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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라이더 대행진을 진행했다.
▲ 4/24 라이더 대행진 4월 24일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는 라이더 대행진을 진행했다.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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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반시민 5천명으로 구성된 교통안전 공익제보단이 신고한 오토바이 법규위반 건수는 26만 7916건이었고 지급된 포상금은 13억이었다. 대부분이 배달산업에 종사하는 배달노동자가 적발된 걸로 예상된다.

교통법규 단속은 일반시민의 안전뿐만 아니라 배달노동자의 도로 위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러나 대대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배달노동자의 산재사망사고는 계속된다. 4월 11일 구미, 4월 12일 부천, 4월 13일 신림역, 4월 22일 인천에서 연이어 네 명의 배달노동자가 사망했다.

공장에서 사망사고가 일어났다면, 공장을 멈추고 재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배달노동자의 산재사고는 불행한 교통사고로만 기록될 뿐 어떤 위험유해요소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시민들의 눈에는 도로 위에서 이륜차를 탄 사람이 쓰러진 것이겠지만, 쓰러진 이륜차 노동자는 도로로 출근했다가 공장에서 쓰러진 것이다. 교통법규단속과 함께 배달사업장에 유해 위험요인이 없는지를 점검해야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최초의 배달라이더 위험성평가

점검을 위해서는 기준이 필요하다. 2022년 11월 정부는 오는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으로 산재사망사고를 줄이겠다며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는데, 중요한 수단으로 위험성평가를 제시했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부상이나 질병 등을 일으킬 수 있는 유해 위험요인을 사전에 찾아내 위험도를 측정하고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대책을 수립 실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나 플랫폼기업들은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의무가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36조 위험성평가의 실시를 보면, 위험성평가의 주체를 '사업주'로 규정하고 있다. 플랫폼기업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다.

노동법의 구멍을 막는 역할을 노동조합이 한다. 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라이더유니온지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우리나라 최초로 배민, 쿠팡, 요기요 등 플랫폼배달노동자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다. 811명의 배달노동자를 대상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 분석한 결과 중대한 위험도는 11가지로 나왔다.

위험성평가에서 위험도는 작업자의 부상질병 발생의 확률을 의미하는 가능성과 부상 질병의 정도를 의미하는 중대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는데, 경미한 위험도/ 허용할 수 있는 위험도/ 중등도의 위험도/ 중대한 위험도/ 허용할 수 없는 위험도로 나눈다. 중대한 위험도는 위험도를 줄이기 전에는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정도의 위험을 의미한다.

배달노동자들은 안전하지 못한 도로를 중대한 위험으로 꼽았다. 비나 눈 낙엽 등으로 미끄러운 도로, 폭염 혹한과 같은 날씨, 이륜차 운행에 맞지 않는 도로시스템 등이다. 운행 중 끊임없이 화면을 확인/터치해야 하고, 폭우 폭설 등 위험한 상황에서 운전을 해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앱과 알고리즘 문제도 중대한 위험으로 꼽았다.

시민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배달기업들은 더 이상 "10분 내로 배달해!"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그저 핸드폰 앱에 공지를 띄운다. '지금부터 한 건당 2500원', '1시간 내 3건 배달하면 5000원 보너스', '지금부터 딱 1시간 동안 한 건당 6000원'. 이 공지를 보는 순간 배달노동자는 AI보다 빠르게 몸과 머리가 돌아간다. 1시간 뒤에 알고리즘이 운임을 떨어뜨릴 테고 일감도 줄어드니 하루 목표수익을 채우기 위해 1시간동안 어떤 속도로 일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계산한다. 배달공장의 도로 위 컨베이어 벨트 속도를 배달노동자 스스로 빠르게 돌리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배달노동자들이 스스로의 난폭운전에 대한 반성 없이 남 탓만 한다고 할지 모른다. 배달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과속과 신호 위반 역시 중대한 위협으로 꼽았다. 배달노동자들도 잘 인지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시민과 배달노동자의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교통법규 단속에만 골몰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책임을 시민에게 외주화하는 셈인데, 이는 공공의 도로를 위험한 배달공장으로 만든 플랫폼기업에게 면죄부를 준다. 플랫폼기업이 배달노동자의 사고에 대해 면죄부를 받으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 역시 책임을 묻기 힘들다. 배달사고가 산업안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교통법규준수 문제라면 배달을 하다가 시민을 치는 사고를 내더라도 난폭운전을 한 개인의 책임일 뿐, 배달기업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런 제약 없는 배달기업은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 배민의 2023년 매출은 3조4155억, 영업이익은 6998억을 기록했는데, 배민을 인수한 딜리버리히어로에게 4000억이 배당됐다. 국가가 시민들에게 배달노동자를 잡으라고 13억을 지급하는 동안 배달기업은 7천억을 가져갔다.

국가가 무엇을 잡아야 하는지를 착각하는 순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받는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에 발간한 새로운 위험성평가 안내서를 보면 위험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사업장 유해 위험 요인을 잘 아는 노동자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배달노동자를 도로안전의 '범인'으로 붙잡고 배제하는 게 아니라 도로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만들어야 현실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플랫폼공장에 맞는 위험성평가 필요하다
 
지난 4월 23일 국회에서 배달노동의 위험성평가에 대한 연구발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 4/23 라이더 위험성평가 토론회 지난 4월 23일 국회에서 배달노동의 위험성평가에 대한 연구발표와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 공공운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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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이 위험성평가를 통해 대안을 제시했으니 이제 국가가 응답할 차례다.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적용하고 배달기업들도 노사가 함께 위험성평가와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정된 사업장을 전제로 한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

산안법 36조 위험성평가의 실시에는 사업주가 '건설물, 기계·기구·설비, 원재료, 가스, 증기, 분진, 근로자의 작업행동 또는 그 밖의 업무로 인한 유해·위험 요인을 찾아내어'라고 규정하고 있다. 플랫폼노동자의 주요한 기계는 앱과 알고리즘이다. 위험성평가를 위해 알고리즘을 공개하고, 알고리즘의 변화에 따라 노동자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기적으로 조사하자.

앱과 알고리즘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므로 이에 대한 규제와 상시적인 위험성평가 역시 뒤따라야 한다.

사업주에 대한 규정과 책임 역시 확장해야 한다. 라이더 위험성평가 연구발표 및 대책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에 참여한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상 건설공사발주자가 도급계약을 체결하거나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 관리하는 자가 산재예방을 위해 비용부담을 하는 사업안전관리비를 근거로 플랫폼위험부담금을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책임과 비용을 전가하는 플랫폼기업에 걸 맞는 방책이다.

한편 배달기업이 사적으로 유용하는 도로의 관리책임은 국가에 있다. 배달공장의 환경개선이 공공에게 전가된 것이다. 따라서 배달기업에게 분담금을 징수하여 운수노동자들이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로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배달기업 운수노동자들이 함께 도로에 대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배달노동자들에게 사실상의 신호위반을 강요하는 AI 변동요금제를 규제해야 한다.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운임제를 부활시켜 배달 택배에 확대 적용시키거나,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배달노동자들의 건당 임금을 결정하여 최저임금제도를 플랫폼노동자들에게 확대적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런 환경 위에서 엄격한 교통법규 단속에 찬성한다. 이제 배달산업에도 신호등과 안전표지판을 세워 배달기업의 과속과 법규위반을 단속해야 한다.

태그:#배달산업, #김용균재단, #박정훈, #라이더, #위험성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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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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