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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후 산행다운 산행은 거의 해본 적 없는 내게 지난 11월 4차례의 북한산행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특히 지난 23일과 30일의 북한산 능선 산행은 더욱 더 오래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올라가 보려는 생각조차 없이 그저 바라만 보면서 어렵고 힘들 거라고만 지레짐작하던 북한산 정상을 올랐다는 감회와, 더 험한 다른 봉우리들도 얼마든지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산행이기 때문이다.

'어떤 청년이 사랑하는 그녀를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북한산 사모바위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승가사다. 청소년기부터 불자다보니 여행은 예사로 사찰을 염두에 두고 들르거나 목적지인 경우가 많은지라 승가사에도 이미 5번은 갔었다.

승가사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늘 감탄스럽게 우러러 보던 것은, 두 손을 급하게 턱! 있는 힘껏 밀면 금방이라도 또르르 굴러버릴 것 같은 사모 바위. 그보다 더욱 감탄스러운 것은 그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바위도 바위려니와 그 까마득한 곳에 서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아찔함이라니! 그런데 그곳에 내가 설 수 있을 줄이야!

북한산 봉우리들과 마주하고 있는 문수봉 문수사, 불자보다는 등산객들이 주로 찾을만큼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난간 아래 구기 계곡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북한산 봉우리들과 마주하고 있는 문수봉 문수사, 불자보다는 등산객들이 주로 찾을만큼 높은 곳에 있는 절이다. 난간 아래 구기 계곡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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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문수사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할까요? 승가사와 대남문 분기점으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서 바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나요? 저 뒤로 가면 어디가 나오죠?"

"이쪽(승가사 뒤쪽)으로 올라가면 비봉이 나와요. 비봉에서 청수동 암문까지 가서 조금만 더 가면 문수봉이고 문수봉 지나면 대남문이 나오는데 바로 아래 문수사가 있어요. 여기서 바로 갈 수 있는데 뭐 하러 분기점까지 내려갔다가 올라가요?"

승가사에서 '승가사 대남문 분기점'으로 다시 내려가 승가사를 왼쪽에 두면서 구기계곡을 따라 대남문으로 올라가려던 애초의 계획을 '비봉에서 청수동 암문을 지나 대남문'으로 수정했다. 그리하여 비봉을 향해 가는 길, 구기계곡을 따라 문수사에 올라갈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숨이 가빴지만, 그래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간다는 설렘이 일었다.

'그래, 나보다 엉덩이 무거운 아줌마도 올라가는데...'

남자들 사이에 드문드문 여자들이 섞여 오르고 있었다. 나보다 훨씬 연배로 보이는, 나보다 엉덩이가 더 무거워 보이는 할머니(?)도 보였다. 말이 필요 없다. 나와 같은 아줌마들, 그들은 천 마디에 버금가는 대단한 위안이다. 불끈 오기가 솟았다. 얼마를 갔을까? 어느 순간 북한산 정상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북한산 사모 바위
 북한산 사모 바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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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에서 본 사모 바위
 비봉에서 본 사모 바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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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게 승가사에서 봤던 사모바위예요? 그럼 저 바위를 지나가야만 하는 거예요?"

'비봉'에 도착한 순간, 우리가 가야할 오른쪽 길 저 멀리에 낯익은 사모바위가 있지 않은가. 비봉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문수사에 가려면 사모바위를 지나야만 한다는 것을 전혀 짐작하지 못할 만큼 까마득한 산행 초보라 오랫동안 감탄하면서 바라만 보던 사모바위와의 느닷없는 만남은 신기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더 앞섰다.

"문수봉이 어디예요? 설마 저어~~~기! 저곳이 아니겠죠?"
"맞아요. 아까 그 사람이 그랬잖아요.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일단 가보죠?"

함께 간 oo님은 저 멀리 까마득하게 있는 문수봉을 가리켜 알려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니 사모 바위를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저렇게 엄청난 바위를 어떻게 지나가? 이제라도 그냥 내려가서 구기 계곡 쪽으로 올라가자고 할까?...에이, 이왕 온 거 그냥 힘껏 가보는 거야. 봐. 저렇게 나이든 아줌마들도 있잖아?...그런데 저렇게 큰 바위를 어떻게 넘어가? 미끄러질 텐데. 아무래도 힘들겠지? 그냥 사모 바위 앞에까지만 가서 바위만 보고 돌아가자고 하자.'

늘 우러러 보던 사모 바위를 직접 만날 수 있다니! 밑에서 볼 때면 사람 하나 겨우 설만큼 좁아 보여 자칫 굴러 떨어질 것만 같던 사모 바위 주변은 밑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꽤나 넓었고 수많은 사람들로 왁자지껄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보는 순간, 조금 전의 되돌아가야겠다는 망설임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곳인데 대한민국 평균치에 해당하는 내가 왜 포기를 해? 그래, 설마 죽기야 하겠어? 일단 가보는 거야!'

북한산 비봉에서(구기동-승가사-비봉-사모 바위-승가봉-청수동 암문-대남문-문수봉 문수사-구기동)
 북한산 비봉에서(구기동-승가사-비봉-사모 바위-승가봉-청수동 암문-대남문-문수봉 문수사-구기동)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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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애서 청수동 암문까지 1.8km...반갑다 청수동 암문!
 비봉애서 청수동 암문까지 1.8km...반갑다 청수동 암문!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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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대로라면 비봉에서 '청수동 암문'까지는 1.8km. 사모 바위 앞을 지나 커다란 바위를 기다시피 올랐다. 바위 하나를 넘는 순간 또 다른 바위가, 또 다른 바위가 계속되곤 했다. 등산화가 익숙하지 않고 다리도 짧아 원하는 곳을 시원시원 밟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언제나 동경만 하던 어려운 길을 드디어 나도 가고 있다는 뿌듯함이 일었다.

그렇게 바위를 계속 기어오르고 넘다보니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줌마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씽긋 웃는 여유까지 어느새 생겨나고 있었다. 동행한 사람에게 애걸복걸해 잠시 쉬면서 아득한 아래를 둘러 볼 때마다 느끼는 아득하지만 가슴 설레는 경이로움이라니! 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또 다른 속살을 보여주는 북한산에 대한 감탄이 끊임없이 밀려왔다.

속옷까지 흠뻑 젓을 만큼 많은 땀을 흘리며 힘든 길을 헤쳐 나가는 동안 지난 가을 내내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간의 감정 문제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산 아래에서 내 것을 좀 더 챙기자고 옥신각신 다투던 것들도 하찮게만 여겨졌다.

산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무엇이든 기분 좋게 술술 풀릴 것만 같은 환상적인 기대랄까? 제아무리 힘들고 복잡한 것들일지라도 이제는 자신 있게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어떤 막연한 희망이랄까? 가슴 가득 상쾌한 기운들이 듬뿍듬뿍 솟아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거구나? 북한산 능선 산행을 택한 동행인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일고 있었다.

지나 온 북한산 능선-승가사와 승가사 위 구기리 마애불, 향로봉과 비봉 및 사모 바위.
 지나 온 북한산 능선-승가사와 승가사 위 구기리 마애불, 향로봉과 비봉 및 사모 바위.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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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 길이 우리가 방금 지나온 길이예요? 북한산 정상 능선을 따라 이만큼이나 왔다는 것이 신기하기만해요. 저기가 승가사고, 저 바위가 아까 봤던 '구기리 마애석불'이네? 저거 보물인데 우리가 똑 따올까요? 사실 승가사에 올 때마다 사모바위를 감탄하며 바라보곤 했거든요. oo님이 오늘 산에 함께 오자고 안했으면 아마 나 혼자 구기 계곡 쪽으로 해서 대남문까지 갔을 거예요. 사실 아까는 겁났었는데 그래도 이쪽으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산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생기는 것 같고."

다시 계속 이어지는 바위. 다리가 짧아 원하는 곳을 딛을 수 없을 때도 종종 있고 등산화가 익숙하지 않아 신발이 바위에 걸리면서 넘어질 위기까지 되풀이 하면서 계속 가고 또 갔다. 그러는 동안 앞으로도 종종 북한산 능선을 타고 싶다는 바람까지 일만큼 자신감까지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어떡해. 저길 어떻게 내려가?'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런 길은 그나마 쉽다. 카메라마저 꺼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바위들...나도 넘다니!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런 길은 그나마 쉽다. 카메라마저 꺼낼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바위들...나도 넘다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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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라 서있는 바위는 내 키보다 훨씬 높은, 그리하여 바위 아래가 까마득했다. 게다가  좀 전에는 '사고 다발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까지 세워져 있지 않았던가! 순간 오금이 저리며 발이 후들거리더니 공연히 이곳으로 왔다는 후회가 번쩍 들었다.

결국 동행한 분의 위험을 무릅쓴, 몸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인 도움(?)으로 등을 바위에 붙인 채 더듬더듬 간신히 내려왔지만, 계속되는 바위 길에 이제는 힘이 따라주지 않고 있었다. 그리하여 조금 걸었을 뿐인데 자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하여 난 결국 "공연히 이 길로 왔다"고 함께 간 사람에게 경솔하게 말하고 말았다.

동행한 분은 아무런 말이 없다. 변변한 장비조차 갖추지 않은 내게 지팡이를 내준 채 섭섭한 표정 한번 없이 사명감처럼 변함없이 이끌어 줄 뿐이다. 함께 걷는 동안 생각이 분분해졌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경솔하게 하고 말았다는 후회도 컸다. 좋을 때는 헤헤거리고 힘들어지자 금방 표가 나는 내 가벼움을 자책하기도 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힘들다고 금방 후회를 하다니! 사람 사는 것도 이러면 안 되겠지? 좋을 때는 고맙다고 헤헤 거리고 힘들어지면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이끌어준 사람 탓하고 원망하고 말이야.'

우리가 택한 길은 문수봉 우회길. 북한산성 암문 중 하나인 청수동 암문까지 오르는 길은 더욱 가팔랐다. 작은 돌과 바위가 섞인 흙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어림짐작 70도 가량쯤으로 여겨지는 경사. 앞서가는 사람들 중에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처음에는 숨이 가빴었거든요. 자꾸 산에 오르다 보면 나아질 겁니다. 그래도 산만큼 좋은 곳이 없어요. 오늘 문수봉 바위를 타셨어야 하는데...(빙긋 웃으며)"

드디어 청수동 암문에 도착했다. 청수동 암문을 지나 대남문에 이르자 몇몇 사람들이 산성을 따라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북한산성만을 따라 걸으면 얼마나 걸릴까 싶어 아까부터 셔터를 계속 누르고 있던 남자에게 물어보니 "등산에 익숙한 남자들이 이른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바쁘게 걸어야 할 정도"라고 답해준다. "힘든 구간도 많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산 능선 산행의 설렘을 가진채 친정에 일이 있어서 며칠간 다녀왔다. 토요일 밤늦게 집에 도착했는데도 일요일 새벽 눈이 번쩍 뜨였다. 자꾸 북한산 능선이 아른거렸다. 그리하여 이번 일요일에는 쉬자던 생각과 달리 다시 산을 향했다.

북한산 산행중에 바라 본 북한산의 또 다른 봉우리들. 멀리 노적봉도 보인다.
 북한산 산행중에 바라 본 북한산의 또 다른 봉우리들. 멀리 노적봉도 보인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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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길만 따라가는사람들, 나도 언제든 반드시 북한산성 길을 따라가 봐야지.-대남문에서
 북한산성길만 따라가는사람들, 나도 언제든 반드시 북한산성 길을 따라가 봐야지.-대남문에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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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나만의 자신감과 힘으로 북한산성 길을 갈 수 있는 거야. 언젠가 밟아 볼 북한산성 길을 위해 나 혼자 다시 북한산 능선을 타보는 거야!'

언젠가든 북한산성을 따라 걷고 싶다. 그 남자는 한눈에 척 산행 초보인 나의 어설픔을 눈치 채고 가소롭다는 듯 "등산에 익숙한 남자"를 강조하면서 여자인 나는 어림도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나는 나만의 길을 갈 뿐이다. 산행마찬가지 아닐까?

이미 한번 갔던 길임에도 혼자 가는 길은 많이 힘들었다. 지난주에 만나지 못했던 어려움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포기와 후회, 아득함으로 범벅이 된 산행이었다. 때문인지 지난주처럼 선잠이 드는 순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되풀이 하다가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나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산행이기도 했다. 혼자 이겨내 더욱 기특할 뿐이다.

늘 바라보고 살아가는 북한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나는 왜 지난날 올라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늘 바라만 보았던가. 이제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지난 날 나처럼 올라가볼 생각조차 않고 그곳에 서있는 사람들을 부러워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처럼 무거운 엉덩이를 툴툴 털고 일단 나서보길 권하고 싶다.

올가을 내가 얻은 북한산과의 몇 차례 만남, '어떤 힘든 길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북한산 능선을 타며 확인한 나의 가능성으로 2008년을 마무리하는 12월을 맞이했음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큰 행운인가!


태그:#북한산, #사모바위, #대남문, #문수봉, #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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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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