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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재단(아래 재단)이 두 명의 20대 청년 노동자를 만났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에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한다. 이러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 노동자, 그들이 마주한 일터도 안전할 리 없다. 이들의 일터도 그랬다.

나영씨(가명)는 일하다 사고가 났다. 지우씨(가명)는 작업 환경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이 생겼다. 산업재해를 겪은 사회 초년생, 청년 노동자는 고민했다. 우리, 앞으로 최소 30년 계속 일하고 살 수 있을까? 두 노동자의 경험과 이야기를 담았다.

응급실에 간 1년 차 마트 노동자
 
마트 사진
▲ 마트 사진 마트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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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씨는 마트에서 일한다. 물건을 진열하고, 매장을 관리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등 마트에 필요한 모든 일을 담당한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었지만, 스케줄 근무와 야간 노동은 적응이 안 된다. "밤늦게 일하는 게 제일 힘들죠. 스케줄이 아예 랜덤이라 바이오리듬도 깨지고." 휴가 신청이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스케줄이 꼬이면 동료들에게 피해가 가니 얘기하기 어렵다.

사람을 상대하며 겪는 서비스직의 고충도 털어놨다. 무시하고, 영수증을 던지고, 이것저것 가리키며 들고 따라올 것을 요구하는 손님까지... 20대 여성 노동자인 나영씨를 존중하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나영씨는 씁쓸하게 웃으며 "반말은 이제 기분 나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일을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나영씨는 재미를 찾아가고 있었다. "게임 같을 때도 있어요. 내가 진열한 상품이 잘 나가면 성공! 이런 게임." 슬슬 일이 손에 익기도 했다. 그러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물류를 받을 때 (트럭에서) 리프트를 내려요. 물건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지턱이 있거든요. 근데 방지턱을 제대로 설치하지 않았어요. 잠깐 잡아달라고 해서 갔는데 리프트에 깔렸죠." 나영씨는 리프트에 발이 깔린 채 소리를 질렀다. 안전화를 착용하고 있어서 타박상에 그쳤지만, 사고의 충격은 크게 남았다.

"일하다 다치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사실 이전부터 안전한 환경은 아니었다. 주류, 김치, 쌀 등 무거운 물건으로 인해 많은 마트 노동자가 허리, 손목 통증을 겪고 있다. 나영씨도 일한 지 1년이 채 안 되어서 무릎이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 갔다. 물건을 쌓기 위해 사용하는 사다리에서 떨어진 동료도 있었다. 나영씨는 덤덤히 말했다. 놀라며, '다치지는 않았냐', '안전모나 안전 장비는 없냐'고 물었더니 "사다리가 높지 않아서... 사실 저도 몇 번 떨어졌어요"하고 본인의 경험도 전했다. 사다리에서 작업 중인 노동자가 떨어질 수도, 물건이 덮쳐 다칠 수도 있지만 그에 따른 조치는 없었다. 나영씨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작업도 '위험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됐다.

사고 전까지는 "당연히" 남의 일이라고 여겼다. 나영씨는 본인에게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마음을 고백하며 스스로 "안일했다"고 표현했다. 산재는 나영씨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공사장에서 안전모 쓰라고, 안전장치 하라고 하잖아요. 근데 왜 다치지? 이해가 잘 안됐어요. (사고 이후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구나,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노동 환경에 문제가 있겠구나.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나영씨는 다행히 산재 승인을 받고 치료 기간 휴직을 했지만, 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왜 일하다 다치는,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 일어나는 걸까. 화가 났다. 나영씨는 다치고 나서야 직시하게 된 현실을 짚으며, "말이 안 되잖아요.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보호대와 한 몸이 된, 3년 차 연구원
 
지우씨가 실험에 사용하는 글러브박스. 피펫을 많이 사용해서 손목과 어깨 통증을 유발한다
 지우씨가 실험에 사용하는 글러브박스. 피펫을 많이 사용해서 손목과 어깨 통증을 유발한다
ⓒ 김용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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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씨는 제약회사 연구원이다. 약의 형태를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약에는 캡슐, 정제, 시럽제, 주사제 등 다양한 형태가 있는데, 약물의 특성에 맞춰 더 효과적인 제형을 찾는 것이다. 대학에서 식품을 전공한 지우씨는 자연스럽게 '질병'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만든 약이 세상에 돌아다니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제약회사에 들어갔다.

이제 3년 차가 된 지우씨는 늘 손목 보호대를 착용한다. 실험을 한번 할 때, 약 10kg 정도의 부품을 10번 끼웠다가 빼야 한다. "여러 번 실험하면 그 작업이 배가 돼요. 부품을 세척할 때도 이리저리 들어야 해서 손목에 무리가 많이 갔어요. 손목 건강은 자신 있었는데..." 어느 날 지우 씨는 실험을 마치고 손목 통증을 느꼈다. 뻐근하게 아픈 느낌은 주말까지 이어졌다. 파스로는 부족해서 물리치료, 도수치료도 받았다. 이제는 휴대폰을 만지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손목 보호대가 없으면 안 된다. 지우씨만 아픈 게 아니었다. 비슷한 작업을 하는 동료들도 모두 손목이 좋지 않다. 다들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며 감내하고 있을 뿐이다.

긴 처리 과정 자체가 벽

"아프다고, 아프다고 계속 얘기하면 법인카드 주고 병원 가라고 했어요. 그래도 다섯 번 정도 갔는데, 일도 바쁘고 상사가 눈치 주고 해서 지금은 안 가요."

다른 동료들도 일이 적을 때 휴식을 취하고 가끔은 병원에 간다. 지우씨는 상사에게 얘기해서 법인카드를 받았지만, 대부분 개인이 치료비용을 부담하고 이후 보험으로 처리하는 식이다.

산재는 고려하지 않았다. "솔직히 귀찮아서요. 증명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요. 손목은 우리가 항상 쓰는 신체 부위잖아요." 개인이 느끼기에는 산재 신청 절차나 서류가 복잡하고 어렵다. 무엇보다 처리 기간이 길고 거절되는 경우도 많다. 하는 일 때문에 손목이 아프다는 걸 노동자가 입증해야 하고, 절차가 어려우니 이 자체가 산재 신청의 벽이 된다.

정부의 태도도 영향을 준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나이롱환자', '산재카르텔'을 문제 삼으며 특정감사를 진행했다. 특정감사 결과 카르텔은 없었지만, 정부는 산재보험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산재 노동자는 도덕적 해이, 부정수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한국노동연구원(2021)에 따르면, 국내 산재 3건 중 2건은 은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가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일하다 아프거나 다친 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서 정부가 한술 더 뜨며 산재 노동자를 '부정하다' 여기면 노동자도 산재보험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계속 일할 수 있을까

나영씨는 원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요즘은 더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나영씨와 함께 일하는 선배들은 "몸이 아프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 아픈 선배들이 나의 미래라면? 걱정이 앞선다. 사고 이후에는 리프트에 대한 공포가 생겼다. 마트 노동자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인 물류를 받는 게 무서워졌다. "그래도 해야 하니까" 일을 하고 있지만, "하는 일에 비해 임금도 적고, 열악한" 이 노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바람이 있다면, 지금 살고 있는 원룸에서 조금만 더 넓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지우씨도 현재의 아픈 일자리가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일을 해보니까 이 직종은 원래 이렇더라고요. 더 나아지기는 어렵지 않을까. 아예 다른 부서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직종을 바꾸지 않는 이상 근골격계 질환 노출은 불가피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직을 고민하지만, 몇 년 더 경력을 쌓아야 한다. "노동은 살기 위해 그냥 하는 거,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변화할 것 같지 않아서, 기대도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지우씨는 살아가기 위해 일하고, 행복은 여행지 곳곳에서 찾는다.

행복은 회사 밖에 있나

끊임없는 경쟁 사회에 내몰리는 청년들은 마음을 다친다. 힘들게 취업에 성공해도 마주하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답답할 때, 누군가는 함께 분노하며 노동조합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럴 기운조차 없이 살아가는 것 자체에 힘써야 한다. 구직을 포기한 니트(NEET) 청년도 41만 명에 달한다. 이미 노동은 괴로움으로 여겨지고 있다. 행복은 회사 밖에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연 약 1800시간을 일하는 장시간 노동의 대표 국가 한국에서, 노동시간 외에서만 행복을 찾는 건 가능한가. 또 그래야만 하는가.

뒤틀린 사회에서 청년 노동자는 미래에 대한 희망, 상상력을 빼앗기고 있다. 정부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하지만, 중요한 지점은 외면한다. '취업률'을 목적으로 한 일자리 만들기는 근본적 대책이 아니다. 노동자가 계속 다치고, 죽는 일터에서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모두가 계속 다닐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가 있는 일터, 고용불안에 떨지 않아도 되는 일터, 다치거나 병들지 않는 일터가 필요하다. 청년이 일할 수 있는 곳,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은 청년뿐만 아니라 모두가 안전한 곳이다. 나영씨에게도, 지우씨에게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회의 내일도 꿈꿀 수 있다.

태그:#김용균재단, #청년노동자, #회사와행복, #예진, #안전한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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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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