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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뻐근하다. 이 뻐근함이 불쾌해 목도 있는 힘껏 좌우로 밀어보고, 앉은 채로 허리도 한껏 비틀어보고 틈나는 대로 앉았다 섰다를 해보건만, 뻐근함은 도무지 가시질 않는다. 한 움큼 살들이 허리에 뭉텅뭉텅 둘러지는 느낌까지, 이런 참! 개운하지 않다.

 

이렇게 며칠 동안 그다지 상쾌하지 못한 시간들을 보내며 자꾸 드는 생각은 '일요일에 산에 못 갔기 때문이야! 내일이라도 당장 산에 가면 몸이 좀 나아질 텐데'다. 그러다가 스스로 겸연쩍어진다. '지가 언제부터 산에 못가면 죽고 못 살 정도로 산이 좋았다고?' 싶다. 그러나 끝내 엊그제 일요일 가게 때문에 접어야만 했던 산행이 아쉬워지는 것을.

 

그러니까 지지난주 일요일. 친정 언니와 둘만의 오붓한 영봉 산행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다음 주 일요일에는 수락산에 가자"고 약속했었다. 수락산에 가기로 한 그 날이 엊그제 일요일이다. 토요일은 최근 몇 달간 참여하고 있는 모 산우회의 관악산 정기산행, 가벼운 산행이라 '둘 다 가자!' 오랜만에 이틀을 연이어 가보자는 욕심까지 부리고 있었다.

 

하지만 금요일 갑자기 산에 가지 못할 상황이 되고 말았다. 남편에겐 택배 대행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명절 밑이라 일손이 딸려 남편도 가게를 내게 맡기고 명절 전날까지 택배 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몇 년째, 명절 때마다 남편도 나도 기다릴 만큼 꽤나 쏠쏠한 일당이다. 이런지라 산행을 포기하고 가게를 봤다.

 

산행을 포기하는 것이 속으로는 무지 아쉽지만, 남편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헤헤 웃으며 "오는 손님 하나도 놓치지 않고 물건 다 팔아 돈 많이 벌어놓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내 맘은 하루 종일 관악산으로 수락산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일요일 11시 18분, 상큼한 오이냄새가 난다. 산에 갔으면 잠깐 쉬며 오이라도 나눠먹기 예사인 그쯤이기 때문이다. 한참 일하다가 문득 본 시간은 12시 몇 분. 땀을 쭉쭉 빼며 가고 있겠지?…오늘은 뭘 싸왔지?…이젠 내려오고 있나??…얼마나 좋았을까??…이렇게 내 마음은 하루 종일 언니가 신나게 상쾌하게 산행을 하고 있을 수락산에 가 있었다.

 

 

이렇게 산에 못가 아쉽기 짝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이 아쉬움과 부러움 속에 지나가고 월요일 아침이 시작되자마자 수락산에 가자고 약속했던 친정 언니가 인터넷카페 한 줄 게시판에 산행후기를 짧게 올렸다. 친정 형제들끼리 뭉친 카페, '몽실가'는 친정 별칭이고 카페지기인 나는 '몽실네'란 닉네임을 쓴다.

 

수락산 산행이 궁금해 기다렸던 글이지만, 언니의 글을 읽자니 간신히 눌러 참았던 아쉬움이 다시 고개를 디밀었다. 언니의 글 중 '종현댁'은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 주에는 산에 못 간다"고 전화했을 때 "너랑 꼭 함께 가고 싶은 곳인데"라며 참 많이 아쉬워했었다.

 

'아파트 6층 높이 기차바위에 드리워진 동아줄 잡고 달랑달랑 내려왔다고?' 순간 아쉬움은 더 커진다. 정말 아찔하니 긴장되고 재미있었을 것 같다. 공연히 마음 설렌다. 크크~ 막상 그 아찔한 바위 앞에서 가슴이 벌렁벌렁~ 조마조마~ 올라가 말어? 했을 거면서 말이다.

 

'…유격 훈련하는 폼으로 내려오면 기분은 좋긴 디게 좋겠다. 올 만에 팔이며 날개 죽지 죽~죽 맘껏 늘여지고…'

 

언니의 글에 이렇게 꼬리 댓글을 적어나가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지난 겨울, 초보 주제에 겁 없이 올랐던 의상봉 능선이다. 봄 날씨처럼 푸근해 눈이 왔으리란 생각조차 없이 의상봉엘 갔는데 얼마를 올라가자 눈이 하얗게 쌓였고 눈에 쌓인 능선만 계속됐다.

 

산행 후에야 알았지만 쇠줄을 잡고 오르고 내려와야만 하는 암벽의 봉우리들이 계속되는 의상봉 능선은 산을 아는 사람들은 겨울에 잘 가지 않는단다. 음지쪽이라 특히 미끄럽단다. 여하간 초보에게는 언제나 힘든 길이란다. 게다가 눈까지 내렸으니 오죽하랴!

 

의상봉에 올라 정말이지 내려오가도, 더 이상 올라가기 겁이 났다. 어찔어찔 현기증이 났고 그 순간 더욱 아찔아찔해져 손과 발에 힘이 풀리기도 했다. 내 사정이야 이렇건 말건, 13년째 조기 축구회 열성회원인 한 친구와 몇 년째 부부가 거의 매주 산에 오른다는 친구, 2주마다 산에 가려고 애쓴다는 친구는 눈 속 또 다른 봉우리들을 자꾸만 향하잖다.

 

이런 동창 녀석들과 함께 간 내가 잘못이지! 오기로 쇠줄을 부여잡고, 기를 쓰고 올라갔다. 그렇게 올라갔던 봉우리를 쇠줄을 잡고 하늘을 보고 몸을 누이며 뒷걸음쳐서 내려와야만 했다. 마치 유격훈련 하는 병사들처럼.

 

그 힘들었던 길이 올 봄과 여름 산행 때마다 시시때때로 떠올랐다. 언제든 꼭 가고 싶은 곳으로 말이다. 아마, 힘든 것들을 이겨냈고 힘든 길을 해쳐나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 등 소중한 것들을 많이 얻었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 내내 내 손을 잡아 끌어주고 용기와 격려를 해주는 친구들과 함께 산행을 하는 내내 '사람과 사람사이의 끈', 내게 닿아 있는 수많은 그 '끈'을 절실하도록 생각하기도 했다. 오늘도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고 힘이 되는 그 '끈'을.

 

인수봉 오르다 죽은 이들을 위로하던 영봉에 가다

 

 

주변 경관이 좋다거나 문화유적이 있는 곳, 그동안 궁금해 했던 나무와 꽃들이 많은 곳도 내게는 몇 번이고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난 대부분의 산행마다 꼴찌가 될 때가 많다. 산행을 하는 내내 나무와 꽃들에 눈이 자꾸 머물기 때문이다.

 

지난 주 일요일 언니와 단 둘이 오붓하게 올랐던 북한산 영봉(604m)은 능선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이 뛰어나 계절마다 몇 번이고 가보고 싶은 곳이다. 육모정 고개로 오르기 시작하면 영봉까지는 3.5km. 땀이 맘껏 흐르는 깔딱 고개들을 몇 개 오른 후 시원하게 펼쳐진 능선에서 만나는 오봉, 자운봉, 신선봉 등으로 이어지는 경관은 정말 좋다.

 

영봉은 북한산 여러 주봉 중 한 봉우리다. 지난해 봄까지 인수봉(810.5m)을 오르다 삶을 달리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비석들 140여기가 서 있던 곳이란다. 그 추모비들은 지난해 5월에 모두 철거했단다. 개인들에게는 나름 소중한 공간이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동묘지가 아닌 국립공원의 면모가 되어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다고 한다.

 

 

왜 하필 영봉에 그 많은 추모비들을? 지난 8월말 모 산우회와 영봉 산행을 앞두고 궁금했었는데 가서 보니 궁금증이 쉽게 풀렸다. 영봉에서 인수봉 암벽 덩어리가 가장 가깝고 쉽게 보인다. 마치 두 봉우리가 마주앉아 커피라도 마시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영봉에 추모비를 세워 오르지 못한 인수봉을 죽어서라도 맘껏 보라고 위로한 것이리라.

 

그날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인수봉 바위덩이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난 죽는 날까지 인수봉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가급 많은 나무들과 꽃들을 만나며 오르는 산행을 고집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런 내게 산행 모임이나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은 늘 많이 아쉽다. 일정을 맞추다 보면 보고 싶은 나무와 꽃들을 다 못보고 가야 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천천히 걷는 산길, 보이는 것들이 참 많다

 

때문에 산행에 조금 자신이 붙기 시작하면서부터 혼자만의 산행을 일부러 한번씩 하고 있다. 그리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가면서 스쳐야만 했던 풍경과 나무도 맘껏 만나고 들어가 보지 못한 절에 들르기도 한다. 이런 산행은 높은 곳에 오르고 많이 걸었다는 성취감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나무들과 꽃들을 맘껏 만날 수 있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면서 최대한 많은 것들을 만나고 느껴보자!"

 

언니와 난 이렇게 산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참 많은 것들을 만났다. 누리장나무가 열매도 노랑망태버섯도 만났다. 그동안 책과 웹에서 참 많이 만났는데 직접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둘 다 참 오랫동안 무척 만나고 싶었던 것들이라 하도 신기해 지나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좀 보고 가라"고 했더니 "먹을 수 있는 것이냐?"고 되묻는다. '이 버섯이 얼마나 귀한 건데' 미역줄나무와 단풍취, 선며느리밥풀꽃도 만났다.

 

밥을 먹기로 한 부근에 이르렀을 무렵부터 어떤 새가 '왜액! 왜액!', 뒤이어 까마귀가 '까악! 까악!' 주고 받는다. 밥을 먹으면서 보니 까마귀 두 마리가 그렇게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휴대폰에 MP3가 자동 내장된 때문인지 산을 오르다 보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그들은 까마귀는 모두 '까악! 까악!' 우는 걸로만 알겠지?

 

 

'산행도 일종의 여행인데, 왜 쫒기듯 정신없이 오르기만 할까? 왜 옆의 나무들과 주변 풍경은 보지 않고 앞만 보고 가는 걸까? 뭐가 그리 바빠서…이렇게 천천이 가면 그만큼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데…누리장열매들이 열매받침을 한껏 뒤로 제치고 열매를 툭툭 내미는 것은 햇빛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받아 열매를 땡글땡글 여물게 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그래야 튼실한 씨앗들을 퍼뜨릴 수 있으니…내년에도 이길에서(영봉 가는 길) 노랑망태버섯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 곁을 참 많은 사람들이 쑥쑥 지나갔다. 그들은 무엇에 그리 쫒기는 걸까? 우리 자매는 남들이 앞서가건 말건 나무와 꽃과 풍경,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맘껏 만나고 맘껏 느끼며 산행을 맘껏 즐겼다. 두고두고 못 잊을만큼 여유있고 유쾌한 산행이었다. 언제까지고 오늘처럼 산이 목적이 아니라 산에 있는 것들과의 만남이 산행의 목적이기를.

 

'올 추석에도 친정에 못 가는데 추석 다음날 산에나 갈까? 몸도 며칠째 뻐근한데…그런데 어떻게 도망나오지? 새벽 6시에 일어나 산으로 튈까?'

덧붙이는 글 | ※북한산 영봉은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 출구에서 120번이나 153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 육모정 고개나 도선사->하루재 쪽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지난 8월 27일과 9월 20일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산행, #영봉, #인수봉, #육모정고개, #몽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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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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