면 우선순위가 뒤로 가요. 그러니까 자꾸 얘기하는 수밖에 없죠."

이어 우 소장은 제일 먼저 우선시돼야 하는 정책으로 '고용'을 꼽으며, 불안정한 고용 때문에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청년들이 줄어든다며 이를 '비인간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성적으로 가장 혈기왕성한 스무 살 즈음에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결혼을 미루고 포기해야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회는 잘못됐다는 것이다.

"제가 1980년대 대학 다녔을 때는 결혼한 친구들도 있었어요. 외국을 보면 일본, 미국도 그렇고 대학 3, 4학년쯤이면 결혼한 친구들이 생기게 돼 있어요. 인간이 그렇잖아요. 춘향이가 엄청 고급스런 사랑을 했을 때가 16살,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해서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나이가 16세거든요. 이팔청춘이죠. 그때쯤이면 상당히 고급스런 사랑을 했죠. 이 결혼 안 하면 나는 죽겠다. 그게 16세에요. 인간은 원래 그렇게 설계돼 있어요.(생략)

텔레비전 보면 고2, 고3 때 '공부가 제일 좋아요' 이러는데 난 그거 볼 때마다 제정신인가 싶어요. 안 좋아요.(웃음)"

청추콘서트 대구 우석훈
 청추콘서트 대구 우석훈
ⓒ 청춘얼쩡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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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첫 번째 질문자는 "물질 위주의 현대 사회에서 제조업이 무너질까 걱정된다"며 이에 대한 우 소장의 의견을 물었다. 우 소장은 되레 "현대 사회가 물질사회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질사회라고 이야기하는 자들이 나쁜 자들이 아닐까"라며 시민들의 의식 변화를 촉구했다. 

"진짜 힘든 건 돈 문제 때문이 아니에요. 사람들 생각, 정신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제조업 무너질 가능성은 당을 바꾸면 돼요. 도로나 이런 거만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속하면 진짜로 무너질지 몰라요. (생략) 대구를 보면 특산물이 사과하고 대통령이라매요.(웃음) 그 정도로 대통령을 많이 만들었으면 잘 살아야 될 텐데 10년째 기업소득이 전국 꼴찌에요. 정치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어르신들 많으신데 청춘들이 정신을 바꾸면 괜찮아질 수 있어요. 정신과 꿈, 희망이 물질을 진짜 움직이는 거거든요." 

자신을 30대 후반이라고 밝힌 두 번째 질문자는 "벌써부터 스스로가 기성세대라는 느낌이 든다"며, "자기 소신을 자신감 있게 밝히는 우 소장에게도 현실에서 타협하고 싶을 때가 있냐"고 물었다.

우 소장은 "우파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잔인해져요. 근데 제가 눈치를 안 보면 저를 무서워해요. 약해 보이면 막 씹고 조금 세 보이면 똥이 더럽다고 피하는 거죠"라며, 자신의 가족사를 소개했다.

"전 우리 집안에서 처음 태어난 '빨갱이'에요. 부모형제까지 다 포함해서 <조선일보>를 안 보는 유일한 사람. 지난 대선에 이명박 대통령에 투표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또라이'였던 거 같아요. 총리가 있는 회의를 간 적이 있었는데 다들 조용히 있잖아요. 제가 '총리님 안 됩니다!' 그랬더니 공무원들 얼굴이 하얘졌어요. 그럼 전 당황해야 되는데 갑자기 기분이 막 좋아지더라고요.(웃음)"

청추콘서트 대구
 청추콘서트 대구
ⓒ 청춘얼쩡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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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 소장이 청춘들에게 전한 말.

"제가 처음 어른이 됐다고 생각했던 게 대학교 2, 3학년 올라가는 겨울방학이었어요. 우리 아버지가 데모할 거면 호적에서 파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때 그래서 술 먹고 나니까 집에 갈 버스 차비가 없어서 눈이 진짜 많이 오는 날 두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갔어요. 그 다음 날 책 몇 권 싸들고 집을 나와서 아직 안 들어갔어요. '난 데모할 거고 안 들어갈 거니까 호적은 아버지가 알아서 정리해주세요' 그랬거든요. 그때부터 전 독립된 사람으로 살아온 거고 '날 건드는 이들은 가만 안 둔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온 거거든요.

그러니 아무도 안 건드려요. 그때 어른이 된 거라 생각해요. 직접 돈을 벌고. 그 첫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꼭 집을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내가 어른이 언제 되었을까를 생각해봤을 때, 김제동 어른 됐잖아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형 노릇 하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간에 내가 어른이 된 날이 언제라는 그날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행복하세요."

이날 처음 우 소장을 만났다는 김제동은 평소 우 소장에 대해 <88만원 세대> 같은 책으로 20대들에게 책이나 판다는 딱딱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한다. 김제동은 이번 만남이 그 선입견을 깰 수 있던 좋은 기회였던 거 같다며 "오늘을 제가 어른이 된 날로 기억하겠습니다"라고 감회를 전했다. 함께한 청춘들 역시도 '진짜 어른'이 된 특별한 날이었다.

우석훈 소장은 11월 23일 수요일 저녁 7시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리는 '김여진의 청춘콘서트2.0 액션토크'에도 출연해 정동영 의원과 함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덧붙이는 글 | 청춘콘서트를 취재하는 청춘얼쩡기자단 이지예입니다.
chungcon.tistory.com



태그:#청춘콘서트, #김제동,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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